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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일찍 눈이 떠지질
않습니다. 게으른 것은 아닌데 무엇을 바지런히 하지도 않습니다. 이 증상이 나이를 조금씩 먹어간다는 것일까요? 청춘은 몸이 먹는 나이와 상관없이
열심히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나이만큼 몸도 그렇게 되는 나는 그냥 보통 사람인 모양입니다.
이제 사십대 중반이니 계절이라면 가을이 되겠지요. 늦은 가을은 아닌 초가을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낮에는 햇살이 여름처럼 뜨거운 건 아닌데 얼굴에 닿으면 따갑습니다. 그러다가 해가 기울면 쌀쌀해집니다. 낮에는 아직 반소매 옷을 입어도 되는데 밤이 되면 긴소매 옷이 필요해집니다.
사십대라는 나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여름과 같은 열정이 식은 것도 아닌데 무턱대고 일을 벌일 수도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정신 없이 일을 하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쉽게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 필요란 것도 앞뒤를 자꾸 재게 됩니다. 이것이 나이를 의식하는 증거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겨우살이를 준비하는 다람쥐처럼 노후라는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겠지요. 가을은 봄과 같이 짧습니다. 긴긴 여름 해처럼 아직 남아있는 뜨거운 햇살을 믿고 어영부영하다가는 추운 겨울을 대책 없이 맞이하게 됩니다.
가을과 같은 나이, 가을이 금방 지나가듯 금방 나이를 먹을 것이라는 무언지 모를 불안함이 항상 어깨를 누릅니다. 사십대는 둘 넷 여섯 여덟으로 나이를 먹고 오십대는 쉰 쉰다섯 예순으로, 그 다음에는 육십 칠십 팔십이 된다는 얘기를 우스개 소리로 들었는데 이제는 그 얘기가 진지하게 느껴집니다.
제 일로 사람을 만나 점심을 먹어보면 삼사십대 건축주는 밥 먹는 시간이 30분이면 되지만 오륙십 대는 반주도 한 잔하면서 한 시간을 훌쩍 넘깁니다. 시간을 쓰는 개념이 그렇게 다릅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바쁠 일이 적다는 것이죠. 이십대 삼십대에 한참 일을 할 때의 저를 돌아보면 그 때는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제 일의 특성상 밤을 새는 날은 다반사고 일하는 능률도 좋았습니다. 이제는 한 가지 일을 잡으면 오전 지나가고, 찾아오는 사람, 찾아가는 사람 만나면 오후는 또 그냥 금방 지나가 버립니다. 점심도 보통 한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이 지나가는 속도가 나이 만큼입니다. 이십대는 이십 킬로미터, 오십대는 오십 킬로미터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시간 속에서 나의 일을 바라봅니다.
여름은 밤이 짧고 낮이 깁니다. 그만큼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입니다. 가을은 그 길었던 낮이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는 계절입니다. 겨울이 다가와 낮이 짧아졌다는 걸 느낄 때는 이미 늦습니다. 살갗으로 찬 기운이 느껴지기 전에 곧 겨울이 올 것이라는 것을 감지하는 이는 넉넉한 겨울을 맞이하겠지만 외투를 꺼내면서 겨울을 느끼는 사람은 그 옷으로도 추운 겨울을 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가을이 깊어 갑니다.
창문을 닫고도 밤새 보일러가 돌아가야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습니다. 보일러에 들어가는 기름 값이 걱정되어 밤새 잠을 못 이루는 요즘의 어려운 경제적인 상황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내일을 걱정하면서 가을의 이 스산한 바람을 느끼는 우리의 삶은 돈으로 해결하는 삶의 태도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 삶인가를 깨달아야 하는 지혜를 요구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귀하게 여겨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돈 많은 사람이 지새우는 겨울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짧은 것은 아닙니다. 밤의 길이는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걱정이 많고 적음의 차이일 것입니다. 돈의 가치만으로 행복의 척도를 가늠하는 이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행복을 느끼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가득 채우지 못하는 돈이라면 마음을 채워 만족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겨울이 다가옵니다.
