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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차 주세요

보이차를 다반사로 마시기를 권하는 글을 연재하게 되었으니 필자의 차 생활을 먼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의 일상은 하루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보이차와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는  따뜻한 보이차 숙차를 마시면서 경전을 필사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 시간에는 생차의 향을 음미하며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마무리된다.    나에게 보이차를 마시는 건 취미 삼아 어쩌다 하는 일이 아니라 다반사라는 말처럼 세끼 밥 챙겨 먹듯이 하는 일상이다. 집에서 쉬는 시간에도,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에도 찻물 끓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차 마시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대화를 나누고, 업무 시간에도 차와 함께 하고 있으니 내 시간은  빈틈없이 꽉 채워 보내는 셈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준 ..

보이차를 아십니까?

요즘은 거리에 잘 보이지 않지만 “도를 아십니까?”라고 하면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는 인생에서 마땅히 가야 하는 正道정도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 정도를 일러주려는 간절함이라고 느껴져서 그 사람들에게 반색을 했다가 悟道오도가 아니라 잘못된 길로 誤導오도되어 난처하게 된 사람도 적잖은 걸로 알고 있다.      나는 내 주변 지인들에게 “보이차를 아십니까?”라며 적극적으로 차 생활을 전도하고 있다. 보이차를 통해 차 생활을 권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보이차라는 특정한 차를 권하는 게 아니라 차 생활을 하게 되면 인생의 참 재미를 찾게 될 것이라며 바람직한 길로 전도하고 있는 걸로 여기고 있다.      할아버지 차 마실까요? 2020년에 손주가 태어나면서 나도 ..

단독주택 인문학 3 - 우리 시대의 가문, 가풍, 가장이 있는 '우리집'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단독주택인문학 3  요즘 가문(家門)⦁가풍(家風)⦁가장(家長)이라는 이 말들은 잘 쓰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의미마저 사전에나 있는 死語사어로 전락해 버렸는지 모른다. 이렇게 되고 만 건 아마도 삼대가 한 집에 살았던 대가족 제도의 붕괴에 따른 게 아닐까 싶다. 더 넓게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상하관계를 따지던 종적 인간관계가 무너지면서 가정도 가족 해체에 들어가게 된 것일 터이다.     삼대가 한 집에 살았던 시절에는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기초교육이 가정에서 이루어졌었다. 사실 대화가 아니라 가장의 일방적인 훈시였지만 그 당시 사회의 보편적인 규범에 벗어나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면 “네 아버지가 누구냐?”, “어느 집 자식이냐?”는 말을 들어..

단독주택 인문학 2 - '우리집'에서 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 이유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단독주택인문학 2  지금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살 수 있다고 여기는 세상이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이 되는 의식주, 옷은 물론이고 밥까지도 사서 먹는 게 요즘이다. 집도 가족의 행복이 우선이 아니라 투자 가치에 초점을 맞추니 돈이 삶의 기준이며 목표가 되어 버렸다.     돈이 많아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기니 대학도 돈이 되지 않은 전공은 지원자가 적어 없어지고 만다. 명품이라는 브랜드는 경기를 타지 않고, 초고층 아파트는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되니 수십 층을 넘어 백 층까지 짓고 있다. 돈이 있어야 먹을 수 있고, 입는 것도 값비싼 브랜드라야 하고, 수십 억 하는 아파트에서 잠을 자야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긴다. 돈이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믿지만 과연 그럴까? ..

단독주택 인문학 1 - 잃어버린 우리집을 찾습니다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단독주택인문학 1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우리는 집에서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이제는 아파트 생활에 적응해 살다 보니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의식하지 못하며 지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단독주택을 지어 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걸 보면 집다운 집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집을 잃어버렸다'라고 말을 던지면 단말마적인 표현일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고향을 잃었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돌아갈 집마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데 잃어버린 고향은 어찌할 수 없다 해도 집을 집답게 지어 산다면 잃어버렸던 우리집을 되찾을 수 있다.     왜 새삼스레 집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누구나 집에서 살고 있는데 돌아갈 집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