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탈피해야 할 보이차 구입의 기준

무설자 2022. 5. 13. 17:31
728x90

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20513

탈피해야 할 보이차 구입의 기준

 

 

 

보이차는 생차와 숙차로 나누어진다. 생차와 숙차는 둘 다 보이차로 불리지만 사실은 다른 차라고 봐야 한다. 찻잎을 일차 가공하면 보이차의 원료라고 할 수 있는 晒靑毛茶쇄청모차가 된다. 모차를 만드는 과정은 찻잎을 따서 시들린 뒤에 솥에서 덖어내고 잎에 상처를 주기 위해 비빈 다음 햇볕에서 말린다.

     

이 모차를 덩이 차로 만들면 생차가 되고 이차 가공에서 발효 과정을 거치면 숙차가 된다. 생차가 시간이 지나면서 일어나는 성분 변화는 주로 산화에 의하고 숙차는 발효균의 작용이다. 30년 이상 지난 생차와 금방 만들어진 숙차가 둘 다 짙은 갈색을 보이지만 산화와 발효로 그 요인이 다르다.     

 

발효균에 의해 급속 변화가 일어난 숙차와 오랜 시간을 두고 산화 과정을 거친 생차를 보이차라는 같은 이름을 써도 되는 것일까? 숙차도 발효도를 낮춰서 만들어 시간을 두고 변화될 여지를 남겨둔 경발효 숙차가 있고 생차를 보관하면서 온습도를 조절하면서 발효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 숙차와 생차의 경계선은 분명하지만 숙차의 산화, 생차의 발효를 도모할 수 있어서 보이차라는 하나의 이름을 쓸 수 있나 보다.     

보이차는 ‘싸고 좋은 차’가 아니라 좋은 차인데 비싸지 않은 차    

왜 숙차보다 생차가 더 비쌀까?     

 

가격이 높은 차는 거의 생차인데 왜 발효 과정이 추가되는 숙차가 더 비싸지 않은 것일까? 그 답은 모차에 있다. 숙차를 만들면서 추가되는 악퇴 발효 과정에서 산지마다 다른 모차의 향미가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숙차는 가격이 저렴한 모차를 써서 만들기 때문에 고급 모차를 쓰는 생차가 더 비싼 것이다.     

 

생차는 모차를 그대로 긴압하여 시간에 따라 변하는 정도가 천천히 진행되므로 산지별로 다른 고유한 향미를 오래 보전할 수 있다. 결국 생차는 산지마다, 나무의 수령에 따라, 채엽 시기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료 가격이 차값의 차이를 만들게 된다. 같은 산인데 정상을 기준으로 앞 뒤의 산지가 다르고, 계곡을 두고 마주 보는 산이 서로 다른 향미로 가격 차이를 가진다.     

보이차의 원료가 되는 모차의 차이가 생차와 숙차의 가격이 다른 이유가 된다

 

이렇게 생차와 숙차의 가격에 미치는 요인이 모차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보이차 모료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보이차의 남북 대표로 南남은 시상반나 차구의 老班章노반장, 北북은 임창 차구의 氷島빙도를 꼽는데 두 지역의 첫물차는 立稻先賣입도선매로 거래가 되므로 내 손까지 오기는 가당치 않다. 그 밖의 산지도 유명세를 타는 곳이 많아지면서 봄철이면 이름 난 차산은 모차를 구입하려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 그래서 특정 산지의 생차는 천정부지의 높은 가격이 매겨지고 있다.      

 

근래에는 숙차도 산지 이름이 포장지에 기재되기 시작했고 그 해 만든 차도 만만찮은 찻값이 매겨지고 있다. 그렇지만 숙차는 생차의 가격에 비해서 값이 떨어지는데 모차가 늦은 봄에서 초가을까지 채엽된 수령이 오래지 않은 소수차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대지차가 아닌 고수차를 모차로 쓰고 발전된 발효기술로 만든 숙차는 기존의 좋지 않은 숙차에 대한 인식을 불식시키게 된다.     

