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0956
찻자리에 함께 앉기 어려운 사람
운남에서 온 다우와 처음으로 앉은 자리였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던 날이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늘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문예부 활동을 했었는데 졸업했던 그 해에 후배들의 요청으로 시화 한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시라고 썼었지만 부족한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시인인 선배를 찾아 뵙고 도움말을 듣기로 했습니다
그 선배님은 제가 쓴 시를 설핏 훑어보시더니만 이렇게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내가 한 편 써주랴?"
그 얘기를 듣고 표정관리가 안 되어 더 오래 있지 못하고 돌아서서 나왔지요
프로 시인의 입장에서 제가 쓴 시는 당연히 어설퍼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 그 분이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린 후배를 대할지라도 상대방을 그렇게 대하는 건 덜 익은 사람의 행동이지요?
차를 잘 아는 분과 함께 내가 가진 차를 가지고 찻자리를 한다고 가정해봅니다
그런데 만약 그 분이 내거 우려낸 차를 마시고는 위의 선배님처럼 이야기를 한다고 봅시다
"그냥 그 차는 너나 마시고 내 차를 마시지..."
누가 차를 준비할지라도 그 분이 아무리 고수라고해도 그 분과 다시 차를 마시고 싶을까요?
자신의 입에 그 차가 좀 부족할지라도 차를 준비한 사람을 배려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차는 너나 마셔라'라는 정서를 가진 분이라면 그 분이 누구라 할지라도 바람직한 찻자리가 될 수 없겠지요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눈높이가 필요합니다
차 마시는 자리에서도 물이 아래로 흐르는 듯한 배려의 정서에서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좋은 자리에서 마시는 차는 늘 향기롭습니다
무 설 자
'茶 이야기 > 에세이 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 마시기 전에 (0) | 2018.06.25 |
---|---|
보이차에서 '내차'와 '우리차' (0) | 2018.06.19 |
부처님오신날 대중차공양을 올리고 (0) | 2018.05.25 |
보이차는 무상의 의미를 담아 소장하며 무아의 맛을 즐기는 차 (0) | 2018.05.09 |
보이차를 마시며 짓는 죄 (0) | 2018.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