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찻자리에 함께 앉기 어려운 사람

무설자 2018. 6. 1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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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0956

찻자리에 함께 앉기 어려운 사람

 


운남에서 온 다우와 처음으로 앉은 자리였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던 날이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늘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문예부 활동을 했었는데 졸업했던 그 해에 후배들의 요청으로 시화 한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시라고 썼었지만 부족한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시인인 선배를 찾아 뵙고 도움말을 듣기로 했습니다

 

그 선배님은 제가 쓴 시를 설핏 훑어보시더니만 이렇게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내가 한 편 써주랴?"

그 얘기를 듣고 표정관리가 안 되어 더 오래 있지 못하고 돌아서서 나왔지요

 

프로 시인의 입장에서 제가 쓴 시는 당연히 어설퍼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그 분이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린 후배를 대할지라도 상대방을 그렇게 대하는 건 덜 익은 사람의 행동이지요?

 

차를 잘 아는 분과 함께 내가 가진 차를 가지고 찻자리를 한다고 가정해봅니다

그런데 만약 그 분이 내거 우려낸 차를 마시고는 위의 선배님처럼 이야기를 한다고 봅시다

"그냥 그 차는 너나 마시고 내 차를 마시지..."

 

누가 차를 준비할지라도 그 분이 아무리 고수라고해도 그 분과 다시 차를 마시고 싶을까요?

자신의 입에 그 차가 좀 부족할지라도 차를 준비한 사람을 배려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차는 너나 마셔라'라는 정서를 가진 분이라면 그 분이 누구라 할지라도 바람직한 찻자리가 될 수 없겠지요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눈높이가 필요합니다

차 마시는 자리에서도 물이 아래로 흐르는 듯한 배려의 정서에서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좋은 자리에서 마시는 차는 늘 향기롭습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