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굳이 보이차를 첫물차로 마시는 이유

무설자 2023. 9. 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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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30904

굳이 보이차를 첫물차로 마시는 이유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차는 雨前우전이며 그다음이 細雀세작, 中雀중작이다. 절기로 穀雨곡우 전에 찻잎을 따서 만들기 때문에 이름을 우전이라고 붙였다. 이른 봄에 차나무에서 새 잎이 나오기 시작하면 순 하나에 잎 두 개, 一芽二葉일아이엽으로 따서 차를 만든다. 우전차는 세작이나 중작에 비해 어린잎으로 만들게 되니 가격이 그만큼 비싸지만 향이 빼어나고 맛이 깊다.  

 

중국에서는 위도가 우리나라보다 아래이다 보니 곡우보다 더 빠른 절기인 청명 전에 찻잎을 따서 차를 만드는데 明前명전차라고 한다. 중국 운남성도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낮아 청명 전에 새 잎이 돋아난다. 명전차는 早春茶조준차, 첫물차라고 하며 해발고도가 높은 노반장은 일아이엽, 노반장보다 낮은 이무에서는 일아삼엽이나 일아사엽으로 차를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봄에만 차를 만들지만 보이차는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에도 찻잎을 따서 차를 만든다. 봄차도 청명 이후에도 찻잎을 따지만 차의 향미는 첫물차인 명전차가 가장 좋다. 이름이 알려진 빙도나 노반장의 첫물차를 소장해서 마신다고 하면 그 진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럴까?

 

해마다 고수차의 가격이 공시되는데 오직 첫물차만 해당된다. 올해 고수차의 가격은 모차 1kg 기준으로 빙도노채는 20,000~90,000 위안이며 노반장은 15,000~20,000 위안, 의방이 5,000~10,000 위안, 파달산 1,500~ 2,000 위안이다. 20,000 위안이면 우리 돈으로 400만 원 정도 되니  357g 차 한 편에 모차값만 150만 원 정도가 된다. 유명 산지의 첫물차는 가격도 부담되지만 생산량이 한정되므로 진위 여부도 따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왜 첫물차가 좋을까?     

 

봄은 찻잎을 따는 계절이다. 겨울이라는 휴지기를 가지고 나서 축적된 에너지를 담은 새순이 돋아나오기 시작한다. 기온이 10℃가 되고 열흘에서 보름 사이에 새잎이 본격적으로 나오면 첫물차를 만들 찻잎을 따게 된다.

 

봄에 처음 따는 찻잎에는 아미노산 성분이 가장 많은데 달고 시원한 감칠맛이 많다. 첫물차가 귀한 대접을 받게 되는 건 이 때문인데 채엽 시기도 그렇지만 어린잎이라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첫물차의 달고 시원한 감칠맛은 누구나 좋아하고 진한 맛과 겨울을 넘기며 기다린 풋풋한 차향 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일아이엽, 낮은 산지는 일아삼사엽으로 차를 만든다. 어린잎으로 차를 만들 뿐 아니라 채엽 시기가 짧아서 생산량이 한정된다. 차 산지에서 만들 수 있는 모차의 양이 한정되므로 다른 철에 비해 찻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두물차부터 아미노산 함량이 적어지고 여름차는 수분이 많아 싱겁고 가을차는 열매와 꽃으로 기운이 가서 봄차에 비해 향미가 덜하다. 생산량이 적은 첫물차는 가격도 비싸지만 수요에 공급이 따르지 못하니 구하기도 어렵다. 조춘차라고 표기된 포장지도 있지만 마셔봐서 단맛이 진하다면 찻값을 더 지불하며 구입할 이유는 분명하다.

