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세상이야기 1810
가을볕이 좋은 날 승학산에서
염천에 시달려 지난至難했던 여름이 언제였던가 싶게 가을볕을 반가이 즐기고 있다.
같은 하늘 아래 내려 쬐는 햇살인데 어느 때는 원망하고 지금은 반갑기 그지 없다.
계절은 그렇게 같은 햇살마저 달리 만들어 버리나 보다.
시월은 휴일마다 행사가 잡혀 있어 부르는대로 가다가는 내 시간을 누릴 수 없을 지경이다.
오늘도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대회가 있지만 무시하고 아내와 집 뒷산을 올랐다.
승학산은 가을이 되면 부산에서는 몇 안 되는 억새밭 명소로 이름을 낸다.
아내와 함께 자주 올랐던 승학산을 얼마만에 찾아 드는지 모르겠다.
승학산 산자락에 집이 있어 등산화만 신으면 되는데 아내의 발목 부상 이후에는 잊다시피 지내고 말았다.
오늘은 가을볕이 너무 좋아 아내를 곁눈질로 살피면서 산행을 권했더니 쾌히 따라 나선다.
작년에 나도 고관절 골절로 수술했었던 다리 사정이라 승학산 둘레길 제 2구간만 가볍게 걷기로 했다.
승학산 둘레길은 괴정에서 당리, 하단, 괴정을 잇는 각 3km씩 4구간으로 총 연장 12km로 올해 단장을 마쳤다.
제 2구간은 우리집에서 출발해서 소나무 숲길로 동아대학교 뒷산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평지에 가까운 가벼운 경사길이 이어지는데 경사가 급해지는 곳에는 군데 군데 쉼터를 마련되어 있다.
쉼터에는 벤치도 있지만 평상을 많이 만들어 두어서 그늘이 좋아 한숨 낮잠을 즐겨도 좋을 듯 했다.
길을 걷는 내내 나무 그늘이 좋아서 한 여름에 걸어도 괜찮을 것 같다.
천천히 걸었는데 한 시간 정도만에 목적지인 동아대 뒷편에 도착했다.
잠깐 쉬었다가 되돌아갈 길을 아내와 의논했는데 다시 되돌아가기 보다 승학산 정상으로 오르다가 빠지기로 했다.
길을 모르니 아내에게는 부치는 힘든 코스를 잡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승학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군데 인데 우리가 선택한 이 코스가 가장 경사가 급한 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숨을 고르고 다리를 쉬어가며 정상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가며 올라야 했다.
승학산까지는 가을색이 물들지 않아서 낙동강과 다대포, 몰운대 앞바다를 바라보며 힘든 몸을 달래야 했다.
드디어 정상이 보이는 아래에 우리가 목표로 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이름모를 산 나무 열매가 빨간색으로 곱게 물들어 있고 억새가 하늘하늘 춤추고 있다.
멀리 다대포 앞바다는 은빛 고운 빛깔로 바라보는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승학산 정상 아래 억새 群舞 하늘하늘
아직도 붉어진 건 너 뿐이라 푸념하는
가을볕 애타는 마음 열매 혼자 품는다
준비해 간 배를 깎아 먹으며 힘들게 오른 만족감을 누린다.
이 좋은 가을볕이 집에 있었으면 이런 줄 어찌 알았으랴.
가을보다 좋은 계절이 없다고 얘기하지만 이렇게 좋은 줄 미쳐 몰랐다.
아, 얼마만에 누리는 가을날의 기쁨인가?
가을볕은 바라보며 즐겨야 제맛임을 하늘거리는 억새를 보고 붉게 타듯이 익은 가을열매를 보고 알겠다.
우리집 뒷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을날의 축제를 산을 오르지 않고서야 어찌 알 수 있으랴.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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