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승 삼보,
불은 부처님, 법은 부처님의 가르침, 승은 부처님에 의지하여 가르침을 배워 부처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부처님과 가르침은 문제가 될 것이 별로 없지만 이 승단이 문제가 됩니다. 부처를 목적지로 법을 지도로 하여 가는 배에 탔지만 그 근기의 차이로 말미암아 시비는 항상 존재합니다. 승단의 구성멤버를 사부대중이라 하지요. 출가 남녀, 재가 남녀로 4분이 되는 이 구성멤버는 서로 보완하는 관계입니다.
출가 수행자는 생업을 돌보지 않고 수행하며 그 깨달은 바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여 재가 신도에게 나누어 줍니다. 재가 신도는 생업을 우선으로 하여 출가 수행자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면서 외호하며 가르침을 배웁니다.
여기서 출가 수행자가 공부는 하지 않고 재가 신도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강요한다거나 수행이 부족하여 인격적으로 부족함을 드러낸다면 그는 외호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외호하며 법을 배울 출가 수행자를 잘 찾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내가 찾는 바가 올바를 때 그에 맞는 스승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주팔자만 어떨까 하고 관심이 있다면 무당 같은 스님을 만나게 될 것이며, 불교를 지식으로 공부하여 자신의 상을 드러내기 위해 절을 찾는다면 스님을 배경으로 에헴 하는 모습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스님을 만나기 전에 부처님 일대기를 공부하여 과연 나는 왜 부처님에 귀의하게 되었는가를 살피고 부처가 되기 위해 한 몸을 불사르는 수행을 하는 스님을 만나야 합니다. 또 그 분을 스승으로 정했으면 스님을 어렵게 알아야 하며 필요 이상 그 분 곁에 다가가지 말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한 달에 한 번 자자라는 자리를 만들어 자신이 모르는 허물이 있는가를 지적받는 자리에 나섰는데 아직 부처에 이르지 못한 스님이라면 어떨까요? 스님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허물이 있지만 수행을 통해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애를 쓸 뿐입니다.
항상 스님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 분이 온당한 수행을 할 수 있도록 외호를 해야 합니다. 내가 스승을 믿는 만큼 공부를 한다면 그 분은 내가 바라는 스승의 모습을 흩트리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모셔온 스님이 실망스러운 분이 아니라 나의 잘못된 모습과 바람이 그렇게 보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스님을 내 주변 사람 알 듯 너무 가까이 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과 가르침은 늘 가까이 하되 스님을 가능한 멀리(?) 하셔야 평생을 모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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