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火中生蓮화중생연, 고뇌의 불에서 피어나는 행복의 꽃

무설자 2022. 5. 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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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20504

火中生蓮화중생연, 고뇌의 불에서 피어나는 행복의 꽃

 

 

법정 스님이 타계했을 때, 전남 순천의 송광사 근처 숲에서 다비식이 열렸습니다. 포개진 장작더미 안으로 불이 들어갈 때 법정 스님의 제자 스님이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화! 중! 생! 연!”

화중생연(火中生蓮), 글자 그대로 불꽃 속에서 연꽃이 핀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아주 깊은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그륀신부의 메시지로 치자면 불꽃은 상처에, 연꽃은 치유에 해당합니다.

불교에서 연꽃은 깨달음을 상징합니다. 화중생연의 화(火)는 번뇌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이 피어나는 장소는 천상의 낙원이 아닙니다. 결핍이 없는 완전함의 언덕이 아닙니다.

깨달음의 꽃이 피는 곳은 다름 아닌 번뇌입니다. 번뇌를 밀어내고, 번뇌를 털어내서 깨달음이 오는 게 아닙니다. 불꽃 속에 이미 연꽃이 있음을 깨닫는 일입니다.

 

법정 스님은 봄과 가을에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 대중을 향해 법문을 내놓았다. [중앙포토]

 

이런 우주의 이치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왜냐고요? 우리가 치유의 씨앗을 따로 찾지 않아도 되니까요. 상처의 씨앗 속에 이미 치유의 씨앗이 숨어 있다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꾸 겁먹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우리가 찾아 헤매던 인생의 답이, 문제 속에 이미 있기 때문입니다.               

 

-중앙일보 백성호의 현문우답 중에서

 

 

술 밖에 마실 게 없었던 영국에서 홍차를 마시기 시작하며 전 세계로 전해지면서 음료 문화의 대 변혁이 일어났다. 홍차가 중국에서만 생산되던 시기에는 차값이 만만찮아서 영국은 아편을 중국에 들여가 무역 손실을 줄여보려고 했다. 그로 인해 아편전쟁이 일어났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일 때 홍차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자 미국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또 티벳과 당나라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차가 큰 역할을 했다. 티벳은 차 없이 식생활을 해결할 수 없었지만 차가 나지 않아서 당나라에서 들여와야 했기에 저 자세로 국교에 임해야 했다.

 

이렇듯 차는 역사적으로 일상 생활과 사람들 간의 교유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번민과 고뇌가 따르기 마련이며 사람 간의 관계도 갈등과 다툼을 불러오게 된다. 나 혼자 풀어내야 할 번민과 고뇌, 대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다툼을 해소할 매개체로 차만큼 적당한 수단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나를 들여다보면 번민과 고뇌의 원인에 집착과 욕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과 다툼이 생기는 저변에 탐욕과 이기심이 원인이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차는 나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자리에서 큰 역할을 해왔다.

 

나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나 대인 관계가 원만치 않은 이유를 알고 보면 그 중심에 내가 있다. 오직 나라고 하는 이기심과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불장군의 마음이 있음을 알아차리면 안식의 삶을 얻을 수 있다. 고통의 원인과 그 해결책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바로 차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차가 필요한데 그 차를 얻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무엇이든지 수단이 목적이 되어 버리면 행복을 위한 매개체가 아니라 또 다른 고통과 갈등을 부르게 되고 마는 것이다. 차를 목적으로 삼아 욕심을 채우고 자신을 내세우는 도구로 쓰는 사람은 결국 고통과 갈등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火中生蓮,

번민과 고뇌, 갈등과 다툼이라는 불을 다스리도록 도와주는 차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과 함께 하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매개체이다.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라는 걸 알아서 올바른 일상 생활을 잘 지켜나가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매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올바른 일상 생활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깨어있게 하는 그 자리에 차가 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