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건축사사무소 69

단독주택 인문학 13 - '우리집' 지을 땅 구하는데 5년이면 충분할까?

십 년 전, 단독주택 설계 계약을 하고 집터를 살펴보니 집을 지으면 곤란한 땅이었다. 그 땅은 산지를 택지 조성해서 만든 단독주택단지였는데 주변에는 아직 집이 들어서지 않은 공터였다. 택지의 최상부에 위치한 땅이라 동쪽으로 멀리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분양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필지의 동쪽과 남쪽 필지에 집이 지어지면 바다 전망이 없어지게 되고 남향 햇살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게 되는 미래가 보였다.      설계 계약 전에 건축주와 집을 짓게 된 연유를 얘기하다 보니 형제의 의까지 맺어 특별한 관계로 설계를 시작한 상태였다. 만약에 집터의 조건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건축주에게 전하게 되면 어떤 결과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바다 전망과 남향 햇살을 다 포기해야 하는 그런 땅에 집을 지어서는 곤란하니 ..

단독주택 인문학 7 - 각방을 쓰자는 데 안방은 누가 써야 할까요?

各房각방을 사전에 찾아보니 '저마다 따로 쓰는 방'이라고 딱 나와 있다. 이 단어가 사전에 올라와 있을까 싶어 찾아 확인은 했지만 생소하게 다가온다. 용례를 찾아보니 ‘그들은 부부 관계마저 포기한 채 각방을 쓴 지 오래다.’라고 나와 있으니 '각방'이 긍정적인 단어가 아닌 건 분명하다.          우리 집도 공식적으로는 방을 따로 쓰자고 하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작은방을 쓴 지는 제법 되었다. 우리 집 침대는 킹사이즈라서 셋이 누워도 되는데 더위를 많이 타는 아내는 어느 여름부터 거실로 잠자리를 옮겼다. 그 이후부터 아내는 안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침대를 수면용(?)으로만 쓴 지 오래라서 별문제는 없지만 어쨌든 나와 아내는 잠자리를 따로 쓰고 있다.   댁에도 각방 쓰고 있으신지요?         ..

50평이 아닌 500평 대형 카페, 그리고 에피소드인커피

여동생이 카페를 준비 중인데 조언을 부탁한다며 친구가 찾아왔다. 카페 위치를 물어보니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카페로 꾸몄다고 했다.     리모델링? 카페?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인데? 내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 카페를 포함해서 리모델링을 성공적으로 한 결과물이란 건 친구도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이 건물의 지하층에서 이층까지 카페를 넣어서 이 지역의 명소가 되었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데...      500평 초대형 카페라니?      친구와 함께 9월에 개업 예정으로 준비가 마무리되고 있다는 카페에 가 보았다. 리모델링 전에 용도는 찜질방이었다고 했다. 한 층에 150평으로 세 개 층인데 메인 홀인 2층에 들어서니 멀리 낙동강 하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카페에 ..

단독주택 인문학 5 - 吉宅길택은 사람을 불러들이는 집

나의 첫 주택 작업이었던 부산 해운대 ‘관해헌’의 건축주가 새 집을 지어야 한다며 찾아왔다. 이십 년을 관해헌에서 살다가 집을 팔았다며 양산에 집터를 잡았다고 했다. 관해헌은 거실을 사랑채처럼 본채에서 떨어뜨려 배치해서 마치 정자에서 멀리 해운대 바다가 보이도록 설계가 된 집이다.     건축주는 이십 년이나 살았던 단독주택을 팔면서 새로 짓고 남을 값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돈도 자신이 양보해서 결정했다고 하면서 집을 팔았던 아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다르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은 지 20년이 지난 단독주택인데?     왜 오래된 집을 팔면서 아쉬움이 남았을까?        집을 지을 당시 건축주는 건설회사 임원이었는데 업무상 밤늦게 귀가하는 ..

단독주택 지산심한 준공에 부쳐-부족한 딸을 시집 보내는 어버이의 심정으로

지산심한이 다 지어졌다. 작은 집인데도 짧지 않았던 설계 기간을 가졌지만 아쉬움을 남기며 마무리해야 했었다. 건축주께서 공사에 직접 참여해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공 중에 설계도를 임의 변경해 설계자의 마음을 힘들게 해서 아픔을 가진 프로젝트로 남겨야 했다. 대화를 나눈다는 건 타협의 여지가 있지만 일방적인 변경은 한탄할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부분적인 변경이라 하지만 집이 가지는 근본을 흔드는 내용인지 모르니 안타깝다. 설계자는 건축주를 위해, 건축주가 살 집에 누구보다 깊은 애정을 가지는 사람이다. 그런데 설계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고쳐지어 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라져 버린 처마 밑 투톤 마감  설계 마무리 단계에서 거실에서 마당으로 나가는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