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30707
우리 차 한 잔 할까요?
“엄마하고 차 한 잔 할까?”
엄마가 부르는 말에 아이는 스스럼없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달려온다. 그전에는 엄마가 부르면 아이는 또 내가 뭘 잘못했을까? 생각하며 미리 주눅부터 들었고 긴장한 표정으로 쭈뼛거리며 다가왔었다. 그랬던 엄마가 차를 마시게 되면서 목소리가 달라졌다.
“여보, 차 한 잔 할까요?”
아내가 청하는 말에 남편은 쾌히 그러자며 자리에 앉는다. 그전에는 아내가 얘기 좀 하자고 하면 또 무슨 일로 다투게 될지 짜증스러운 표정부터 지었었다. 그런데 아내가 차를 마시게 되면서 오늘은 무슨 차를 준비했을지 기대하게 되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앉아 마주 보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집이 얼마나 될까? 아침밥을 거르는 집이 많아지면서 식구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고 말았다.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저녁밥은 먹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게 지금 우리네 현실이다.
바쁘게 살 수밖에 없는 게 요즘 우리네 삶이라며 식구들이 밥조차 함께 먹기 어렵다면 차 한 잔 하는 자리는 어떨까? 공부하느라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온 아이에게 차 한 잔 권하는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학원 공부에 시달리고 성적이 오르지 않아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차 한 잔 권하며 따뜻한 말로 마음을 데워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직장에서 시달리고 야근이나 업무의 연장인 술자리로 늦게 돌아온 배우자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 보자. 왜 이렇게 늦었냐며 채근하기보다 얼마나 힘드냐며 어깨를 토닥이는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억지로 건네는 영혼이 실리지 않은 말보다 쓱 건네는 차 한 잔이 더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차 한 잔을 건네면 말이 오가게 된다. 식구들에게 차를 준비하면서 이미 마음에는 위로와 응원이 담기게 된다. 그 차를 받아 마시면 누구나 고맙다는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 마음이 전해져서 나누는 말은 차보다 더 따스하게 다가올 터이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집은 긴장이 풀어지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식구들이 다 들어온 시간은 대체로 밥 먹을 때는 지났다. 그렇다고 야식을 먹기에도 적당하지 않을 때는 차 한 잔이 제격이다. 근사하게 찻자리를 펼치지 않더라도 예쁜 찻잔에 차 한 잔 담아 건네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마음을 담은 차 한 잔을 나누면 지난 하루에 대해 얘기가 오가게 될 것이다.
부부가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이 공부에 전념하는 건 잘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잘 살고 싶다는 말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그 행복은 어떤 상태를 이르는 의미일까? 행복한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공부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수 있을까?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행복할까?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행복과는 무관하지 않을까 싶다. 또 나중에 행복할 것이라는 불명확한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 지금 식구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식구들과 오늘 아침을 같이 먹었다면 그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다. 저녁에 차 한 잔 나누며 하루를 보낸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그만한 행복이 또 있을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일러 소확행이라고 하는데 그 확실한 행복이 손쉽게 이루어지는 자리에는 차 한 잔의 대화가 있다.
“우리 차 한 잔 할까요?”
언제라도 나눌 수 있는 차 한 잔의 행복은 식구들 중에 누구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누구는 망설임 없이 바로 내가 되면 좋겠다. 우리 식구가 나누는 지금의 차 한 잔이 바로 행복이니까.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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