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상 이야기

2017, 한가위 황금연휴를 병실에서 보내다-존재의 의미와 전화 한 통화

무설자 2017. 10. 4. 22:41
728x90


존재의 의미와 전화 한 통화


 나를 묶어 놓은 침대, 그렇다고 정말로 침대에 묶여 있는 건 아니다


 부산 하단 본병원의 식사는 정말 맛있다. 환자를 위한 마음씀이 느껴진다


 병원에서도 차는 마셔야 한다. 위문품으로 들어온 용정차, 무이암차, 보이차 등으로 하루에 두 세차례 차를 마신다




지지난 금요일 밤, 한순간의 사고가 다시없을 열흘간의 한가위 황금연휴를 반납하게 했다.

그날 식구들과 샤브샤브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샐러드바에 마지막 디저트를 가지러가기 위해 일어났다가 사고를 당했다.

우리가 앉았던 자리는 의자가 고정되어 있어서 앉기가 상당히 불편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고정된 의자와 테이블이 너무 붙어 있어서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엉덩이를 비비적거려서 옆으로 나와야 했다.

안에 앉았던 내가 나가려고 하면 갓자리에 앉은 아내가 돌아앉아서 일어서야 했다.

그런데 그 잠깐을 기다리지 않고 일어나 좁은 틈을 비집고 나가려다가 탁자다리에 발이 걸려서 옆으로 넘어져 버린 것이다.

 

가까운 외과전문병원에 가서 X-ray를 찍어보니 고관절 골절이었다.

고관절은 하체의 척추라고 할 중요한 부위인데...

진단 받은 그 시간부터 내 의지나 사정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사고를 당한 금요일밤부터 수술을 한 월요일 오후까지 나흘동안 고관절이 골절된 상태로 누워 있어야 했다.

조금만 뒤척여도 오른쪽 다리에 통증이 오니 잠을 잘 수도 없고 꼼짝할 수도 없다,

한 시간 정도 걸렸던 수술은 의외로 간단했지만 이후의 관리는 노후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매년 공약만 남발하던 금연, 하체가 부실하면 안 된다며 마음만 먹던 운동을 이젠 틀림없이 실천하게 될 것 같다.

금연만 할 수 있다면 이 시고의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겠지만 대가치고 너무 크지 않는지.

글쓰는 지금이 입원 열흘째인데 담배생각은 별로 나지 않으니 금연은 가능할 것 같은데 쇼크가 아직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인들이 병문안을 다녀가기도 하고 전화로 위로를 해주기도 한다.

입원 사실을 공지할 일은 아니지만 공식, 비공식 일정 때문에 사정을 전해야 해서 사고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백여명에 이르는 페친들이 댓글로 위로의 마음을 담아서 쾌차하라는 응원과 격려의 전해 주었다.

 

병문안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첫번째는 병실로 직접 찾아가는 병문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니 환자와의 관계나 유대의 일차영역권 소통이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전화 위문인데 찾아가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경우나 안부 정도는 직접 물어야 할 유대의 이차영역권 소통이 될 것이다.

세번째의 위문 방법은 이 시대의 일반적인 소통법이라고 할 수 있는 SNS를 통하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SNS 소통 수단인 카톡은 메시지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쌍방 대화 기능인 일대일 소통 방법이다.

카톡보다 훨씬 확산 범위가 넓은 소통 수단은 페이스북이라 할 것이다.

사고 내용과 현재의 상황을 페이스북에 올리자마자 소위 페친들의 위로와 격려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페친 중에는 순수한 페이스북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댓글로 안부를 물어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

그런데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댓글을 단 사람들 중에는 지인들이 거의 반 이상이다.

그 지인들 중에는 초등학교 동기도 있고, 옛 직장 동료들도 있으며, 같은 직업인 건축사도 있는데 전화는 딱 한 분, 다연회 다우만이 안부를 물어오고 병문안을 다녀갔다.



연말이 되면 새해를 위한 덕담을 담은 연하장을 받게 되는데 손편지 연하장은 이제 박물관에 박제될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일대일 관계로 서로를 위하는 덕담이 담긴 연하인사가 아니라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 단체글이 카톡으로 오간다.

단체톡으로 들어오는 연하인사를 반가워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인데도 허탈하지만 상투적나마 주고받으며 새해를 맞이한다. 


작은 부주의로 넘어지면서 얻게된 고관절골절이라는 결과는 그 시간부터 침대에 나를 묶어 놓아 버렸다.

내가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갇혀 있는데도 세상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니 이 얼마나 서운하고 두려운 일인가?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음을, 누군가의 걱정어린 안부 전화로 내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듯이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2017,10,4)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