 

필자가 즐겨 마시는 첫물차, 수령보다 채엽 시기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며 첫물차를 구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樹齡수령과 채엽 시기      

 

수령이 오래되지 않은 차나무는 생육 조건이 좋아서 찻잎이 나오는 시기도 빠르고 양도 많다. 그렇지만 老樹노수일수록 찻잎이 적지만 뿌리 깊은 나무라서 그럴지 모르지만 차의 향미는 더 좋다. 古茶樹고차수라고 부르는 백 년 이상 된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는 어린 나무보다 더 깊고 풍부한 향미를 가지고 있다.

       

흔히 오래된 차나무는 기운이 적어서 찻잎도 향미가 덜하다고도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고수차의 향미를 제대로 접해보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근래에 單柱茶라고 나오는 차가 있는데 차산지에서 오래된 나무를 골라 한 그루에서 딴 찻잎으로 만든다. 당연히 가격도 비싸지만 진품을 구입하기도 쉽지 않다.

    

수령이 적어도 봄 첫물차로 만든 차와 수령이 많은 고수차로 만든 가을차인 곡화차 중에서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무조건 첫물차를 꼽을 것이다. 물론 고수차로 첫물차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만약에 고수 첫물차 한 편만 내내 마시고 나면 입맛이 높아져 차 마시기가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빙도나 노반장, 석귀나 이무 등 유명 차산지의 고수차를 첫물차로 진품을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근래 유명 차산지 단주차를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걸 볼 수 있는데 과연 첫물차일지는 마셔보고 판단할 일이다. 아직 유명세를 가지지 않은 차산지의 고수차는 첫물차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니 보이차의 珍味진미를 음미하길 추천한다.     

 

봄차 중 첫물차와 그 이후의 차

 

보통 청명 이후가 되면 기온도 올라가고 비가 많이 내리니 찻잎이 빨리 자라게 된다. 첫물차는 겨우내 성분이 농축되어 진한 향미를 가지는데 그 이후에는 찻잎이 빨리 자라므로 아무래도 성분 차이가 있을 것이다. 네댓 달 동안 차나무는 천천히 양분을 축적해서 봄이 되면 찻잎에 담아내는데 차농들은 그때를 기다린다.

 

첫물차를 만들고 난 이후에는 봄비를 맞으며 찻잎이 급속도로 자라니 봄차라 하더라도 많이 자란 잎으로 모차를 만들게 된다. 봄차 고수차라고 하는 차는 거의 이때 딴 찻잎이라고 볼 수 있다. 차를 마시고 난 뒤 엽저를 살피면 많이 자란 잎인 걸 알 수 있다.

 

여름에 쑥쑥 크는 잎으로 만든 夏茶하차는 맛이 싱겁고 향도 덜해서 보통 찻잎을 따지 않는다. 간혹 여름에도 채엽을 하는데 이 찻잎은 봄차와 섞기 위한 용도일 수 있다. 고수차라고 해도 지나치게 가격이 싸다면 여름 잎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가을차는 곡화차라고 부르는데 여름에 찻잎을 잘 따지 않으니 양분이 축적되어 봄차와 다른 시원한 향미를 가진다. 봄차와 가을차는 엽저를 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는데 가을에 딴 잎은 잎자루가 길다. 가을차의 시원한 향미를 즐기는 것도 차를 마시는 또 다른 재미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즐겨 마시는 첫물차, 차를 우려내고 난 다음 차이파리를 살펴보면 첫물차 여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차를 영양학적으로 접근하면 봄차나 여름차, 가을차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차를 마시는 건 일반 음료와는 다르다. 차를 마시며 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다도나 차를 수행의 방편으로 여긴다는 茶禪一味다선일미까지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일상에서 차를 즐기는 건 차의 향미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돈독함을 더할 수 있는 대화의 매개체로 이만한 게 없지 않나 싶다.

 

깊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찻물이 끓고 찻물을 따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때 혼자 마시면서 음미하는 차 한 잔의 향미는 세상의 그 어떤 음식과 비할 수 있을까? 그 시간을 위해 선택할 차는 분명 첫물차가 되어야 하리라.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