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짧은 차 이야기

바람(願)

무설자 2008. 12. 1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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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願)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사하라 사막의 한켠을 지나다가 가난한 베르베르족 양치기 노인과 키작은 소녀를 만난 적이 있다.
노인과 소녀는 맨발이었다.
황혼이었고, 찬 모래바람이 불었다.
스무 마리쯤의 양을 몰고 구멍이 숭숭 뚫린 천막집으로 돌아가던 노인에게,
안락한 잠자리, 황금색 가구, 빠른 자동차 따위를 분별없이 떠올리며, 내가 물었다.
"남은 생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오늘 저녁 조금이라도 비가 내려, 풀이 잘 자라 내 양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오"

- 박범신의< 젊은 사슴에 관한 은유 >중에서 -



*  바라는 것은 모두 다릅니다. 거창한 것도 있고 하찮은 것도 있고, 실현 불가능한 바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어떤 것이던 좋은 원을 담아야 합니다. 자기만을 위한 바람, 갈망과 욕망에 사로잡힌 바람은 결코 이뤄질 수 없습니다. 진정한 바람이란 동정적 사고에 기인할 때 그 빛을 발합니다.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는 바람은 언제 어디서나, 어느 종교이건 거룩한 광영을 비춥니다.  산방편지에서 퍼 옴

 

무설자의 짧은 차이야기 081210

바 람 (願)

  

 

 

 

차 한 잔 우려 놓고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점점 늘어납니다.

다음 날로 넘어가는 시간에 찻물을 끓이며 이런저런 망상을 피웁니다.

예측하고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가능한 앞 날을 내다보려고 애를 쓰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낮게 시작한 물 끓이는 소리는 금방 방 안을 시끄럽게 하다가 이내 잦아듭니다.

늘 선택하는 차는 몇 가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묘한 것은 같은 차라도 그 맛이 마실 때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실 때마다 달라지는 차맛을 생각하면 시시각각 바뀌는 저 자신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라고 하는 정해진 모습이 없다는 '無常'과 '無我'의 의미를 봅니다.

어쩌면 차 한편을 놓고도 매일 다른 차를 마시는 지도 모르지요.

 

이런 차는 이러하고 저러하다는 말 자체도 그 의미가 무색하지요.

마음도 매일 다르고 입맛도 상황에 따라 다르니 좋다니 모자라다니 하는 말도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했을 때의 취향과 지금은 완전히 딴판이니.

소장하고 있는 차 중에 마음에 드는 차를 고른다는 것도 '오늘 기준'으로 마시는 것이지요

 

지금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넘겨야 할까요?

안으로 들어가면 헤어나기 어렵고 바깥을 내다보면 눈을 감고 싶으니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하나요.

과거는 지나 가버렸으니 돌아보아도 소용없고 아직 다가오지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차 한 잔 우려두고 마음을 둘 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지금 해야할 일이 있는데 마음은 앞 날을 바라보며 걱정을 하며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물 끓는 소리, 찻물 따르는 소리, 코 끝으로 다가오는 차향을 맡으며 입 안에 머금으며 잠시 시름을 잊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나니 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나라는 것을 미뤄두고 살 수 있다면

오늘 마시는 차 한 잔에서 어제 그 맛을 찾는 어리석음은 없을텐데

지금의 나를 볼 뿐 내일을 미리 가져와서 살지 않도록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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