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원효 스님의 마당

무설자 2023. 8. 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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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늦가을, 분황사 마당에는 낙엽이 이리저리 바람에 구르고 있었다. 설총은 자신이 원효 스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버지를 찾아 분황사로 달려왔다. 스님이 파계를 해서 자식을 낳았고 자신이 그런 아버지를 두었다는 게 부끄럽고 억울했다.      

 

원효 스님 앞에 선 설총은 그 연유를 말로 뱉지 않아도 분노에 찬 눈빛이 이미 따지고 있었다. 원효 스님은 말없이 밖으로 나왔고 설총을 그 뒤를 따랐다. 원효 스님은 빗자루를 설총에게 주면서 절 마당을 쓸라고 했다.    

 

원효 스님이 누구인가? 이 나라의 국사나 다름없는 어른인 원효 스님의 명이니 일단 절 마당을 쓸 수밖에 없었다. 늦가을 절 마당은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이 떨어져 깨끗하게 쓸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당에는 낙엽 하나 없이 깨끗하게 비질이 되어 있었다.    

 

설총은 원효 스님의 방 문 앞에서 청소가 끝났음을 고했다. 방에서 나온 원효 스님은 쓸어놓은 낙엽 더미 앞으로 다가갔다. 스님은 낙엽을 한 움큼 쥐더니 설총이 애써 쓸어놓은 깨끗한 마당에다 흩뿌리는 게 아닌가? 이런 스님의 행동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설총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가을마당은 그렇게 쓰는 법이 아니니라.”        

 

원효 스님의 이 말씀이 설총이 아버지를 찾아와 따지려던 내용에 대한 대답이었다. 마당이 늘 깨끗하게 비워져 있을 수 있을까? 청소를 막 끝낸 마당은 깨끗한 상태일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청소를 했을까 싶도록 다시 지저분해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면 또 아침에 누군가 청소를 해서 깨끗한 마당을 만든다.     

 

가을마당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백토가 깔린 하얀 마당에 붉고 노란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는 장면이지 않은가? 쓸고 나면 금방 나뭇가지에서 낙엽이 떨어져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게 되는 게 가을마당이다. 낙엽이 없는 마당은 가을마당이 아닐 것이다.   

  

가을마당에서 낙엽은 싹싹 치워야만 하는 이물질이 아니다. 밤이 깊어 사위가 고요한 시각이면 낙엽 구르는 소리는 가을밤의 아취에 빠지게 한다, 낙엽이 없는 절 마당이라면 가을의 운치는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  

 

사진출처-PIXABAY

설총이 원효 스님께 따지려 했던 건 마당은 늘 깨끗하게 비워져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그건 잘못이었다는 걸 느꼈을까? 총명했던 설총은 원효 스님의 이 한 마디에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붉고 노란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마당을 바라보며 천천히 분황사를 걸어 나가는 설총을 떠올려본다.    

 

이 이야기는 기억에는 남아 있지만 출처를 찾을 수가 없다.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글의 소재로 여러 사람이 글로 지어 올린 건 찾아볼 수 있었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그리고 설총은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에게 얽힌 이야기는 한낱 가십거리로 볼 수 없는 시대를 대표하는 사건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할 딱 한 사람의 철학자를 들라고 하면 두말없이 원효라고 한다. 또 우리 역사에 가장 으뜸가는 고승을 꼽으라고 해도 원효대사라고 한다. 그뿐이랴 기행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도 원효일 것이다. 원효 스님은 파계마저도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당신의 행적을 내세워 자신의 마당이 쓰레기로 가득하다는 걸 모르는 이 시대의 파계승들을 어찌해야 할까?    

'가을마당은 그렇게 쓰는 법이 아니니라'

    

우리는 자신의 마당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아예 내팽개쳐서 쓰레기로 가득한 상태이거나 잡초가 무성한 풀밭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마당은 깨끗해야 한다며 비질만 해대고 있을 수도 있다. 올 가을에는 내 마당을 돌아보자.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