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405

가을 밤, 그리움을 담아 차를 마신다

가을 밤, 그리움을 담아 차를 마신다 가을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인다 밤바람에 가을냄새가 묻어나기 시작하면 나만의 그리움 즐기기가 시작된다 그 그리움의 대상이 특정한 누구는 아닌 듯하다 마음 깊숙이 한쪽에 숨어있다가 이맘때가 되면 나타나는 것인가? 가을이라 신호처럼 울리는 풀벌레 소리와 함께 무언지 모를 그리움이 일어난다 창문을 닫아도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때문에 그리움은 피할 수가 없다 특정한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면 그건 가을의 그리움이 아니리라 그 누구라고 특정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은 그냥 그리움 그대로... 그리워져서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워하고 싶은 그대로의 그리움 나에게 가을은 그렇게 무심코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하지만 그 그리움은 기다림이며 간절함이고 ..

굳이 보이차를 첫물차로 마시는 이유

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30904 굳이 보이차를 첫물차로 마시는 이유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차는 雨前우전이며 그다음이 細雀세작, 中雀중작이다. 절기로 穀雨곡우 전에 찻잎을 따서 만들기 때문에 이름을 우전이라고 붙였다. 이른 봄에 차나무에서 새 잎이 나오기 시작하면 순 하나에 잎 두 개, 一芽二葉일아이엽으로 따서 차를 만든다. 우전차는 세작이나 중작에 비해 어린잎으로 만들게 되니 가격이 그만큼 비싸지만 향이 빼어나고 맛이 깊다. 중국에서는 위도가 우리나라보다 아래이다 보니 곡우보다 더 빠른 절기인 청명 전에 찻잎을 따서 차를 만드는데 明前명전차라고 한다. 중국 운남성도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낮아 청명 전에 새 잎이 돋아난다. 명전차는 早春茶조준차, 첫물차라고 하며 해발고도가 높은 노반장은 일아..

보이차와 삼독심

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30807 보이차와 삼독심 搛一放一염일방일, 하나를 얻으려면 반드시 하나를 놓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를 쥐고 또 하나를 쥐려 한다면 어느 날 그 두 개를 모두 잃게 될 것입니다. -선묵 혜자 차를 마시면 혼자 있다고 해도,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가진다고 해도 시간이 헛되이 지나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는 필터처럼 찻자리는 맑고 향기로운 생각과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혼자 있으면 망상에 빠지거나 우울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여럿이 있어도 대화가 집중되지 않을 때가 많지요. 차를 마시면 흐트러지기 쉬운 분위기가 모아지고 말수가 적거나 없어도 고요함 속에 하나가 됩니다. 보이차는 다양한 차 종류로 마시기에 풍요한 차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이차는 후발효차라는 특성이 ..

취다헌 김홍길 대표의 명복을 빌며

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30724 취다헌 김홍길 대표의 명복을 빌며 그가 갑자기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타국에서 황망한 죽음을 맞이했다. 사인은 뇌출혈이라고 했다. 아직 환갑도 지내지 못한 나이지만 죽는데 순서가 있을 리 없으니 어쩌겠는가? 그는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보이차로 사업을 했었다. 그와의 인연은 온라인 카페를 통해 보이차를 구입하는 걸로 이어졌다. 그가 판매하는 보이차를 신뢰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의 카페에 차가 올라오면 대부분 금방 완판 되곤 했다. 이 소식을 접하게 되면 이제 어디서 보이차를 믿고 구입할 수 있을지 아쉬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오래 지켜보았던 사람이라면 흔치 않은 아름다운 사람을 잃었다며 슬퍼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차 한 잔 할까요?

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30707 우리 차 한 잔 할까요? “엄마하고 차 한 잔 할까?” 엄마가 부르는 말에 아이는 스스럼없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달려온다. 그전에는 엄마가 부르면 아이는 또 내가 뭘 잘못했을까? 생각하며 미리 주눅부터 들었고 긴장한 표정으로 쭈뼛거리며 다가왔었다. 그랬던 엄마가 차를 마시게 되면서 목소리가 달라졌다. “여보, 차 한 잔 할까요?” 아내가 청하는 말에 남편은 쾌히 그러자며 자리에 앉는다. 그전에는 아내가 얘기 좀 하자고 하면 또 무슨 일로 다투게 될지 짜증스러운 표정부터 지었었다. 그런데 아내가 차를 마시게 되면서 오늘은 무슨 차를 준비했을지 기대하게 되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앉아 마주 보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집이 얼마나 될까? 아침밥을 거르는 집이 많아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