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1805
부처님오신날 대중차공양을 올리고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제가 다니는 절에서 대중 차공양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 절도 그렇지만 불자들이 차 한 잔 할 공간이 없으니 부처님오신날은 장터나 다름없습니다.
일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이라고 절에 오는 남자들은 우왕좌왕 어디에 있어야 할지 헤맵니다.
남자신도 모임에서 절 한쪽에 자리를 마련하여 오랜만에 절에 온 분들에게 차공양을 합니다.
작년에도 여기서 차 한 잔 했었다며 찾아주는 단골(?)도 있습니다. ㅎㅎㅎ
올해는 쾌청한 날씨에 바람도 많이 불지 않아서 야단법석野壇法席인 부처님오신날을 지내기가 참 좋습니다.
차공양에 쓰는 차는 보이숙차입니다.
올 차공양에 쓰는 숙차는 고수차로 만든 최고급 차라서 그런지 반응이 참 좋습니다.
작년 9월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병원신세를 질 때 대평님이 위문품으로 보내주신 차입니다.
봉지커피도 스무개를 준비했다가 부족할 듯하여 100개를 더 샀는데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보이차라며 차를 건네니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 세 잔씩 마시고 가는 분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믹스커피보다 더 인기있는 숙차라니 차생활의 미래가 보입니다.
찻잎을 주전자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우려 마시면 되는데 차생활을 너무 어렵게 여기는 우리의 실정이 참 안타깝습니다.
다례에 준하는 분위기로 부처님 전에 헌다례를 시연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다례의 형식에 눌려서 차를 너무 어려워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차 분위기입니다.
오전 여덟시에 시작한 대중차공양은 오후 두시에 마무리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이 잔치 분위기로 보이는데 난전을 펴서 하루등을 팔고 기금을 만든다며 음료를 팔고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계기로 포교의 의지가 보여야 하는데 시주를 받는 기회로 삼는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100명도 앉지 못하는 규모의 전각은 옻칠에 금칠로 화려하기 그지 없고 백옥 관세음보살상을 새로 조성했습니다.
사하구를 대표하는 절이라고 하는데 불자들이 차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으니 여기는 누구를 위한 공간일까요?
불교는 과거를 우려 먹으며 버텨내고 있으나 종교간의 경쟁력에서 밝은 미래는 어느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는 생각은 나만의 기우일까?
난전에 찻자리를 펼치고 대중 차공양을 올리고난 기분이 편치 않으니 이를 어쩔까나.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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