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1904
외로움을 쫓는 묘약, 보이차를 아시나요?
혹시 사는 게 외롭지 않습니까? 요즘은 카톡이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 최신 소통 방법으로 외로움이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SNS 수단으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의미 없는 얘기를 주고받는 건 아마 고립되지 않으려고 그러는가 봅니다.
집에서도 가족들끼리도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대화법을 잊어버렸는지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카페에 앉아 있는 연인과 친구들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톡질에 빠져 있습니다. 말로 주고받는 아날로그 대화는 구시대적인 방식이고 스마트폰에다 손가락으로 소통해야 이 시대의 대화가 이루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나 단톡이라 부르는 끼리끼리 대화방을 수십 개씩 가지고 끊임없는 수다를 이어갑니다. 저도 단톡방이 몇 개 있습니다만 일방적인 자기 얘기만 올리고 상대방의 얘기에는 큰 관심이 없지요. 손가락으로 나누는 신세대 대화방식이 얼마나 마음이 오가는 소통이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다보니 얼굴을 맞대는 아날로그 만남은 희귀한 일이 되었습니다. 톡질을 어지간히만 하면 내가 아는 사람들의 돌아가는 사정은 대충 알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인간관계는 끊기지 않는 걸로 만족하니 정작 오늘 만나고 싶은 딱 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톡친이 수백 명, 페친이 수천 명인데도 막상 안부전화는 일주일에 한통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을 것입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숫자보다 오늘 저녁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더 소중한데 몇이나 될까요?
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소주 한 잔 어때?”, “밥 한 그릇 하자”, “차 한 잔 할 수 있을까?”로 만남을 청하지요. 술이 먹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 밥을 먹고 싶어서 그러지도 않습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얘기를 하고 싶어서 핑계로 삼아 불러보지만 자리를 만드는 게 쉽지 않습니다. 술도, 밥도 상대방이 시간을 따로 내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차 한 잔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 사람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대화의 매개체가 됩니다.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으로 받아서 들고 다니며 마시는 커피나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는 음료는 대화를 위한 차 한 잔이 아니지요. 내가 직접 약간의 수고를 더해서 우리는 그 차 한 잔은 사람과 마주 앉게 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정성을 들여 내는 차 한 잔은 그냥 마시는 음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이차는 일상의 대화를 부르는 매개체로서 딱 좋은 수단이 됩니다. 흔히 茶라고 하면 茶道를 떠올립니다. 차를 마신다고 하면 뭔가 고상하고 특별해 보여서 그냥 커피나 마신다고 합니다. 茶飯事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차 마시고 밥 먹는 일상을 의미하지요. 밥 먹듯 차를 마신다면 특별한 일이 될 수가 없습니다.
보이차는 뜨거운 물만 부어서 우려내면 마실 수 있는 차입니다. 보이차는 온도를 맞추고 시간을 조절해서 향미香味를 음미하는 어려운 차가 아닙니다. 봉지를 뜯어 종이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 믹스커피만큼 쉽게 마실 수 있습니다. 차 주전자에 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바로 우려내면 됩니다.
종이컵이나 머그잔으로 마시는 커피는 목을 축여가며 큰소리로 다투는 자리에서도 마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보이차를 우려서 마주 앉은 사람에게 나누면서 큰 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대화를 청하는 표현으로 차 한 잔 하자고 하지만 정말 차를 우려서 대화를 나누면 목소리는 잦아들고 계속 우려낼 수 있는 보이차의 특성상 대화는 지속됩니다.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간단한 다구茶具를 차려서 보이차 한번 우려 보시지요. 아무에게나 차 한 잔 하자며 대화의 자리로 청할 수 있으니 외로움은 저 멀리 도망가 버리지 않을까요? 보이차 중에서 숙차熟茶는 가격도 저렴한데 늦은 밤에 마셔도 카페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자~~이제 사람을 내게로 부르는 주문呪文을 흥얼거려 봅시다.
“차 한 잔 할까요?”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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