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새우깡 스님, 스님 다우

무설자 2023. 6. 1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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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30615

새우깡 스님, 스님 다우

 

 

충청북도 청주에 만사형통사라는 절이 있다. 절이라고 하면 산중에 기와집이라고 생각하지만 동네 한가운데 여염집에 깃들어 있다. 그 절의 주지 스님은 털털한 성품에 동네 사람과 잘 어울릴 옆집 아저씨 같은 분이다.   

  

이 스님과 인연이 십 년가량 되었으려나? 나도 원성이라는 법명이 있지만 그 스님은 언제나 나를 무설자라고 부른다. 내가 사는 부산과 스님의 절이 있는 청주가 이웃하며 만날 수 있는 길이 아니니 불자와 스님으로 만나게 된 인연은 아니다.    

 

그 스님과 가끔 안부 전화를 나누는데 이번에는 꽤 오랜만에 소식을 받게 되었다. 원래 스님도 산중에서 살았지만 이번에 동네 한가운데로 절을 옮겼다고 했다. 스님도 환갑을 넘긴 나이인지라 산중 생활이 쉽지 않았던가 보다. 사람들과 가까이에서 스님이 필요해서 찾아오는 분들과 차도 나누고 삶의 애환도 들어주며 사는 게 삶을 회향하는 길이라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무설자, 마시다가 제쳐 놓은 차 있을 테니 청탁불문 가릴 것 없이 좀 보내슈. 참 여름엔 백차가 좋다고 하는데 여유분이 있으면 함께 넣어주면 좋고...ㅎㅎ”     

 

스님과는 온라인으로 보이차 관련 카페에서 인연이 되어 교분을 나누게 되었다. 내가 쓴 글을 읽고 공감해서 자신의 멘토로 삼았다며 멘티로서 깍듯이 예를 갖추는 분이다. 댓글로 나누던 대화가 언제부터였던지 통화를 주고받다가 몇 년 전에는 스님이 잠깐 부산에 머물게 되면서 찻자리를 가진 적도 있었다.   

  

스님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값나게 보이는 보이차가 있는데 중이 마시기에는 격이 맞지 않는다며 그 차를 나에게 보내왔었다. 숙차나 좀 보내주면 고맙겠다며 수행자의 면모를 보이는 분이다. 내가 마시는 차도 격이라는 말과는 별 관련이 없는데 스님은 멘토를 대하는 멘티의 처지로 그렇게 하셨나 보다.    

 

백차라... 나도 백차는 즐겨 마시지 않아 골라 보낼 처지는 아니라서 포장지를 풀지 않은 온 편이 있어서 챙겨 넣으며 이차 저차 골라서 작은 종이박스를 채웠다. 샘플차도 좋으니 가능한 종류가 많았으면 한다는 말씀에 열 종류 정도 챙겨 넣었나 싶다.     

 

 

내가 보낸 차가 스님께 도착할 무렵 택배가 하나 내게도 도착했다. 스님이 보낸 것인데 내가 보낸 상자보다 배나 큰 상자였다. 상자를 열어보니 새우깡에 에너지바와 숙차가 다섯 편, 홍차에다 향까지 들어있다. 새우깡은 예전부터 스님이 내게 보내는 익숙한 물품인데 아내가 좋아한다며 챙겨 주신다. 그래서 아내는 스님을 새우깡 스님이라 부른다.     

 

“스님, 웬 걸 이렇게 보내신 겁니까? 차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이렇게 차까지 보내면 어떡합니까?”

“내가 여유 있는 차가 있어서 보냈고 무설자가 보내주면 나는 더 다양한 차를 맛볼 수 있지 않소? 이번에는 1탄으로 갔고 곧 2탄이 도착할 거요”     

 

아니나 다를까 스님의 2탄 택배 공세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아예 새우깡 한 박스에 가운데를 비우고 사탕봉지와 옻칠목기, 축원문을 적은 족자에다 손주 주라며 예쁜 단주까지 들어 있었다. 보통 스님이라면 받는 데만 익숙해서 나눌 줄 모른다고 하는데 새우깡 스님 다우는 더 보낼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한다.     

 

“스님, 제 입에 맞지 않아 잘 마셔지지 않는 차를 골라 가끔 보낼 테니 탓하시지나 마십시오.”     

 

보이차는 그 종류가 셀 수 없이 많아서 골라 마시는 재미가 남다른 차이다. 내가 두고 마시는 차가 백 종류가 넘으니 한 서른 편, 아니 더 많이 보내드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손이 잘 가지 않는 차는 앞으로도 마셔질 것 같지 않으니 스님께 가면 대접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시대에 뜻이 맞는 벗이 있다는 건 稀有희유한 일이다. 폰에 연락처를 열어 보시라. 일없이 아무 때나 전화할 수 있는 벗이 몇이나 있는지. 비슷한 연배에 같은 종교로 남다른 法談법담도 나눌 수 있고 茶友다우라는 사이로 茶談다담을 나눌 벗이 있는 이만한 복이 또 있을까?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