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단독주택 양산 지산심한

단독주택 知山心閑, 내 방이 편안해야 비로소 ‘우리집’

무설자 2021. 2. 10. 11:52
728x90

단독주택 知山心閑, 내 방이 편안해야 비로소 우리집

 

건축사를 취득하던 그해에 첫 단독주택을 설계하는 기회를 얻었다. 지금은 단독주택을 흔하게 짓고 살지만 그때가 1994년이었으니 설계할 기회가 쉽지 않았던 귀한 작업이었었다. 거의 서른 해 전의 새내기 건축사는 의욕과 열정이 넘쳤을 때라 단독주택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화두 풀 듯 애를 썼다.

 

관해헌觀海軒이라는 당호를 붙였던 그 집은 설계자인 나도 만족했지만 건축주도 그 집에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관해헌은 일간지에도 소개가 되었고, 단행본에도 실렸으며 케이블방송이었지만 TV에도 방영이 되었으니 첫 단독주택은 성공적인 데뷔를 한 셈이었다.

 

관해헌을 화두로 잡아 풀어낸 결과는 이 시대의 집에 한옥의 사랑채를 들인 것이었다. 업무상 접대가 빈번해 새벽귀가가 잦았던 건축주가 사랑채가 있는 집에서 손님을 맞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개념으로 거의 서른 채를 작업해서 행복이 가득한 집을 건축주에게 선물처럼 드릴 수 있었다.

 

그로부터 거의 서른 해가 지나 28번째 단독주택 작업을 하면서 나는 무엇으로 화두를 잡고 있을까? 아무리 많은 사람이 들어와도 넘치지 않는다는 유마의 방’, 지금 작업 중인 지산심한知山心閑유마의 집으로 풀고 있다. 이보다 더 큰 집은 필요가 없다며 연면적 100에 손님이 와서 며칠 묵어가도 좋은 무한공간無限空間을 풀어내고 있다.

 

첫 단독주택 작업이었던 해운대 觀海軒, 1994년에 준공되었으니 거의 30년이 된 집이다. 지금은 바뀐 건축주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집이 아니라 부부의 집인 아파트

해운대에 있는 초고층아파트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백 평 아파트는 전용면적이 여든 평 가까이 되겠지만 발코니 확장으로 실제 전용면적은 백 평이 넘을 것이다. 그 넓은 아파트도 평면을 살펴보니 부부 공간은 초호화판이었다.

 

그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자신의 방이 네 평정도로 현관문 앞의 문간방 신세에 불과하다. 아무리 큰 평수의 아파트면 뭐하나 평면 얼개는 부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니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자말자 학교 앞의 원룸을 구해 자신의 공간을 찾아 집을 나오고 만다.

 

아파트는 평수에 상관없이 부부 이외의 식구는 내 방의 여건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우리집이 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에게는 우리집이 아닌 엄마아빠의 집에 얹혀 살고 있으니 내 공간을 마련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왜 아파트에 부부만 살 수밖에 없는지 여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할아버지할머니와 손주까지 삼대는커녕 부부와 아이들인 이대二代도 만족스런 삶이 보장되지 않는 집이 아파트이다. 게다가 아파트는 손님이 와서 하룻밤을 묵어가기도 어렵다보니 사위와 며느리도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아파트는 비어있는 집인 공가空家라고 한다면 과언過言일까?

 

안방을 버리고 찾아야 하는 부부의 방

부부가 남에게 배우자를 소개하면서 쓰는 표현이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사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부부가 언제까지 한 이불을 함께 덮고 살 수 있을까? 아니 방을 같이 쓰며 사는 부부의 나이는 언제까지 일지 생각해 본다.

 

한 방에서 지내지 않고 각방을 쓰는 부부가 의외로 많고 그 시기도 빨라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에서 은퇴한 이후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개인 생활의 편의 때문에 방을 따로 쓰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근래에는 50대부터 각방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부부가 꼭 한방에서 지내야 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안채는 아내의 영역이었고 사랑채는 손님을 맞이하면서 남편이 거주하였고 잠도 따로 잤다. 남편이 아내와 잠을 자기 위해서는 허락을 구하였다고 한다.

