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는 생차와 숙차 두 종류가 있다고 했지만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무수한 갈래로 펼쳐진다. 보이차는 사실 종류가 많다기 보다 수많은 갈래로 나누어진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래서 보이차의 정체를 파악하는 게 어렵다는 말이다. 보이차는 마시면 마실수록 혼란스러운 건 맞지만 달리 표현하자면 흥미진진한 차라고 할 수 있다.
보이차의 갈래를 살펴보면 생차와 숙차 뿐만 아니라 대지차와 산토차, 노차와 신차, 소수차와 고수차, 중소엽종 차와 대엽종 차, 건창차와 습창차, 봄차와 가을(곡화)차, 첫물차와 두물차 등등 인데 대체 얼마나 공부해야 한 눈에 들어올지 난감하기는 하다. 그래서 보이차를 어설프게 알면서 이렇다고 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수준이 되고 만다.
보이차의 특성은 후발효와 수많은 산지, 그리고...
보이차가 다른 차류와 크게 다른 점은 후발효라는 특성에 있다. 후발효는 차가 만들어지고 난 뒤에도 계속 발효(산화)가 진행되는 것을 이르는데 차의 향미가 시간과 함께 긍정적으로 변하면서 고부가가치가 부여된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홍인이라는 보이차는 357g 한 편에 1억을 호가한다고 하면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1930년대 차라고 하는 호급차는 골동품처럼 경매로 거래된다고 하니 보이차는 신비에 쌓인 차가 되고 있다.
그해 만들어진 차라고 해도 산지별로도 가격에서 큰 차이가 난다. 어떤 산지는 한 편에 천만 원을 호가하기도 하는가 하면 몇 만 원에 그치는 산지도 있다. 가장 비싼 차를 꼽으면 노반장이나 빙도노채 차가 그 주인공이 다. 그렇지만 포장지에는 ‘빙도’라고 적혀 있어도 몇 만 원으로 파는 차도 있으니 초보자는 선택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이름만 보고 살 수도 없고 판매자의 말을 다 믿을 수도 없으니 돈이 있어도 사는 게 망설여지는 차가 보이차이다.
또 다르게 보이차의 종류를 나누는 건 차를 만드는 시기와 관련이 있다. 보이차를 만드는데 쓰는 찻잎은 운남성에서 나는 차나무로 한정하는데 아열대라는 기후 특성에 따라 거의 일 년 내내 딸 수 있다. 봄에는 첫물, 두물, 세물까지 따고 여름에는 夏茶하차, 가을에는 穀花茶곡화차, 겨울에도 잎을 따서 冬茶동차로 만들기도 한다. 첫물차가 가장 비싸고 여름차가 제일 싸며 곡화차가 중간 가격인데 포장지에 잘 표시하지 않아서 알아보는게 어렵다.
보이차가 후발효차라는 특성이 있다는 점과 산지별로 향미의 차이가 있고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차이를 섞으면 무수하게 많은 종류가 나오게 된다. 그야말로 보이차 한 편에 공간과 시간이 중첩되고 상인의 상술까지 섞여들면서 신뢰의 문제에서 구매 판단을 흐리게 하니 소비자는 미궁에 빠지고 만다.
보이차를 만드는 차나무와 찻잎의 정체
보이차의 산지인 중국 운남성은 차나무의 원생지라고 하고 아열대 기후이다. 보이차를 만드는 차나무는 주로 대엽종인데 잎이 다 자라면 손바닥만큼 크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차나무는 소엽종이라 손가락 두 개만 한 크기와 비교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차나무는 추운 지방으로 갈수록 잎의 크기는 작아지고 두께는 두터워진다. 차나무가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차나무가 살 수 있는 북방한계선은 중국은 청도, 우리나라는 강원도 고성이다.
보이차를 만드는 대엽종과 녹차의 원료인 소엽종은 잎의 크기만큼 성분에서도 차이가 난다. 찻잎의 주성분은 폴리페놀(카테킨)과 아미노산, 카페인인데 성분비에서 대엽종은 폴리페놀 성분이 많고 소엽종은 아미노산이 많다. 폴리페놀은 쓰고 떫은맛, 아미노산은 시원하고 감칠맛이니 녹차는 감칠맛이 좋고 보이차는 쓰고 떫은맛이 많다. 차나무 잎으로 어떤 차를 만들지는 바로 폴리페놀과 아미노산의 성분에 의해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차를 만들어 시간이 지나면서 폴리페놀 함량은 점점 줄게 된다. 폴리페놀 성분 감소는 차의 향미에서 맛이 심심하게 된다. 폴리페놀의 양이 적은 녹차는 풍미를 잃게 되지만 보이차는 독특한 향미로 변화가 일어나 노차라는 별칭을 가지면서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녹차는 만들어진 그 해에 팔지 못하면 폐기 처분되고 말지만 보이차는 묵히는 연도만큼 가치가 올라간다.