생차와 숙차는 차의 외모에서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위는 3년 된 생차, 아래는 13년된 숙차

 

보이차 춘추전국시대에서 다투는 맹주의 자리     

 

고수차라는 이름으로 노반장, 빙도의 양대 산지가 자웅을 다투면서 각 지역의 고수차가 세간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바람을 타고 숙차도 모차를 고수차로 쓰면서 고급차로 출시되고 있다. 그야말로 보이차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고 있는 분위기지만 소비자는 선택의 기준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고수차라는 이름이 알려지는데 노반장의 공로가 컸다고 한다. 지금은 노반장보다 빙도가 더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남 노반장, 북 빙도로 마니아 층이 양분되어 넘보지 못하는 영역을 지켜내고 있다. 문제는 순료가 아닌 노반장, 빙도가 너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맹주는 중국에서 나올 일이 없는데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노반장, 빙도는 수령이 떨어지고 채엽시기가 늦은 봄이거나 가을인 차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알려진 차산의 이름보다 내 취향에 맞는 산지의 차를 찾아보자

   

차 산지가 지역마다 생소한 이름을 드러내면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기회가 닿는다면 각 산지의 차를 마셔보고 내 입에 맞는 차를 선택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알려진 차산의 이름보다 내 취향에 맞는 산지의 차를 찾아보는 재미도 보이차를 즐기는 방편이 될 수도 있겠다.   

 

어떤 분야도 그렇지만 싸고 좋은 건 있을 리 없다고 본다. 가격이 싸면 그만한 이유가 있고 비싸면 또 그렇게 가격이 책정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보이차를 선택하면서 싸고 좋은 차를 찾기 마련이지만 희망 사항일 뿐 적절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고 본다.     

 

차 산지 지도, 셀 수 없이 많은 보이차 산지인데 이 두 지역도 일부이다

 

포장지보다 내용물      

 

고수차로 대세가 잡힌 생차는 유명 산지에 집착하기보다 수령이 100년 이상 된 첫물차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고급화 바람으로 발효 기술이 좋아진 숙차도 가능한 좋은 모차로 만들어졌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이제는 숙차든 생차든 보이차가 '묵혀야 마실 수 있는 차'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지금 마실 수 있는 차'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고수차가 대세가 되면서 보이차 시장의 최근 십 년은 그동안 알려진 보이차에 대한 상식이나 지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보이차가 후발효차라서 쌀 때 구입해서 묵혀서 마셔야 하는 차라는 인식은 탈피해야 할 고정관념이라 하겠다. 지금 마셔도 좋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향미를 즐길 수 있는 차가 고수차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보이차는 다 거기에서 거기라서 통 단위로 싸게 사서 묵혀서 마시면 되는 차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 보이차도 소비자가 요구하는대로 공급의 방향을 잡을 수 있으니 가성비를 따져서 量양으로 收藏수장하기보다는 지금 마셔야 할 차로 産地산지, 樹齡수령, 채엽 시기를 아는 한 편을 찾으면 좋겠다. 지금 마시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차는 시간이 지나도 좋아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고 판단하는 게 고수차에 대한 올바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편당 50만원 전후로 구입할 수 있는 보이 생차, 고수차로 위 사진은 포랑산 첫물차라고 밝혀 놓았고 아래 사진쪽은 괄풍채로 산지만 표기되어 있다

 

보이차를 첫물차가 아니라고 해도 늦은 봄차나 가을차를 구입한다면 한 편에 30~50만 원이면 좋은 차를 구입할 수 있다. 하루에 5g/5000원 정도의 비용으로 마신다면 한 편으로 두 달을 즐겁게 마실 수 있다. 숙차는 5g/1500원이면 357g/10만 원이니 정말 부담 없는 비용이 아닌가? 이 비용을 더 아끼려고 한다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 아닌가 싶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온 가족이 즐거운 찻자리를 가질 수 있는데 더 저렴한 차를 찾는다면 보이차의 향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급자는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준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보이차를 ‘싸고 좋은 차’로 취급하기보다 ‘제 값을 치른 좋은 차’로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