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여성경제신문연재-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보이차를 아십니까?

무설자 2024. 7. 1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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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거리에 잘 보이지 않지만 “도를 아십니까?”라고 하면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는 인생에서 마땅히 가야 하는 正道정도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 정도를 일러주려는 간절함이라고 느껴져서 그 사람들에게 반색을 했다가 悟道오도가 아니라 잘못된 길로 誤導오도되어 난처하게 된 사람도 적잖은 걸로 알고 있다.     

 

나는 내 주변 지인들에게 “보이차를 아십니까?”라며 적극적으로 차 생활을 전도하고 있다. 보이차를 통해 차 생활을 권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보이차라는 특정한 차를 권하는 게 아니라 차 생활을 하게 되면 인생의 참 재미를 찾게 될 것이라며 바람직한 길로 전도하고 있는 걸로 여기고 있다.     

 

할아버지 차 마실까요?

 

2020년에 손주가 태어나면서 나도 어엿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 해에 내가 환갑을 맞아 손주가 생겼으니 나와 손주는 띠동갑이다. 벌써 손주는 유치원생이 되었고 나와는 다우라는 이름의 차 친구가 되어 이제 대용차가 아니라 보이차를 함께 마시고 있다.

 

손주가 두 돌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서재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내 앞에 와서 앉더니 차를 청하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지형아, 차 줄까?”라며 말을 건네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에게 카페인이 있는 차를 줄 수 없어서 티백으로 된 대용차를 우려 찻잔에 담아 건네니 앙증맞게 두 손으로 받아 마시는 게 아닌가?     

 

두돌이 막 지나서 차를 청했던 기특한 손주,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찻잔을 이렇게 쥐고 차를 마시는 것일까?

 

그날부터 딸이 우리집에 다니러 오면 손주는 나를 보자 말자 하는 말이 “할아버지 차 마실까요?‘이다. 이젠 카페인 영향이 적은 보이차 숙차를 우려 주는데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 몇 잔을 연거푸 들이킨다. 딸과 사위도 차를 좋아해서 가족 티타임을 가지는데 손주도 그 자리에 껴서 당당한 다우가 된다. 손주와는 띠동갑 다우이니 찻자리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대화가 평생 이어질 것이다.  

   

B는 나와 대학 동문이자 부산에서 건축사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따로 만날 일은 많지 않았다. 술을 좋아했던 그가 건강이 나빠졌다는 말을 듣고 차를 권해 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차전도로 그와도 다우가 되니 통화도 잦고 만날 기회도 자주 만들어져서 차를 마시며 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외로움은 역병보다 무서운 질병

     

부모자식, 형제라고 해도, 학연이나 지연을 맺어진 친구라도 만남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게 요즘 세태이다. 사업 관계나 직장 동료로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만남이 있을 뿐 사람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있다. 인간관계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군중 속의 고독’ 뿐 아니라 부부 사이에도 각방살이로 지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외로움이 역병처럼 번지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구를 만나 무심코 던지는 한 마디가 ‘언제 밥 한 번 먹자’나 ‘술 한 잔 하자’이다. 이보다 더 쉽게 하는 말이 ‘차 한 잔 하자’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런 자리를 가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밥이든 술, 차를 들먹이는 이유는 한 가지인데 만나는 자리를 가지자는 것이다.

 

딸네가 다니러 오면 만들어지는 찻자리, 손주도 어엿한 다우로 자리를 같이 한다

 

집에서 가족들이 때가 되면 함께 밥을 먹는 건 당연한 일상이지만 언제부터였는지 밥 먹는 집이 많지 않은 게 지금의 우리네 삶이다. 밥을 먹지 않으니 마주 앉을 기회가 없고 대화를 나눌 자리도 마땅치 않다. 우리네 집을 돌아보며 공감하게 된다면 식구들이나 부부간에 마주 보게 되는 때에는 싸우고 있을지 모른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져 가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심리적 거리는 아득하다고 할 정도로 멀어져 있다. 한 집에 살고 있는 부부도, 부모자식 사이마저 대화가 끊어져 있으니 누구와 소통할 수 있을까? 외로움이라는 심리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면 세상을 버리게 되는 극단적 선택을 부르게 되니 우리나라가 세계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보이차를 아십니까?

 

차를 즐겨 마시는 나라는 흥하고 술에 빠진 나라는 망한다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고 있다. 차를 마시는 자리는 시종일관 소통이 이루어지지만 술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통이 되고 다툼으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차를 마시게 되면서 내 주변 사람들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 있으며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로 만남이 잦아지고 있다.     

 

내가 즐겨 마시는 차는 보이차이다. 커피는 물론이고 녹차나 홍차, 우롱차도 마시지만 주로 보이차를 선택하게 되는 건 밥 같은 차로 마실 수 있어서이다. 보이차는 커피보다 더 저렴할 뿐 아니라 뜨거운 물만 있으면 누구라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밥이나 술은 때가 되어야 하고 장소나 메뉴를 정해야 하지만 보이차는 아무런 제약 없이 마실 수 있다.     

 

식구들과 함께 먹는 밥은 메뉴를 따로 챙길 필요가 없다. 둘러 앉아 먹는 분위기만으로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밥이나 술, 커피라 할지라도 함께 할 대상의 제약을 받지만 보이차는 우리집처럼 할아버지와 손주가 같이 마실 수 있다. 대화를 청하려고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차를 마시다 보면 저절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차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마주 앉은자리라서 차를 마시는 동안 이야기가 절로 나오게 되고 대화 없이 마시기만 해도 좋은 게 차이다.

    

“할아버지 차 마실까요?”

두 돌배기 우리 손주는 차맛을 알아서 할아버지에게 차를 청했던 것일까? 아마도 할아버지와 마주 앉는 그 자체가 좋아서 네 살이 된 지금도 할아버지를 보면 차를 청하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기였지만 이제는 통화를 하면서 할아버지 안부를 물을 정도로 대화의 물고를 트고 있다.    

 


 

대화와 소통을 부르는 마법 같은 차, 특히 보이차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일상이 외롭고, 누구라도 좋으니 대화를 나누고 싶은 분은 보이차를 마시게 되면 바라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이제 소통을 위한 마법의 수단인 보이차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도를 아십니까?”는 오도된 길로 이끌지만 “보이차를 아십니까?”는 우리 삶의 정도로 나아가게 하는 질문이 될 것이다.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 '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1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