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단독주택 제주 다섯채 마을

아파트는 유목민의 집. 단독주택은 정착민의 집?

무설자 2017. 5. 2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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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를 짓는 이야기 3

아파트는 유목민의 집, 단독주택은 정착민의 집?


경주 양동마을 관가정

 

누구나 삶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얘기한다. 그 행복과 집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개인의 행복은 가족과 무관하지 않고, 가족의 행복은 사회의 안녕과 큰 상관관계를 가지게 되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가족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 집이므로 집은 분명 개인의 행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 시대의 삶에서 집은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낭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을 일러 현대판 유목민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어느 한 동네에 눌러 살지 않고 떠돌며 사는 것을 일컬어 그렇게 부르는 것이리라.

 

맹모삼천지교의 배움에 따르는 것은 분명 아닐 테니 아이들이 더 나은 학군에서 공부하기 위함일 뿐이다.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시세차익을 노려 새 아파트를 분양 받아 주기적으로 옮겨 살기도 한다. 직장을 옮기게 되면 출퇴근의 편의를 위해 이사를 하고, 전셋집이라 계약기간이 지나면 옮겨 살 수밖에 없으니 제 집을 가질 때면 이미 이사에 이골이 나있는 게 현대판 유목민의 모습이다.

 

한 집에서 대를 이어 살던 우리네 뿌리 깊은 삶이 부평초처럼 떠돌며 살다보니 고향이라는 터의식을 잃고 말았다. 형제 같은 지낼 수 있는 친구를 사귀기 어렵고 우리 동네의 기억을 지니지 못하니 성장한 후에 찾아갈 고향이 없다. 성장기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삶의 뿌리를 내리는 깊이가 달라질 텐데 아파트 주거가 보편화되면서 화분에 담긴 나무 같은 삶이 되고 말았다.

 

최근에 일고 있는 단독주택 붐은 분명히 집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아는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을 것이다. 아파트 생활은 우리가 바라는 어떤 행복도 얻어지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중에 떠 있는 집, 우리 집이라는 정체성을 상실한 집, 가족구성원 모두가 다 만족할 수 없는 집이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마당이 주는 정서와 우리 집이라는 터의식, 가족 모두가 우리집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집 중심의 생활의식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다.

 

단독주택을 짓게 되는 건축주의 연령대는 보통 50대가 넘어 은퇴시기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가 50대 이후라면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거나 출가한 이후가 된다. 단독주택의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부부가 살 수 있는 규모로 설정하게 되면 집이 주는 행복의 가능성도 반쪽짜리가 되고 만다.

 

아파트가 부부 위주의 집이었는데 단독주택마저도 그렇게 짓는다면 행복을 담는 집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비록 자식들이 대학생이 되었다거나 출가를 해서 독립을 하였다고 해도 부모가 사는 집은 영원한 우리 집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와 편히 지낼 수 있는 우리 집이 있다면 부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자식들이 출가한 이후에는 손자들이 찾아와 우리 집의 구성원이 대를 잇게 된다. 조손관계祖孫關係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노후생활은 가장 큰 행복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일이인 구성원 가구가 사는 원룸, 투룸이라 부르는 소형주거에서는 집이 주는 행복한 삶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 조부모와 손자들이 어우러져 지낼 수 있는 집이라야 행복의 원천이 되지 않겠는가? 집의 규모가 크고 작은 것을 따지기보다 어떤 삶을 담는 집이냐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육지에서 떠나와 제주도에 정착해서 살면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외로움이지 않을까 싶다. 둘이 사는 집이지만 늘 누군가 기다리는 집이기도 하다. 누구든지 찾아오면 편히 묵고 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야 그 깃에 사람이 들게 된다. 찾아올 사람을 배려한 집, 그 손님의 엄지척은 자식보다 손주가 아닐까 한다. 손주가 즐겁게 머물다 갈 공간이 있어 자주 자식들이 찾아주는 집이야말로 집이 주는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후반기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한다는 목표로 프로그램이 정해졌다. 내가 설정한 이 프로그램을 그도 동의해 줄 것인가? 하긴 그도 이런 생각으로 저지른(?) 프로젝트이니 분명 오케이 사인을 보내줄 것이다. (계속)

 

[도서출판 담디 E.MAGAZINE-28] 게재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크고작은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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