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225

오늘은 부녀 건축사가 되는 날

오늘은 부녀 건축사가 되는 날 26569, 건축사자격시험 발표일을 하루 앞두고 딸이 수험번호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아빠가 합격여부를 물어보지 말고 직접 확인하시라는 거다. 딸은 시험에 두 번을 떨어졌다보니 혹시 불합격이 되면 대답하기가 민망해서 그러는 것이리라. 아침에 일어나자말자 스마트폰으로 2021년 건축사자격시험 결과를 검색했다. 뉴스 란에 6,591명이 응시해서 6.5%인 430명이 합격했다는 기사가 나와 있다. 작년에는 전반기 시험에서 무려 1,306명을 뽑았는데 올해는 합격자 수를 많이 줄였나 보다. 합격자는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 검색창의 스크롤을 내려 보니 건축사학원에서 합격자 수험번호를 올려놓았다. 이번 합격자는 수험생 대비 6.5%의 합격률이다 보니 번호가 백단위로 띄엄띄엄 보여 ..

처마 예찬

처마 예찬 김 정 관 올해는 절기로 입추가 지났는데도 장마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다가 기억 창고 한쪽에서 통도사 극락암 선방 툇마루에 앉아 있는 나를 찾아냈다. 그 날은 예고도 없이 비가 쏟아졌다. 절에 머물던 사람들은 비를 피해 요사채 처마 아래로 모여 들었다. 나도 툇마루에 걸터앉아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구름이 산허리를 두르고 절을 에워싼 대밭의 댓잎과 빗줄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산사의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다. 처마 바깥으로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지만 축담 안쪽과 툇마루에는 비가 들이치지 않는 안전지대이다. 만약에 처마가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어디에서 비를 피할 수 있었을까? 불당 안에 들어가 앉아서 ..

사는 이야기 2020.11.26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삼십오 년을 나와 함께 걸어온 아내에게 머리를 숙이며 김 정 관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비야*안톤의 실험적 결혼생활 에세이 한비야.안토니우스 반 주트펀 지음 푸른숲 결혼은 누구나 해야하는 일인 시대는 끝난듯하다. 누구나 하던 결혼이었던 시대에는 혼기가 있어서 때를 놓치면 온 집안에 가장 큰 걱정꺼리였다. 그 결혼이 이제는 선택이라 할 정도인데다 기혼자라 할지라도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는 여자가 무조건 남자를 따라야 한다는 정서의 여필종부니 부창부수 같은 말은 옛말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가정은 물론 사회생활에서도 남녀 역할의 경계선은 빠르게 허물어져 가고 있다. 가정에서도 사위의 위치는 몰라도 며느리의 자리가 옅어지면서 부계 중심에서 모계로 넘어가고 있는 분위기..

사는 이야기 2020.10.24

생태환경을 고려한 고령자친화마을을 제안하며/부산복지이슈공감 2020.09 기고

생태환경을 고려한 고령자친화마을을 제안하며 김 정 관 우리나라는 여느 선진국 못지않게 잘 갖춰진 사회복지시스템으로 가히 노인의 천국이라고 부를 만 하다. 65세부터는 지급되는 국민연금에다가 각종 사회복지 혜택도 지원되고 있어서 어르신이라는 호칭에 걸 맞는 사회적 예우를 받고 있어 보인다. 그렇지만 노인으로 살아가는 당사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과연 행복하다고 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사회적인 활동이 끊어지고 고립되어 지내는 노인의 일상은 자신의 발로 걸을 수 있는 범주의 생활공간으로 제한된다.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하는 대부분 노인의 삶은 담 없는 감옥에서 지내는 것과 다름없고 외로움이라는 불치의 병과 싸우며 지낸다. 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 ‘노인이 된 누구나’라는 처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사는 이야기 2020.10.13

밥그릇 찬가-진인 조은산

밥그릇 찬가 진인 조은산 총각 시절에 나는, ​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 그렇게 내 작은 그릇에 물을 담아 잔잔한 수면이 넘치지도 않고 말라 없어지지도 않게 꼭 끌어안고 있었는데 ​ 결혼을 하니 ​ 이런 젠장 이게 뭔가 누가 내 밥그릇에 돌을 던지네 ​ 잔잔하게 나를 비추던 맑은 거울이 깨어지고 일렁이는 물결은 이제 네 놈의 밥그릇이 너 자신만을 비출 수는 없다고 말해주었네 ​ 어쩌겠는가 잘 살아봐야 하겠지 물과 기름이 섞일 수는 없지만 함께 할 수는 있잖는가 냉면 위 육수에 참기름을 올리면 더 맛있기도 하니까 말이야 ​ 그래 그렇게 살다가 첫째놈이 생기다 만 얼굴로 튀어나왔는데 ​ 아 이 놈이 내 밥그릇을 냅다 발로 차버리네 작고 가벼운 내 깡통같은 밥그릇이 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