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시음기

라온'98 진향 보이숙타차 시음기

무설자 2011. 2. 5.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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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시음기 110203

풍미가 넘치는 맛있는 차

-라온 '98 진향 보이숙타차

 

 

 

 

보이차를 마시는 데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들라고 하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우선 차를 마실 수 있는 자리와 또 다른 하나를 마음에 드는 차로 꼽겠습니다

이보다 더 우선 순위에 둘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차 마시는 자리를 특별히 가리는 이는 근사한 차실이나 조용한 자리가 있어야 차를 제대로 마실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차실을 따로 둘 수 있는 여유를 누리거나 자신만의 분위기를 차려가면서 마시기는 어렵지요

茶의 정신을 和敬淸寂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저 茶飯事라고 생각하며 차를 마십니다

 

그래서 집에서는 거실 한켠에 차판을 놓고 사무실에서는 회의 탁자 옆에 차판을 놓았습니다

차판만 있고 물 끓이는 포트만 있으면 찻자리의 준비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하나씩 덧붙이면서 차 마시는 분위기도 업그레이드 시켜갑니다

  

 

거실 탁자 옆 한켠에 마련한 우리 집 찻자리입니다

큰 탁자의 1/3을 차판이 차지하고 팽주 자리 뒷편에는 이번에 마련한 차기정 장인의 작품인 보이찻장이 놓였습니다

오른쪽에 물 끓이는 포트가 있는 우리 집 찻자리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팽주 자리 뒷 벽에는 갈지진성竭智盡誠이라 쓴 글이 걸려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이니 누구나 마음에 담아 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차를 竭智盡誠이라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어떻게 마셔야 할까요?

 

 

이렇게 제 찻자리는 그냥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생활이라는 큰 그림의 작은 부분입니다

그저 앉으면 물을 끓이고 차 한 잔을 밥처럼 마시는데 가까운 그런 삶이지요

그래서 따로 자리를 찾아서 앉을 일이 없는 게 차 마시는 것이라 이렇게 늘 가까이에 있어야 한답니다

 

 

이 보이찻장은 곁에 두고 쓸수록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 마실 라온 98 진향 숙타차가 이렇게 서랍 안에 잘 보관되어 있어 대접을 잘 받고 있어 보입니다

이 장 안에 100 여 종의 차가 들어 있답니다 ㅎㅎㅎ

 

 

 

이렇게 저에게 찻자리가 다반사의 자리라면 차도 그러하겠지요?

마음에 드는 차를 애써 찾아서 마시지는 않지만 좋은 차를 구하면 그만큼 기쁜 일도 드물지요

보이차 마시는 사람들은 다른 차를 즐기는 사람에 비해서 차 욕심이 아주 특별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제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보이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차 욕심이 많은 것일까요?

후발효차이기에 오래 두면 값이 올라 재산 증식의 효과가 있다 여겨서 그런 것일까요?

 

아마도 그런 이유때문에 보이차를 몇 년 마신 분이라면 집에 차가 넘쳐나는 것일테지요

보이차는  마신 연륜이 쌓인 뒤에야 차를 알게되니 초보 때 차를 많이 사게되면 그만큼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보이차는 후발효차라는 차의 특성때문에 마시는 차이기보다 모으는 차로서 비중이 더 크게 두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마시는 차에 집중하라'는 제 차멘토의 말씀을 항상 명심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마시는 차만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자, 이제 지금 마셔서 좋을만한 차를 한번 소개해볼까 합니다

 

잘 익은 보이차를 '熟茶'라고 하는데 잘 익었다는 말은 맛있게 익었다는 말이겠지요

생차가 익어서 숙차의 반열에 들어있는 차는 내가 마실 차로 되기는 거의 어렵습니다

진기가 30년 전후가 되어야 하는데 가격도 그렇거니와 제 나이를 인정할만한 차라는 확신이 더 어렵지요

 

잘 익어서 맛있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차의 반열에 둘 수 있다하겠습니다

이제는 쾌속발효로 익은 보이차를 이르는 '보이숙차'에서 지금 마실만한 차를 찾습니다

그런 차를 찾았기에 시음기를 통해 소개해 볼까합니다  

 

 

이 숙차는 250g 타차로 만들어졌습니다

내비도 없이 한지로 된 포장지에는 판매자인 라온 도장을 찍었고 진향타차(98년)이라 쓰여져 있습니다

250g이 15년 가까운 세월에 230g으로 줄었나봅니다

 

 

 

적당한 긴압에 잘 보관된 차라 이렇게 맛있는 병면을 보여주나 봅니다

물만 부으면 그냥 맛있는 차탕이 만들어질 것 같지 않습니까?

