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20623
보이차는 나만의 차
17년째 보이차를 마시다 보니 꽤 많은 종류를 가지게 되니 마실 때마다 어느 차를 선택할지 망설이게 된다. 어떤 사람은 마음에 드는 차가 있으면 그 차만 계속 마신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매일 다른 차를 마시는 편이라 그 선택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숙차만 마시던 때는 고르기가 그나마 쉬운 편이어서 큰 기대 없이 손에 잡히면 그날의 차가 되었다. 숙차는 즐겨 마시는 차가 특별히 없어서 숙미만 적으면 아무래도 좋았다. 물론 근래에는 특정 산지 고수차를 모료로 만들어지고 있어서 애정 하는 차도 생기고 있는 중이다.
십 년 이상 숙차만 마셔대다가 몇 년 전부터 생차도 본격적으로 마시게 되면서 차 선택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은 단맛이 풍부한 임창 차구의 차 중에서 어느 차를 택할까 망설이게 된다. 또 다른 날은 깔끔한 쓴맛을 기대하며 맹해 차구의 차를 손에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어느 때부터는 이번 달의 차를 대여섯 편 골라서 내 자리 옆에 두고 있다. 이달의 차로 뽑아둔 중에서 그날 간택한 차를 마시니 비교적 덜 고민하게 되었다. 어느 달은 임창 차구, 또 다른 달은 맹해 차구로 그 지역 차의 향미에 침잠하게 된다.
생차는 산지 별로 차의 향미가 뚜렷하게 구분이 되니 차를 마시는 재미가 숙차와는 다르다. 또 같은 산지의 이름표를 달고 있어도 차마다 다른 향미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다. 같은 산지의 차라고 해도 쓴맛의 강도 차이보다 단맛으로 구분하는 게 만족도가 높다.
근래에는 생차에서 산지보다 채엽 시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왕이면 첫물차, 즉 이른바 청명 전에 따는 찻잎으로 만든 차가 확실히 달랐다. 첫물차에서만 음미할 수 있는 풍부한 감칠맛은 산지를 막론하고 마시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그런데 생차를 마시는 요즘에 차 마시는 즐거움이 달라지게 되었다. 거의 십오 년을 마셔온 차 마시는 습관을 양에서 질로 바꾸고 있다. 나에게 차는 물보다 자주 마시는 존재였는데 이제 밥만큼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양보다 질을 우선으로 보이차를 대하니 차에 대한 탐심이 줄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차'보다 '어떤 향미를 가진 차'로 지금 마시는 이 시간의 즐거움을 나누려고 한다. 보이차는 후발효 차이니 훗날을 기약할 수 있다며 방안에 가득 채우는 우를 범하려 하지 않는다.
고수차를 마시게 되면서 보이차가 후 발효 차라는 특성으로 보았던 내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올 햇 고수차 모차를 마시면서 용정차 명전 못지않은 보이차만의 독특한 향미를 즐길 수 있었다. 보이차가 후 발효 차라며 묵혀 마시는 차로 인식을 고정한 건 홍콩의 습창차를 판매하려는 상술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물론 보이차의 특성으로 후발효로 인한 차의 향미 변화를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원래 보이차는 묵혀서 마시던 차가 아니었다는 건 아는 사람만 아는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 마셔도 좋고 가지고 있으면서 변화되는 차맛을 즐길 수도 있는 차가 보이차이다.
해마다 그 해에 마실 양보다 좀 더 구입하면 세월에 따라 달라지는 향미를 기대하며 즐길 수 있다. 다양한 산지의 차를 종류별로 구입하면 차의 고향인 운남의 지역적 특성을 음미할 수 있다. 보이차는 지금 마셔도 좋고 두고두고 변화되는 향미를 즐길 수도 있는 정체불명의 차다.
보이차를 어떻게 대하며 가까이해야 오롯이 나만의 차로 즐길 수 있을까?
하나, 곁눈질하지 않고 내가 가진 차를 즐기며 꾸준하게 마시기.
둘, 내 차보다 더 좋다는 차는 그 사람의 차이니 가끔 함께 마시는 기회를 가지기.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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