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삶, 상담과 답변

운명을 바꿀 수 있나요?

무설자 2005. 9. 2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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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사람이 답답하거나..원하는 인생을살지못하면 점을 보러가지않습니까..
 저도 몇년전부터..재미삼아..혹은..친구들과 어울려 점을 서너번본적이있습니다.
 
점을 볼때마다..듣는이야기중 하나가.
.저보고 신주단지를 모시라고합니다..
아니..어떤 점쟁이들은..아예 자기 제자가 되랍니다..
 
 저는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낮엔 직장다니고..어쩌다 시간나면 절에다니고..
 운전중에 천수경 테입 정도 듣는게 전부인..아주 평범한 사람이지요.
 
이번에도,,남편이 하는일 때문에 점을 보러간모양입니다..
(남편은 태어나서..점을보러 첨 간거죠)
거기서..또 이런얘기 나온모양입니다..
빨리 모시지않으면 남편 허리를 친다고합니다..
몇년전에 남편이 특별한 이유도없이 허리 때문에 몇달동안 고생한적이있었지요..
이번에..또 재발한다는겁니다..
 
 답답한맘에 모친에게 상의를했더니..
 모친이 힘들게 꺼낸말중에 하나가..맘에 걸립니다..
모친이 20대 후반에 갑자기..신이와서..
이걸 떼내는 의식을 치루었다는것과.
마지막과정에서 모친이..천년만년후에보자..했는데..
저의 아버지께서..갑자기 딱 10년만있다가..다시보자고..
마지막 기도중에 말 하더랍니다..
 
 모친께선..자꾸..그런 점쟁이 말에 현혹되지말고..
 절에 더 열심히 다니고..불공을 성심껏드리고..
무조건..부처님께..살려달라고..기도하고 또 하랍니다..
 약하지면..자꾸..잡신이 달라붙어 살수없게하니..
앞으로의 시련을 각오하고..운명을바꾸라고합니다..
 
제가..진짜 열심히..부처님께 기도하면..
 점쟁이들이 말한..제 운명을 바꿀수있나요

 

답변

 

이 세상에 나오기 전의 일로 인해

이 세상의 일로서 정해진 일이 있을까요?


답은 ‘있다’가 되어야만 인과의 가르침이 인정이 될 수 있겠지요.

어떻든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결과는 모두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원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미 발생한 결과에 대해서 승복을 하는 태도를 가져야만 힘은 들지만 고통은 줄어듭니다.


그런데, 그 결과들이 바라지 않는 쪽으로 계속 나오게 되면 삶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알지 못하는 과거 생의 일들, 그 모든 것이 내가 바라지 않는 고통스런 결과로 맞이해야 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이 부분에서 님의 괴로움이 있나 봅니다.

여기서 짚어볼 부분이 집의 과거와 미래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주역에 의한 사주팔자로 매겨져있는 이야기는 있습니다.


주역에 의한 사주에 의한 팔자도 놀랄 정도의 결과를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그 결과가 님이 바라는 삶이 아닐 때 어떻게 내가 원하는 쪽으로 바꾸어갈 수 없을까 고민하게 되겠죠.

아마도 그 문제는 참 다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사성제, 팔정도로서 풀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지금 내게 이미 닥친 일은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면 원인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되므로 계속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팔정도의 고성제에 대한 인정입니다.

고苦에 대한 성스러운 명제의 상태입니다.

고가 성스러운 진리가 되는 것은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면 원인이 있었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아, 이런 결과에는 그 결과를 만들었던 나의 간절한 노력(?)-집착이 될 수도 있겠지만-이 있었구나!’하는 부분입니다.

그것이 집성제입니다.


원인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자꾸만 고통의 결과와 그 원인이 지속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중생의 삶이죠.

제 것만 유리한 쪽으로 바라는 집착과 고통의 반복, 즉 윤회의 바퀴를 끊임없이 도는 윤회전생의 삶입니다.


그 다음은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에 대한 고찰입니다.

멸성제와 도성제-팔정도의 삶입니다.

중생이 아닌 보살의 삶이죠. 내 것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삶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키울 때는 힘은 들지라도 고통이라고 여기지 않는건 무조건 주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장성하면서 어떤 부모가 고통이라고 느끼기 시작한다면 자식에게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경우입니다.

자식이 하는 행동을 부모가 원하는 쪽으로 바라기 시작하면 자식은 행복의 대상이 아니라 고통의 대상이 되지요.


멸성제는 번뇌의 불꽃이 꺼진 상태의 명제입니다.

번뇌의 불의 재료는 탐진치 삼독입니다.

원하는 대로 안 되면 화가 나게 되는데 그 근본에는 어리석음이 깔려있습니다.


바라지 않고 베푸는 마음을 가지면 번뇌의 불을 사위어집니다.

최선을 다해 그 일에 마음을 써서 행하면 바라는 바가 적어서 적은 성과에도 고마워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를 우선 아는 것, 그것이 멸의 의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걸 만드는 삶이 바로 도성제, 바로 팔정도입니다.

이 부분은 교리를 따로 공부해 보시고요 ^^


그럼 본격적으로 얘기를 해 볼까요?

지금까지 들었던 말을 부정하려 들면 들수록 그 말들의 근거가 너무 명확해 보일 것입니다.

일단 인정합시다.


하지만 그 인정해야하는 길의 액면 그대로는 올바른 길이 아니라는 쪽도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어쩌면 다른 이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카운슬러의 길일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이 제시하는 삶의 길은 남을 먼저 배려하는 보살의 길이지 내 욕심을 먼저 채우려는 중생의 길이 아닙니다.


아마 사주에 나와있는 길이 그대로라면 그건 보살의 삶입니다.

그 보살의 길로 가는 마음만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얻으실 수 있다면 오히려 님의 그 불안해 보이는 삶이 훨씬 큰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참고로 불광출판사에서 나온 운명을 바꾸는 길(요범사훈)이라는 책을 읽어보시면 훨씬 와 닿는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길어진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