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 236

단독주택 인문학 13 - '우리집' 지을 땅 구하는데 5년이면 충분할까?

십 년 전, 단독주택 설계 계약을 하고 집터를 살펴보니 집을 지으면 곤란한 땅이었다. 그 땅은 산지를 택지 조성해서 만든 단독주택단지였는데 주변에는 아직 집이 들어서지 않은 공터였다. 택지의 최상부에 위치한 땅이라 동쪽으로 멀리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분양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필지의 동쪽과 남쪽 필지에 집이 지어지면 바다 전망이 없어지게 되고 남향 햇살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게 되는 미래가 보였다.      설계 계약 전에 건축주와 집을 짓게 된 연유를 얘기하다 보니 형제의 의까지 맺어 특별한 관계로 설계를 시작한 상태였다. 만약에 집터의 조건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건축주에게 전하게 되면 어떤 결과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바다 전망과 남향 햇살을 다 포기해야 하는 그런 땅에 집을 지어서는 곤란하니 ..

단독주택 인문학 12 - 지금이 설계할 때인데 건축사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다른 경기도 상황이 녹녹지 않겠지만 건축 경기는 얼어붙어서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건축 경기가 이런 상태인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금융 환경이 좋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단독주택만 해도 은행 융자를 받지 않고 짓는 사람이 드물다. 그런데 금리 등 대출조건이 돈을 빌릴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경기가 풀려 집을 지을 수 있는 자금 계획을 짤 수 있게 되면 설계를 서두르게 된다. 어떤 건축주는 설계 계약을 하면서 건축허가를 언제까지 받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아이를 가지지도 않았는데 출산 계획을 잡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설계 기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부족하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여생과 함께 할 우리집은 도깨비방망이 두드리듯 뚝딱 설계도가 나오는 걸로 알면 ..

단독주택 인문학 11-설계 기간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우리 가족이 살 집을 지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집을 지으려고 마음먹었으면 후딱 끝을 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집 짓는 일정을 잡아보면 절대적인 기간이 있고 상대적인 기간이 있다. 절대적 기간은 적정한 근거로 잡은 일정이기에 가능한 지키는 게 옳다. 하지만 상대적 기간은 근거를 만들어가야 하니 일정이 명확해지지 않는다.     집 짓기에서 절대적 기간이란 공사기간이 되겠고 상대적 기간이란 설계에 필요한 시간이다. 공사가 시작되면 하루하루 직접비인 인건비와 재료비가 투입된다. 또 간접비로는 임대자재와 관리비, 금융이자가 되는데 일기불순 등으로 일정이 늘게 된다. 도급 공사라도 공정관리가 잘 되어서 원가를 줄이고 이윤이 늘어나야 마무리 공사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면서 완성도 높은 집을 지을 수 있다.      설..

단독주택 인문학 10 - 우리 식구들만의 행복 레시피를 담아서 짓는 단독주택

지금은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이 아주 드문데도 드라마에서는 서민들이 동네를 이루어 사는 장면이 자주 나오고 있으니 너무 비현실적이다. 단독주택에서 산다는 건 대도시권에서는 어림없는 일이고 중소도시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근래에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서 단독주택에 살고 싶은 꿈을 현실로 이루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 같기는 하다. 단독주택에서 사는 꿈을 현실로 이루는 걸 가로막는 높은 벽은 땅값인데 그나마 대지 자체도 찾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식구들만의 행복한 삶을 담을 수 있는 집은 단독주택이라야 한다는 걸 알아챈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나 보다 싶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마당을 돌보는 일부터 보통 힘든..

단독주택 인문학 9 -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가 없는 게 집 때문이라는 데?

얼마 전 일흔이 다 된 지인과 점심을 먹었는데 자식에 대해 푸념과 함께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네 가족의 현실이 심각한 정도를 넘어 위기에 봉착했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그분은 슬하에 삼남일녀를 두었는데 다 출가를 시켰는데 아직 손주를 하나도 보지 못하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옆에 앉아있던 분은 한술 더 뜨는 말로 마흔이 지난 딸 둘이 다 비혼주의라고 한다. 이 두 분만 해당되는 이야기라면 위로하는 말로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식들의 결혼과 손주를 포기하고 있다는 분이 적지 않으니 우리나라의 가정이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닌가? 노총각, 노처녀라는 말이 아직 사전에 남아 있지만 머지않아 사어死語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결혼 적령기라는 말 자체가 의미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