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를 짓는 이야기 5
이 시대의 한옥,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야 할 단독주택
제주에서 아내와 함께 조용히 살고 싶어 둘만을 위한 작은 집을 짓고 싶어 했던 사람, 그가 스스로 다섯 채의 집으로 마을을 만드는 큰일을 벌였다. 그렇다 해도 결국 그가 필요했던 것은 아내와 살 집 한 채가 아니었던가? 이만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집에 대한 얼개를 설계자와 무수한 수정을 거듭하며 결정했다.
건축주가 스스로 촌장이라고 자처하며 이 마을에 살아서 행복할 수 있는 기본 전제는 평등이었다. 다섯 채의 집은 그 규모에서나 내외장 재료에서 차이를 두지 않으며 그 집의 얼개도 비슷하게 한다는 것이다. 설계자인 나의 주장인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그 집이 사람의 삶을 좌우하게 된다’는 처칠의 말씀을 담아 ‘여생을 행복하게 살기’라는 집짓기의 목표로 풀어냈다.
평생을 살아온 부부가 남은 인생을 둘만 오순도순 산다고 해서 노후의 삶이 행복하게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대부분인 노년의 지루한 일상은 손님이 찾아오는 사람에 의해 리듬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가장 반가운 손님은 자식이겠지만 속내로 보면 손주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손주는 찾아오면 반갑고 제 집으로 돌아가면 더 반갑다고 한 어떤 광고의 카피를 보았다. 손주들과 함께 있는 집이 아파트라는 전제에서는 그만큼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손주도 그렇지만 사위와 며느리가 부모님과 하루를 묵어가는데도 서로 편할 수 없는 것이 아파트 평면이다.
사위와 며느리가 편히 묵고 갈 수 있는 집이라야 자주 오게 되고 묵어가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할아버지할머니는 손주를 품을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조손관계祖孫關係가 얼마나 깊어질지는 집의 얼개가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식들이나 벗이 찾아와 편히 머무를 수 있을 게스트존의 유무는 노후의 행복한 일상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단독주택의 적정규모를 결정하는데 빠져서는 안 되는 스페이스 프로그램의 중요한 사항이 된다. 건축주가 서른 평 규모의 작은 집으로 구상하다가 마을을 만들기로 한 결심의 전환점이 된 설계자의 제안사항이 바로 내 손주를 자주 가까이 둘 수 있는 이 비방이었다.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집의 규모를 결정할 스페이스 프로그램의 또 하나의 항목은 한실로 제안했다. 입식 생활로 변환되어 버린 아파트라는 주거문화는 한국인의 몸반응을 무시하게 되어 버렸다. 앉고 일어서기 힘든 노인의 몸상태로 보면 의자와 침대가 편할지도 모르겠하지만 온돌문화가 주는 생활의 즐거움은 엉덩이와 등을 따끈한 방바닥에 밀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사람들의 주택에는 거의 다다미방인 화실和室이 있다. 하지만 아파트에 사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실韓室을 꼭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집집마다 방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온수온돌로 난방수단을 삼고 있다.
겨울이면 소파에 앉지 않고 거실에 전기장판을 놓고 앉거나 누워서 담요를 덮고 지내는 집도 많다. 전원에 짓는 단독주택이라면 장작불을 때는 구들을 놓은 한실을 두면 어떨까? 나는 전원에 단독주택 설계를 의뢰 받으면 구들을 들인 한실을 건축주에게 제안해서 꼭 넣으려고 애를 쓴다. 구들을 들인 한실을 가지게 된 건축주들은 그 방을 얼마나 즐겨 쓰는지 모른다.
세쌍둥이가 포함된 다섯 채의 형제 같은 집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이층의 게스트존guest zone과 일층에 한실韓室을 두는 것이 되었다. 게스트존(guest zone)은 조손관계祖孫關係와 관련되고 한실(韓室)은 한국인에게만 있는 독특한 정서를 담은 집을 만드는 요소로 '이 시대의 한옥'이라는 '우리집의 정체성'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글은 집의 두 키워드를 담은 큰 얼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다. 아파트를 닮은 집이라거나 형태만 중시한 집이 아닌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집의 얼개는 어떠해야할지를 살펴보게 된다. (계속)
[도서출판 담디 E.MAGAZINE-30] 게재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kahn777@hanmail.net
전화: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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