차라는 범주에서 녹차는 만들어진 해에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한다면 보이차는 오래토록 가치를 인정 받는 스테디셀러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최근의 보이차는 ‘만들어진 그 해에도 좋은 차,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되는 향미도 좋은 차’를 목표로 삼는다.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보이차 기업인 오운산 보이차의 회사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當年好茶 徑年新茶’이다.
보이차라는 이름은 하나, 마시는 차 종류는 무한대
-소엽종과 대엽종, 신차와 노차
일부 중소엽종이 있기는 하지만 보이차는 거의 대부분 대엽종으로 만들어진다. 폴리페놀 함량으로 보이차의 특징이 드러나는데 유통기한 무한대의 특별한 차가 종류도 무한대가 되는 것이다. 보이차는 쓰고 떫은맛의 폴리페놀이 바탕이 되면서 단맛과 쓴맛의 조화로움이 산지마다 다른 향미를 가지게 한다. 노차는 차의 주성분인 폴리페놀이 변화되면서 독특한 풍미가 생겨나게 된다.
-생차와 숙차
대지차가 보이차의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 생산되었던 생차는 쓰고 떫은맛 때문에 중국에서는 관심을 받지 못했다. 폴리페놀의 쓰고 떫은맛을 완화시킨 숙차가 1975년에 개발되면서 외국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숙차는 기호 음료로 선택 받았던 것이 아니라 건강에 좋은 차로 선호되었다. 2010년 전후에 생차는 고수차가 후발효차의 특성으로 투자의 대상이 되면서 특정 산지 차는 가격이 폭등하게 되었다. 대중적인 수요는 숙차, 투자자와 마니아의 수요에서 생차가 보이차 르네상스를 열게 되었다.
-다원(대지)차와 생태 산토(고수)차
쓰고 떫은맛 때문에 숙차가 아니면 마시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던 게 고수차의 등장이다. 문화혁명 시기에 오래된 차나무가 베어져고 대규모로 조성된 차밭의 대지(다원)차는 쓰고 떫은맛 때문에 대중적 수요를 잃고 말았다. 심심산골에 있어서 베어지지 않고 살아남았던 古茶樹고차수, 2010년을 기점으로 묵히지 않아도 녹차와 차별되는 향미로 산지 별 특성을 가진 고수차가 주목을 받으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첫물차와 그 이후 차
첫물차는 겨우내 차나무에 축적된 성분을 담은 찻잎의 새순이 나오는 청명 무렵에 만들어진다. 첫물차는 감칠맛이 풍부해서 그 이후에 따는 찻잎과는 향미에서 큰 차이를 가진다. 첫물차는 잎을 딸 수 있는 시기가 한정되므로 생산량이 적어 유명 차산지에서는 입도선매되고 있다. 유명 산지가 아니라도 첫물차를 마셔보면 생차의 진미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소수차, 중수차, 대수차, 고수차와 단주차
차나무의 수령에 따라 구분하는 차 이름이 있다. 수령으로 따져서 小樹茶소수차는 30년 이하, 중수차는 50년 이하, 대수차는 100년 이하, 고수차는 100년 이상이다. 또 300년 이상된 차나무 한 그루에서 잎을 따 만들어 單柱茶단주차라고 부르며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포장지에 유명 산지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가격이 싼 차는 소수차에 늦 봄에 딴 찻잎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차산지마다 다른 향미로 産地산지가 이름인 산토차
맹해차구의 노반장, 임창차구의 빙도노채를 필두로 산지마다 다양한 향미의 고수차가 보이차 열풍을 불러 일어키고 있다. 오래 묵히지 않아도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생차로 고수차가 보이차의 기존 인식을 바꿔놓았다. 2010년 이전에 비해 빙도노채는 백 배, 노반장은 오십 배까지 가격차를 보이고 다른 산지도 찻값이 덩달아 오르면서 보이차의 가치를 평가 받고 있다.
수많은 보이차 종류를 추천할 수 있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리해 볼 수 있을까? 먼저 차나무의 樹齡수령을 확인해야 하겠다. 그 다음은 차산지가 어디이며 잎을 딴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믿을 수 있는 차창이라면 포장지에 차산지, 차나무의 수령과 찻잎을 딴 시기가 표기되어 있을 것이다. 차산지 중에 빙도노채나 노반장 등은 구입할 때 아주 신중해야 하는 곳이다. 유명 산지나 수령에 현혹되지 말고 첫물차로 생차의 향미를 음미해 보기 바란다.
보이차는 다양성으로 그 너비를 가늠하기 어렵고, 2000년 이상된 수령의 차나무가 있으니 그 신비는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차 중에서 가장 싼 차도 보이차이고, 억대에서 경매까지 가격이 결정되는 차도 보이차이다. 군웅할거 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처럼 보이차도 자칭 황제를 들먹이는 차가 해마다 나오고 있다. 누구나 마시고 있는 노반장, 과연 그 이름처럼 보이차의 황제일까?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 - '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10
원문읽기 : https://www.womaneconom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022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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