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어떤 차보다 어떤 자리

무설자 2022. 6. 2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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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20620

어떤 차보다 어떤 자리

 

 

 

보이차를 처음 마시게 되었을 때는 무작정 내 손에 있는 차라면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보이차를 마시던 초창기에는 숙차를 주로 마셨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붉은색의 탕색도 고왔지만 순하고 독특한 향미에 빠져들었다.

 

2006년 무렵에는 차값도 얼마나 착한지 매주 구입을 하는데도 부담이 없었다. 그 당시는 당해 생산된 숙차는 대익이나 노동지도 한통에 십만 원도 안 되었다. 지금도 브랜드 숙차는 부담 없는 가격이니 보이차로 차생활을 시작하는 건 얼마나 쉬운가?

 

몇 년 전에 만난 한 스님은 홍인을 일상에서 마셨던 茶歷차력이 오랜 분이었다. 그 스님에게 그럼 지금도 인급차를 소장해서 마시고 있는지 물었다. 스님 말씀이 지금은 손에 들어오는 대로 마신다면서

"중이 음식을 가려가며 먹을 수 있나요?"

하면서 호쾌하게 너털웃음을 웃어 보였다.

 

보이차로 하는 차 생활은 더 좋은 차의 향미를 즐기려 하기보다 밥 먹듯이 차를 마시는 일상을 누리는 데 있다.  때가 되면 밥을 먹듯이 일상에서 목마르면 마시고 같이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마신다. 때마다 먹는 밥이 된장찌개도 먹고 라면도 먹듯이 보이차도 내 손에 있는 차라면 어떤 차라도 차별하지 않고 마신다.

 

평범한 숙차를 마신다고 해서 그 사람의 차 생활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매일 김치찌개와 된장국을 먹는 사람이라고 해서 불행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침밥을 거르지 않고 저녁이면 식구들과 웃음꽃을 피우는 밥을 먹는 그 집 사람들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수행자처럼 이겨나간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라며 빠듯한 살림을 아껴가며 식구들이 삼시세끼 거르지 않는 것에도 고마운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때마다 산해진미가 차려지지만 그 귀한 음식을 앞에 두고도 입맛이 없어 쳐다보기도 싫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오히려 불행하지 않은가?   

 

한 편에 일억을 호가한다는 홍인을 창고 가득 쌓아두고 마셔도 그 차에 만족하지 못하면 귀하고 비싼 것이 무슨 소용일까? 흔하디 흔한 숙차를 마셔도 식구들과 가지는 차 한 잔의 자리에 웃음꽃이 피어나는 집이 더 행복하다. 재물로 貴賤귀천을 따지는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이 일상에서 얻어지기는 어렵다는 걸 누구나 안다.

 

 

15 년 이상 보이차를 마시다 보니 비싸고 귀한 차도 마셔보고 내 손에도 흔치 않은 차를 가지게 되었다. 더 좋은 향미를 가진 차로 인해 그보다 못한 차에 손이 가지지 않으니 차를 가리게 된 지금이 더 불편하게 되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 그만큼 값 비싼 차를 마실 수 있지만 그런 차가 내 삶을 더 행복하게 하는 건 아니다.

 

오늘 저녁에도 식구들이 모여서 정성껏 차린 밥을 먹고 차 한 잔 나누는 소확행을 누리고 있는가? 매일 식구들과 밥을 먹고 차 한 잔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식구들의 일상을 굳이 소확행이라 부를 필요도 없다. 그런 일상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이 식구들과 먹는 밥, 차 한 잔과 함께 하는 대화의 자리를 부러워할 뿐이다.

 

 

식구들과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숙차를 마시면서 이렇게 얘기를 주고받는다.

"오늘 하루도 우리 식구들이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이렇게 밥과 차를 나눌 수 있으니 참 좋구나."

이 자리에 어떤 메뉴로 저녁밥을 먹었든, 어떤 차를 마시든 그게 뭐 중요할까?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