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톱날을 갈든지 톱을 바꾸든지

무설자 2005. 11. 2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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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오랜만에 도시를 떠나 아내와 함께 지리산 근처를 찾았었다.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이렇게 훌쩍 나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긴 아무 때나 떠날 수 있다면 이렇게 어렵사리 나서는 길보다 가슴 설렐 만큼 좋지는 않았으리라.

 

목적지는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보이는 금대산 금대암이었다.

서울에서 이 곳 금대암까지 머리를 식히려고 와 있는 친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20년 가까운 사회생활을 돌아봐야겠다며 불자도 아닌 친구가 가 있을만한 절을 물어와 친분이 있는 스님께 허락을 얻어 그가 머무르게 된 것이었다.

그 높은 산중에도 절 바로 앞까지 포장도로가 나 있다.

처음 이 절을 찾아 왔을 때는 눈이 와서 중턱에서부터는 걸어왔는데, 이번에는 길을 다시 포장한다며 산 아래부터 차량을 통제하는 바람에 한 시간을 걸어가야 했다.

원래부터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으면 불편하다는 생각을 않았을 터인데 차로 갈 수 있는 길이었기에 걸어가야 한다는 맘에 발걸음이 무겁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래도 산을 오르며 힘들 때마다 뒤돌아보는, 한껏 여름을 재촉하고 있는 신록의 지리산 풍경이 싱그러웠다.

이 나무는 보리밥 나무, 저 나무는 뭐지? 하고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오르는 산행이라 마냥 즐거운 길이었다.

기억에도 없는 오랜만의 아내와 둘만의 호젓한 데이트다.

차로 절까지 간다는 말에 구두를 신고 따라나선 아내가 힘겨워 보이지만 둘만의 시간이라며 좋아라하는 모습이 예쁘다.

도착하여 주지 스님의 환대를 받으니 바로 점심공양 시간, 공양주 보살님의 정성이 담긴 음식 맛이 너무 좋다.

산에서 거둔 취나물 무침이랑 된장국 내음이 향기롭다.

일요일이라 대구에서 왔다는 분들과 함께 먹는 부산한 분위기에 음식 맛이 한 맛을 더한다.

이래서 음식은 여럿이 다소 떠들썩하게 먹어야 맛이 더하는 것 같다. 절에서는 조용히 먹어야 하는 법이건만.

금대암의 숨어있는 명소, 대웅전 옆의 대 숲 뒤에 가려진 길로 오르면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자가 나온다.

입구에는 외인출입금지 팻말이 있어 아내는 들어오지 말라는 곳에 간다고 또 좋아라 한다.

그 곳에서 환암 주지스님이 내주시는 차를 마시며 얘기를 듣고 하니 그냥 신선이 된 기분이다.

내려갈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친구와 요사에서 얘기를 좀 나누었다.

어제 왔더라면 밤을 새가며 할 얘기를 짧은 시간에 하려니 괜히 맘이 바쁘다.

친구가 머무는 방에는 배낭과 조그만 탁자하나, 친구의 몸만 있을 뿐이다.

그것도 내 몸뚱이만 있으면 되는 떠나온 길의 나그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짐 같아 보인다.

그새 일주일을 절에 머무른 친구는 이런 깨달음을 내게 전한다.


해가 기울어 가는 어느 오후였네.
방에 앉아 어둠이 조금씩 주변을 지워 가는 바깥을 보고 있었지.
아무 생각 없이 내다보던 밖의 숲이 문득 사라지면서 마루를 막고 있던 창유리에 내 모습이 비치더라구.

방안에 불이 켜져 있으니 유리가 거울이 된 셈이지.
일주일 동안 거울을 볼 일이 없었는데 그 유리에 비쳐진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네.

저게 나인가? 하고 말이야.
이 곳에 와서 일주일 내내 면도를 하지 않은 내 모습이 그렇게 생소할 수 없더라구.
그렇게 한참을 내 얼굴을 쳐다보다가 방문을 닫아 버리니 그 얼굴도 사라져 버리고 곧 내면의 나를 돌아보게 되더라.
'이곳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줄곧 하게 되었다네
.


그렇다.

이십대, 삼십대를 훌쩍 보내고, 일에 쫓겨 살다가 문득 돌아보는 사십대 중반의 나, 이 나는 누구인가?

직장을 그만두어야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준비가 안 된 나만의 일을 시작해야만 할 때, 건강하던 몸에 병이 들었을 때, 친구의 죽음을 보게 되었을 때 우리는 새삼스레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하고 뒤돌아보는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그 주기가 자주 오면 좋다.

거울을 쳐다보듯 나를 자주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마음공부란 그런 것이 아닌가?

바깥으로만 향하는 삶을 내면으로 향할 때만이 자신을 점검하게 될 것이다.

십대든, 오십대든 자주 자신의 내면을 살피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도 자주 절을 찾아 부처님 앞에 엎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열심히만 살아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고 산다.

그 최선을 다하는 여건과 방법이 다를 뿐이기에 어떤 것이 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인정하는 그 결과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떤 이는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시작으로 삼아 더 큰 결과를 만드는 이가 있을 것이며, 어떤 이는 반복되는 결과에 만족하며 새로운 시작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의 차이 정도가 아닐까?

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냥 바뀐다는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세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바뀌어 지는 세상에 나를 맞추지 않으면 내가 있을 자리가 없어지는 그런 무서운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 변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필수적인 것이다.

이 세상이라는 거울에 나를 비춰보면 익숙해 있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세상과 코드를 맞출 수 있는 모습으로 정리를 해야 한다.


나무를 자르려는 사람이 열심히 톱질을 하는데도 처음처럼 잘라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속 반복되는 톱질에 톱날이 무디어졌을 것이니 당연히 톱을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톱날이 무뎌져 있다면 열심히 톱질을 한다 해도 그 노력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때마다 수시로 톱날을 갈아주든지 아니면 새 톱으로 바꾸어야하듯 우리의 삶도 수시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하고 점검하는 삶의 자세를 통해서만이 바람직한 내 모습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

살아가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공부가 필요하다면 그 중에 이만한 화두가 어디에 있을까?

지금처럼 앞이 막힐 때 바깥으로 향하는 관심을 안으로 돌려보자.

모든 것이 막막하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무딘 톱날 같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원망하며 갑갑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아마 톱날을 갈 때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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