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부부, 손주가 ‘우리집’으로 지내는 지산심한의 평면 얼개
앞선 글에서 평면 얼개를 짜기 전에 세 가지의 생각을 화두삼아 생각해 보았다. 손님, 부부 그리고 며느리 사위와 손주였다. 집을 쓰는 사용자가 부부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평면 얼개를 짜기 위해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집을 쓰는 사람을 부부에게만 초점을 맞춘 아파트는 부부 전용 숙소일 뿐일지도 모른다. 집 값이 올라간다고 아우성치는 아파트 값 광풍을 보고 있노라면 건축사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다. 아파트는 부동산이라는 재산축적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그 집에서 사는 게 행복할지에 대해선 모두가 무관심이다.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 광고를 보면 입주하면 무조건 행복할 것 같은 광고멘트에는 그 어떤 근거도 없지 않은가? 화분 몇 개를 놓은 발코니도 없이 인테리어만 유행에 맞춰 꾸며놓으면 행복해지는 게 아닐 텐데. 억억대며 재산을 불리기보다 집에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지 생각해 볼 일이다.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집으로의 평면
아내는 단독주택에 살 때에는 손님이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아파트로 옮겨서 살면서도 집에 손님이 오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더니 이제는 우리집에도 손님 발길이 끊기고 말았다. 손님이 오지 않는 생활이 오래되다 보니 가구의 구성도 부부의 일상에 맞춰져 버렸다.
손님이 주로 내 쪽이다 보니 손님에 따라서 아내가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가 마땅찮고, 아내의 손님이라고 해도 내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실은 TV시청에 맞춰 일 방향 대형소파가 차지해 버렸다. 식탁에도 두 사람이 앉아서 밥 먹는 분위기로 제한되어 버리니 손님이 와도 어디에도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다.
지산심한은 공용공간과 사적공간이 현관과 이어지는 계단 홀에서 좌우로 구분되어진다. 공용공간인 거실과 주방 식당은 한옥의 대청마루의 연등천장처럼 경사지붕의 경사면까지 열려진다. 테이블에 앉아서 영축산 능선을 올려다볼 수 있으니 이만한 옵션이 또 있을까?
현관홀에 면해 문이 있는 공용공간은 전통한옥의 사랑채처럼 사적영역과 구분되어 쓰게 되어 있다. 부부의 어떤 쪽으로 손님이 오더라도 불편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거실에서 악기를 연주하더라도 사적 영역에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것이다.
도시와 떨어져 사는 산 속의 집에서 손님이 찾아오는 건 참 반가운 일이 된다. 손님이 우리집을 찾아왔다가 기꺼이 또 다시 찾아올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이가 들어 바깥 활동이 뜸해질수록 손님은 귀한 존재가 될 터이다.
나이든 부부가 사는 집으로서의 평면
지산심한의 사적공간은 현관홀에서 이어지는 복도에서 마당 쪽으로 서재와 침실, 뒷마당 쪽으로 드레스룸과 욕실, 다목적실이 면해 있다. 침실과 서재는 마당 쪽으로 나란히 같은 여건으로 배치한 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부부가 나이가 들어서도 한 방을 써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이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의 반가에서는 부부의 공간이 따로 있었다. 아내는 안채를 쓰고 남편은 사랑채를 쓰면서 남편이 아내를 찾을 때는 미리 통지를 했었다고 한다. 벼슬을 하지 않는 양반들은 집에서 하루 종일 지냈으니 일상에서 부부가 각자의 생활 영역을 존중하며 살았던 것이다.
부부가 다 일에서 은퇴를 하여 바깥 일이 없어지고 나면 서로 존중하는 일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안방이라는 부부공용의 침실이 아닌 부부가 각자의 침실을 가지고 드레스룸과 욕실을 함께 쓰는 Master Zone이 있어야 한다. 나이가 덜 든 부부라면 방 하나는 남편이 서재로 쓰면 좋을 것이다.
부부가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면서 일상을 보낼 수 있어야만 집에서 행복할 수 있다. 은퇴한 사람들은 집이 세상이며 우주가 된다. 오래 된 부부는 일심동체라며 묶어놓은 존재에서 서로의 삶을 서로 존중하는 일심이체一心異體의 사이로 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손주와 조부모의 정이 깊어지는 집의 평면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결혼식장의 풍경이 옛날에는 신부집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지금은 신랑의 부모가 섭섭한 표정을 짓는다. 자식의 집을 방문하려면 아들네는 며느리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딸네는 아무 때나 갈 수 있다는 얘기가 우스갯소리가 아닌 세상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에는 신랑이 처가에 장가를 들었다고 해서 데릴사위로 살았다고 했다. 그 이후에 며느리 시집살이가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담장 넘어 세상을 보지 못해 담장 위로 하늘만 바라보고 살았다고 한다. 시월드라고 하면서 시댁 식구라면 머리를 흔들던 이야기가 지나간 추억이 되고 만 것 같다.
그러던 세월이 이제는 부모와 자식이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시대로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심지어 부부가 ‘시댁, 처가’로 부르는 게 아니라 ‘우리집, 너그집’으로 호칭하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삼대가 ‘대가족’으로 살았던 시절에서 부부와 자식으로 ‘소가족’으로 살더니 이제는 부부만 살게 되는 ‘홑가족’ 시대가 되어버렸다. 백년도 안 된 ‘아파트살이’가 우리네 가족구성을 이렇게 만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노후에 손주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삶만큼 더 큰 복이 또 있을까? 호적에는 손주가 있는데 내 곁에 두지 못하고 살고 있는 건 자식들이 자주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면 며느리와 사위가 어른을 찾아오는 걸 꺼리는 탓도 있고 오더라도 하룻밤 묵어가기가 불편해서 어른들이 어서 가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일층에는 Master Zone, 이층에는 Guest Zone을 두어 며느리와 사위가 제 집처럼 편히 묵어갈 수 있으면 손주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차지가 된다. 공용공간-Public Zone이 개인공간-Private Zone과 구분되어 있으면 자식들이 내 집처럼 편히 며칠이라도 지낼 수 있다. 부모와 자식들이 동선이 겹치지 않고 지낼 수 있으면 삼대가 한 집에서 같이 살아도 될 것이다. 지산심한은 다락공간을 이용해서 며칠 묵어가기에 아주 편한 Guest Zone을 두었다.
‘손님, 부부, 손주와 우리집’이라는 화두를 풀어내 서른 평 공간의 얼개를 펼쳐냈다. ‘유마의 집’이라고 감히 얘기해도 될 이 집은 어떤 일상을 펼쳐도 부족하지 않다며 자부하고 싶다. 부부가 늘 집에서 지내더라도 혼자 있는 것처럼 편하고, 어떤 손님이 와도 서로 불편하지 않으며 며느리와 사위가 기꺼이 찾아오니 손주와 조부모의 정이 깊어지는 지산심한의 얼개가 완성되었다.
무 설 자
-DAMDI E.MAGAZINE 연재중 (2020,11 )
다음 편은 '오래 입어도 편안한 옷 같은 지산심한의 외관'으로 글을 이어간다.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kahn777@hanmail.net
전화: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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