좋은 차는 이렇게 병면만 보아도 맛 있겠다는 예감이 드는데 과연 그 맛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제 일상의 차판은 이렇게 좀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흑단으로 만든 차판은 자와 늘 차를 마시는 다우가 선물했기에 괜찮은 걸 쓰게 됩니다

제가 가진 것들은 다구도 탐낼만한 것이 아닌 편한 그릇들을 쓰지만 아무 그릇들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ㅎㅎㅎ^^

 

 

노숙차 전용 자사호(80cc), 수평호인데 작가의 이름은 잊어 버렸네요

수평호는 얇아서 쉬  깨뜨려져서 얼마 전에 손으로 다루다 놓쳐서 다른 놈의 뚜껑을 깨먹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꼭 집게를 써서 그릇을 다룹니다

 

 

이렇게 집게를 써서 그릇을 다루니 훨씬 안정적으로 차를 우릴 수 있더군요

집게는 튼튼한 놈으로 해서 가능한 짧게 쥐고 써야 합니다

고수의 차판 주변의 있는 기물들이 그 나름의 쓰임새가 꼭 있음을 차를 마셔가면서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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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cc차호에 4g정도를 넣었으니 차가 좀 많은 편이지요

평소에는 120cc차호에 3g 정도를 넣어서 우려 마시는데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품차를 할 때에는 좀 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세차를 하고 두번째 탕을 담아 보았습니다

사진에서는 아주 제가 바라는 탕색을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검은 색이 조금 더 돕니다

이 탕색은 엽저와 연관성을 가지게 되더군요

 

 

제 옆에는 딸아이가 보료에 반쯤은 드러 누워서 아빠가 주는 차를 받아 마십니다

그 옆에 아내가 더 편한 자세로 차를 달라고 합니다 ㅎㅎㅎ

아내의 잔은 자기잔, 딸은 목기잔으로 취향대로 마시며 차맛을 이야기합니다

 

 

이제 차맛을 좀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이 정도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그럼 제가 바라는 숙차의 맛은 어떤 맛일까요?

제가 바라는 하나의 맛만 빼고는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제가 즐겨마시는 숙차는 입안에 꽉차는 두텁고 묵직한 맛에 풍미가 있습니다

사전에 풍미는 flavor라고도 쓰며, 향미(香味)라고도 하며 음식물을 먹을 때 입과 코로 감지되는 좋은 느낌이라 나와 있네요

 제가 좋아하는 숙차의 풍미는 노차에는 없는 숙차 특유의 맛입니다

 

시골의 오래된 초가의 방에 들어설 때 느껴지는 편안한 느낌과 같은 것입니다

차를 머금으면 그냥 편안해지고 만족스러워집니다

두터운 맛은 몸을 편안하게 하고 묵직한 맛은 포만감이 들게 합니다

 

여기까지의  느낌은 라온 '98 진향숙타차가 주는 만족스런 느낌입니다

여기에 첨가해야 할 맛은 단맛, 甛味입니다

입에 머금을 때 바로 느껴지는 단맛, 聞香을 하면 찻잔에 묻어서 다가오는 쵸콜렛의 향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맛과 향이 부족한 건 아쉽지만 이 정도로 만족스런 숙차도 드물 것 같습니다

같이 차를 마신 도반도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맛있다는 소리를 반복합니다

제 욕심을 빼고나면 이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좋은 숙차를 마셨다고  해도 되지요

 

 

제가 진단하는 첨미가 부족한 근거는 이 엽저가 말해준다고 봅니다

이상적인 엽저의 색깔은 생노차이던 숙노차이던 갈색이라야 합니다

이렇게 검은 색이 돌고 엽저가 부드럽지 못하면 단맛이 부족하지요

 

숙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온도관리를 잘못했던지 보관하는 과정에서 너무 습한 환경에 있을 때 그렇게 되지요

이 차는 아마 만드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라온 차는 무조건 건창 보관이니까요

 

좋은 차, 기분이 좋아지는 차, 누구에게 권해도 괜찮은 차로 도장을 찍어 봅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