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시음기 110311
새 봄에 지난 가을차의 차향에 젖어
-'10 대평보이 대설산 곡화차전-
보이차를 마시는 내게는 새로운 차를 기다리는 은근한 즐거움이 있다
늘 사무실에 박혀 일을 하는 직업 특성상 찻집을 순례하며 차를 찾아 다닐 수는 없기에 그리움같은 기다림이 있다
차를 마시면서 얻은 다우 중에 차를 취급하는 일을 하는 이가 이런 기다림의 끝을 만들어 준다
우리나라의 차밭은 지난 겨울 냉해로 올해 차농사는 포기해야한다는 소식으로 들리니 우울해진다
작년에는 중국 운남의 가뭄으로 봄차는 찻잎의 품질이 썩 좋지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하늘이 주는 한계가 그 해 차의 품질을 좌우하는 것이니 환경운동은 다인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나보다
봄은 다인에게는 찻잎이 올라오는 계절로 받아들인다
햇볕이 제대로 들지 않는 사무실의 내 방에도 봄이 이렇게 난꽃으로 찾아 들었다
이전하기 전의 내 방은 하루종일 해가 들어서 그 혜택을 올 봄까지는 누리나보다
다우에게 새 차가 오면 연락을 달라고 했더니 운남 대설산의 작년 곡화차라고 하면서 차를 보내왔다
좋은 차를 남들보다 먼저 맛을 보는 혜택을 다우를 둔 덕에 얻게 되니 참 행복한 일이다
곡화차라고 하면 벼꽃의 향이 담긴 가을차를 이르는 것인데 정말 이 차에 그런 향이 담겨 있을까?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가 실린 1956년도에 발간된 시집이 서가에 보였다
백 년이런가, 이백 년이런가 나이 먹은 고목 차나무에서 돋아나는 찻잎을 생각하며 오래된 시집을 펼쳤다
시인은 이미 세상에 없지만 그의 시는 아직도 우리 곁에 늘 머문다
이 시집에 실린 신록이라는 시가 마음에 다가온다
新 綠
어이 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 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제 꽃닢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번 나-ㄹ 에워싸는데
못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허며
붉은 꽃닢은 떨어져 나려
新羅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新羅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풀밭에 바람속에 떨어져 나려
올해도 내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가졌어라
이 차를 생산한 이의 서명이 차 덩어리에 묻혀있다
차 이름은 야생화, 만든 때는 병술년, 만든 이는 대평...
병술년은 2006년이지만 내비는 만들어 놓은 것을 썼기 때문에 2010년 차란다
사무실에서 쓰는 차판, 자주 찻자리를 하는 다우이자 도반인 벗이 중국에서 쓰는 것을 선물로 주었다
폐선에서 나온 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이 무거운 놈을 들고와서 내게 건네니 고맙기 이를 데 없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수치로 계량이 되지만 이렇게 마음을 담아 건네는 건 한량없는 가치를 부여할 밖에...
가장 아끼는 경덕진 개완에 4g을 넣었다
개완의 크기에 비해서 양이 좀 많기는 하지만 품다를 할 때는 맛이 진한 게 제 맛을 느끼기에 좋았다
과연 곡화차의 진수를 음미할 수 있을까?
숙우와 찻잔은 자기로 만든 것인데 잔은 장작가마에서 나온 것이라 제법 이름값을 하는 놈이다
숙우는 쓰기 편한 가스가마 출생인데 출수도 좋고 절수가 아주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차판에 놓고 쓰는 다구를 되도록 우리나라 제품을 쓰려고 애를 쓰는데 차호는 아직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세차를 하고 다시 열탕을 부으니 차향이 온 방에 가득하다
이게 곡화향인가?
벼꽃의 향을 알지 못하지만 향긋한 내음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세차 후 찻탕이라 아직 찻잎이 다 풀어지지 않아 탕색이 옅은 편이다
잔 바닥에 그려진 난꽃 하나,
방에 핀 난꽃과 잔 안의 난꽃과 방안에 가득한 차향이 어우러진다
첫탕은 마시지 않고 제 방의 불단에 올린다
석가모니불, 좌보처 지장보살, 우보처 법정스님
'이 차를 올리오니 온 세상이 이 차향처럼 편안한 향기로 가득하게 하소서'
석가모니불이 앉은 좌판으로 대평보이 탑차 한편을 놓았다
차를 깔고 부처님이 앉으니 항상 차향에 가득차 있으셔서 세상이 차로 행복해지도록 해주실까?
흙으로 빚어 구운 지장 보살은 넉넉한 상호로 늘 세상을 따뜻하게 보듬어라고 하는 것 같다
제대로 우린 차 한 잔,
유백색의 탕색이 地乳라고 부르는 의미를 구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땅에서 나는 젖이니 차를 마시며 나는 무엇을 키워야 할까?
차를 입에 머금으니 고수차가 주는 무게감과 부드러움이 입안을 편안하게 한다
매끄러운 맛에 떫은 맛은 거의 없다해야 할 것 같고 쓴맛은 이것이 차라는 것을 알 정도로 입 안에 맴돈다
그리고 향기로운 단맛이 전체적으로 어우러진다
마시고 난 빈 잔을 그냥 둘 것이 아니라 聞香을 해야 한다
고수차의 특징은 빈 잔에 묻어있는 향기를 음미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빙도 명전을 마신 딸아이가 철관음이냐고 되물은 적이 있다
올 봄의 빙도 명전을 구할 수 있다면 그 향을 다시 음미해 보고 싶다
물을 부어서 일어나는 차향과 잔에 묻어나는 차향은 느끼는 정도가 다른 것 같다
대설산의 자연을 담아 풀어내는 향기를 꼭 이 차를 마시면서 느끼기를 바란다
엽저를 보니 가을차라 그런지 한 잎 씩 차를 채다한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마디마다 싹뚝 자른 칼자국이 봄차처럼 정성을 담은 것은 아닌듯 하다
여름내 찻잎이 자라고 가을이 다가오면서 다시 돋아난 찻잎이라 채다하는 방법이 다른지도 모르겠다
유백색의 탕색은 스무탕까지도 지속이 되지만 무거운 맛은 10포 째 정도부터 빠진다
맑은 맛에 농도는 떨어지지만 담백한 차맛은 마시고 싶은 때까지 우려도 될 듯하다
마시고 또 마시고...
곡화차라는 멋진 이름의 대설산의 고수차,
모차 값이 해마다 너무 오르기에 이제 고수차라는 이름의 생차는 장차하는 여유를 누리기 어려울 것 같다
차의 고향인 운남의 향기를 담은 차 한 편, 곁에 두고 넉넉하게 마셔도 좋은 차라고 생각한다
아- 나는 차을 가졌어라
귀한 차라고 궂이 부르지 않더라도
나만 알아도 좋을 기찬 차 한 편을 가졌어라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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