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상 이야기

일박이일 남해에서

무설자 2017. 5. 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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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박이일 남해에서


2017년 5월은 징검다리 황금연휴로 년차휴가를 잘 쓰면 최장 10일까지 쉴 수 있는 노는 달이다.

언제부터인지 매주 연휴로 쉬게 되었고 주 5일 근무마저도 일하는 시간이 많다며 금요일 오전 근무를 대선공약으로 제안하기도 한다.

일의 신성함이 근무시간을 줄여 잘 노는데 관심을 두는 건 아닐진데 대부분 더 많이 쉬게 하는데에 노동의 가치를 부여하는 분위기이다.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시절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세대인지라 주 5일 근무 자체가 왠지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건축설계라는 창작하는 일을 하다보니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늘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건축설계의 결과는 아무리 수천만원에서 수억 수십억의 공사비가 들어가는 집을 짓게 되는 일인데 그 근거를 만드는 과정이 주5일 근무에 걸려 흔들리고 있다.


쉬는 날에 김빠지는 이야기는 각설하고, 황금연휴의 절정이라고 할 5월 5일에서 6일까지 일박이일로 남해 여행을 떠났다.

처가 형제들과 어버이날을 맞아 장모님을 모시고 가진 여행이라 가족애를 다지는 귀한 시간을 마련한 셈이다.

일박 여행은 누구와 떠나도 서로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되기에 형제지간이라도 가끔 일박 이상의 일정으로 함께 떠나야 정도 깊어진다.


여행 코스와 일정은 막내 동서가 잡았는데 보물섬이라고 부르는 남해로 떠나게 되었다.

오전 8시에 부산에서 출발하여 11시 경에 삼천포를 경유해서 창선대교를 지나 식당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은 후에 금산 보리암에 다녀오는 것이 첫날의 일정이었다.

평상시라면 충분하게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황금연휴라는 것을 감안하지 못한 터무니없는 일정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남해가 제법 큰섬이지만 연휴동안 밀려드는 차량을 소화하기에는 도로 사정과 주차장이 턱없이 부족했다.

삼천포에서 창선도를 지나 지족까지 이르는 다리와 길이 걷는 속도로 차량이 움직여서 6시간반이 걸려 일차 목적지인 식당에 도착했다.

맛있는 점심을 먹으려고 아침을 거르다시피 했으니 오후 2시반에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었을까?


바다장어구이로 고픈 배를 채우고 나니 남해가 섬이라 바다가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나서 의논을 한 결과는 길을 꽉채운 차량이 섬 전체의 상황이라는데 모두 동의를 하였다.

세시 이후의 모든 일정을 취소를 하고 일단 예약을 해 둔 펜션으로 가서 짐부터 풀기로 했다. 


 






숙소로 예약한 펜션은 지은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기능적인 수명을 이미 다한 것으로 보였다.

펜션이라고 하기보다 작은 호텔에 가까운 규모인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외부 주차장 포장이 되어있지 않고 흙바닥 그대로여서 빗물이 고여 있었다


지은지 십년이 되었을까? 이십년은 안 되어 보이는데 시설 경쟁력은 거의 상실되어 보였다.

아마도 가까이에 경쟁 숙박시설이 더 들어서면 유지를 해나갈 수가 있을지 의문이다.

건축물은 백년지대계는 몰라도 오십년은 쓴다고 보고 지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기능적 수명이 이십년도 안 될 것이다.


구조적 수명이 다했더라도 보강해서 쓸 수 있을지 검토할 수 있도록 집을 지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건축물은 비단 이 펜션 뿐 아니라 대부분이 30년을 버티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래된 건축물이 세월의 흔적을 담고 역사를 드러내며 당당하게 제 역할을 해내는 유럽이나 일본의 건축물이 부럽기 그지없다. 



전날의 남은 일정에 들어있던 금산 보리암을 찾았다.

새벽 5시에 기상을 해서 6시에 펜션을 출발 7시가 못되어 보리암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관광객과 기도객들이 절을 찾아 부산하게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절의 입구에 기념품과 기도용품을 파는 상점이 있는 걸 보면서 소문난 기도처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4대 관음성지로 여수 금오산 향일암, 강화도 낙가산 보문사, 양양 낙산사 홍련암과 남해 금산 보리암을 꼽는다 하니 얼마나 많은 기도객이 모이겠는가?

이 뿐 아니라 관광사찰로서 남해를 찾는 일반 관광객도 밀려 드니 조용한 날이 드물 것인데 기도를 하는 분들이 집중이 될런지 모를 일이다.


우리 일행도 영험이 있다는 보리암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드릴 것이 많아서 백일기도를 부쳤다.

나도 내 허물을 탓하는 108배를 드리고 마음 한구석에 담겨있는 바람을 관세음보살님께 보여 드렸다.

기도는 뇌물처럼 볼전을 내고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의 바람을 드리고 스스로 큰 마음을 다지는 의식이어야 할 것이다.


오전 8시 경에 보리암을 내려오는 길, 올라오는 차량행렬이 벌써 전쟁이 시작되는 상황처럼 보였다.

보리암의 주차장이 적은 규모는 아닌데 벌써 가득 찼는데 큰 길까지 차량이 줄지어 꼼짝 못하고 있었다.

아랫쪽에 있는 차는 주차장에 언제쯤 들어갈 수 있을까?


다시 펜션으로 돌아와서 아침을 지어 먹었다.

오뚜기 부대찌게 라면에 소시지와 김치를 넣어서 내가 조리를 했는데 어제 저녁에 먹은 돌게장 정식보다 더 맛있단다.

국물까지 남기지 않고 싹 비워주니 얼마나 뿌듯한지 이 맛에 요리를 자꾸 하게 된다.


오전 일정을 독일마을을 지나 해오름예술촌 등을 가기로 되어 있어서 일단 독일마을로 길을 잡았다.

어이쿠...독일마을도 이미 차량이 길을 덮고 있어서 바로 길을 돌려 해오름예술촌을 찾았다.

이제는 섬에 더 머물렀다가는 부산으로 빠져나가는 길마저 막힐 것 같아서 삼천포로 길을 돌렸다.


참,

독일마을은 오래전부터 얘기를 많이 들어서 평상시에 기대를 많이 하던 곳이었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하동 청학동 도인촌이 사실상 상가와 숙박시설인 것처럼 독일마을도 상가와 펜션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번잡스런 관광지가 아닌 주민들이 생활하는 삶에 조심스럽게 기웃거릴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일반 승용차나 관광버스는 마을의 저만치에서 주차를 하고 방문객들은 걸어 들어오게 하면 좋겠다.

방문객들은 주민들의 삶에 피해를 주지 않는 예의를 갖출 수 있어야 할텐데 우리나라의 어디든 관광지로 개발이 되면서 주민들이 밀려나고 있다.

관광상품을 찾아가는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로서 찾아들 수 있는 마을을 찾아나서야겠다.


우리나라 어디든 경관이 좋은 곳이거나 관광지로 개발이 된 곳은 펜션촌이 들어서서 주민들의 일상이 다 무너지고 있다.

이번 여행도 길을 나섰다가 잠만 자고 밥만 벗고 도망나오듯이 섬을 빠져 나왔는데 우리가 아닌 다른 분들은 원하는 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

다행히 맛있는 밥은 먹을 수 있었고 형제들과 묵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내 어머니의 고향인 남해를 찾아갔었는데 바닷가에 있는 비슷한 여느 관광지의 기억만 남아 있다.

남해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바다장어구이

돌게장 정식과 멸치회무침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