추운 밤을 떨며 지새우는 육신에 미치는 추위가 아니라 내일을 불안해하며 잠을 청하지 못하는 인생의 겨울은 돈만으로 봄을 기다릴 수 없을 것입니다. 평생을 길에서 사시다 길에서 열반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돈으로 삶을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가을은 지금의 세상은 돈이 없어도 살기 어렵지만 돈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겨우살이의 준비를 생각해보는 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사십대 중반이니 계절이라면 가을이 되겠지요. 늦은 가을은 아닌 초가을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낮에는 햇살이 여름처럼 뜨거운 건 아닌데 얼굴에 닿으면 따갑습니다. 그러다가 해가 기울면 쌀쌀해집니다. 낮에는 아직 반소매 옷을 입어도 되는데 밤이 되면 긴소매 옷이 필요해집니다.
사십대라는 나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여름과 같은 열정이 식은 것도 아닌데 무턱대고 일을 벌일 수도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정신 없이 일을 하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쉽게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 필요란 것도 앞뒤를 자꾸 재게 됩니다. 이것이 나이를 의식하는 증거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겨우살이를 준비하는 다람쥐처럼 노후라는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겠지요. 가을은 봄과 같이 짧습니다. 긴긴 여름 해처럼 아직 남아있는 뜨거운 햇살을 믿고 어영부영하다가는 추운 겨울을 대책 없이 맞이하게 됩니다.
가을과 같은 나이, 가을이 금방 지나가듯 금방 나이를 먹을 것이라는 무언지 모를 불안함이 항상 어깨를 누릅니다. 사십대는 둘 넷 여섯 여덟으로 나이를 먹고 오십대는 쉰 쉰다섯 예순으로, 그 다음에는 육십 칠십 팔십이 된다는 얘기를 우스개 소리로 들었는데 이제는 그 얘기가 진지하게 느껴집니다.
제 일로 사람을 만나 점심을 먹어보면 삼사십대 건축주는 밥 먹는 시간이 30분이면 되지만 오륙십 대는 반주도 한 잔하면서 한 시간을 훌쩍 넘깁니다. 시간을 쓰는 개념이 그렇게 다릅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바쁠 일이 적다는 것이죠. 이십대 삼십대에 한참 일을 할 때의 저를 돌아보면 그 때는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제 일의 특성상 밤을 새는 날은 다반사고 일하는 능률도 좋았습니다. 이제는 한 가지 일을 잡으면 오전 지나가고, 찾아오는 사람, 찾아가는 사람 만나면 오후는 또 그냥 금방 지나가 버립니다. 점심도 보통 한 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이 지나가는 속도가 나이 만큼입니다. 이십대는 이십 킬로미터, 오십대는 오십 킬로미터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시간 속에서 나의 일을 바라봅니다.
여름은 밤이 짧고 낮이 깁니다. 그만큼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입니다. 가을은 그 길었던 낮이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는 계절입니다. 겨울이 다가와 낮이 짧아졌다는 걸 느낄 때는 이미 늦습니다. 살갗으로 찬 기운이 느껴지기 전에 곧 겨울이 올 것이라는 것을 감지하는 이는 넉넉한 겨울을 맞이하겠지만 외투를 꺼내면서 겨울을 느끼는 사람은 그 옷으로도 추운 겨울을 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가을이 깊어 갑니다.
창문을 닫고도 밤새 보일러가 돌아가야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습니다. 보일러에 들어가는 기름 값이 걱정되어 밤새 잠을 못 이루는 요즘의 어려운 경제적인 상황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내일을 걱정하면서 가을의 이 스산한 바람을 느끼는 우리의 삶은 돈으로 해결하는 삶의 태도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올바른 삶인가를 깨달아야 하는 지혜를 요구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귀하게 여겨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돈 많은 사람이 지새우는 겨울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짧은 것은 아닙니다. 밤의 길이는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걱정이 많고 적음의 차이일 것입니다. 돈의 가치만으로 행복의 척도를 가늠하는 이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행복을 느끼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가득 채우지 못하는 돈이라면 마음을 채워 만족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겨울이 다가옵니다.
추운 밤을 떨며 지새우는 육신에 미치는 추위가 아니라 내일을 불안해하며 잠을 청하지 못하는 인생의 겨울은 돈만으로 봄을 기다릴 수 없을 것입니다. 평생을 길에서 사시다 길에서 열반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돈으로 삶을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가을은 지금의 세상은 돈이 없어도 살기 어렵지만 돈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겨우살이의 준비를 생각해보는 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