 

아파트 뿐 아니라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면서도 안방에 비해 소외된 다른 방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부부가 각방을 쓰게 될 경우뿐만 아니라 다른 방을 쓰게 될 식구들도 배려해야 우리집이라는 의미가 살아나게 되지 않겠는가? 안방이라는 용어에서 벗어나 식구들이 쓰는 모든 방을 동등한 위상에 놓아야 하리라.

 

2019년 준공된 양산 心閑齋, 왼쪽은 사랑채개념의 거실동과 오른쪽 안채로 침실동이다. 침실동의 일층에 욕실을 가운데 두고 침실과 구들 들인 한실을 넣었다. 침실은 아내의 방으로, 한실은 남편의 방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우리집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방은 몇 개?

손주까지 삼대三代우리집이라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방은 몇 개가 있어야 할까? 아파트에는 보통 방이 세 개가 있다. 드레스룸과 욕실이 부설되어 있는 안방과 현관 입구에 있는 방이 두 개인데 최근에는 알파룸이라는 방이 추가되는 추세이다.

 

방이 세 개인 아파트에서 아이들이 독립해 나가고 나면 부부가 각각 방을 쓰고 남은 방 하나는 수납공간이 되고 만다. 그러고 나면 결혼한 자식이 부모를 찾아와도 하룻밤 묵어갈 방이 없으니 그냥 보내고 만다. 잠을 자고가야 조손간祖孫間에 정이 들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 삼대가 한 가족이라는 우리집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다.

 

단독주택을 짓기 위해 집의 얼개를 짤 때 누구의 방이 필요한지 꼭 따져 봐야 할 것이다. 부부의 집이 아니라 삼대三代가 어우러질 수 있는 우리집이 되려면 방은 네 개가 있어야 한다.

 

일상의 공간으로 부부가 각각 쓸 수 있는 동일한 위상의 방이 두 개, 게스트룸 공간으로 결혼한 자식 부부의 방과 손주들의 방이 그것이다. 부부가 한 방에서 평생을 지낼 수 있어도 서재는 꼭 있어야만 남자가 집에 안착해서 지낼 수 있다. 남자의 공간인 서재는 부부가 각 방을 쓰게 되면 남편이 쓰게 될 것이다. 침실은 꼭 남향을 고집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소외된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3월 착공 예정인 양산 지산리의 지산심한知山心閑, 서른 평의 작은 집이지만 더 크게 지을 필요가 없는 유마維摩의 집으로 작업이 되었다. 집의 왼쪽에 한실은 남편의 방, 끝방은 아내의 방이고 다락공간에 객실을 두 개 넣어서 자식들과 손주가 오면 묵어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실로 꾸며질 남편의 공간, 서재로 쓰다가 부부가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할 경우 남편의 방으로 쓰게 될 것이다.
다락공간에 들인 객실, 손주들이 오면 경사진 아늑한 이 방을 얼마나 좋아할까? 손주가 자고 갈 수 있어야 조손관계가 정이 들게 된다.

아무리 큰 집이라도 식구들이 자신의 방이 편안해야 우리집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부부의 집이 되어있는 아파트는 결국 부부만 남아서 살게 되고 각 방을 쓰게 되면서 안방을 쓰는 사람의 집이 되어버린다. 안방을 쓰는 사람만 좋은 집이 아니라 방이 온전하게 주어질 때 비로소 삼대가 한 식구가 될 수 있는 우리집이 될 것이다.

 

-DAMDI E.MAGAZINE 연재중 (2021,1 )

다음 편은 '오래 입어도 편안한 옷 같은 지산심한의 외관'으로 글을 이어간다.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kahn777@hanmail.net

전화:051-626-6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