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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심에서 바라본 인문학의 열풍

무설자 2015. 12. 1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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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아침향기' 2015.12.14. 게재

원도심에서 바라본 인문학의 열풍

 

                                                                                                                                                             김 정 관

 

요즘 인문학 강좌가 갈수록 인기를 더하고 있다. 대학은 인문학 계열 학과의 통폐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왜 대학 밖에는 인문학 열풍이 몰아치는 것일까? 이런 이율배반적인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물질 위주의 경쟁에 지친 이들이 마음의 의지처로 인문학 강좌를 찾아 나선다고 진단한다. 대학에서 배운 최첨단의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성공으로 가는 길에서는 부닥치는 사람과의 관계가 앞뒤좌우로 다 막혀 있다. 그 불통의 갑갑한 상황이 몇 백 년 묵은 내용으로 배우는 인문학 강좌에서 희한하게 사통팔달로 길이 툭 트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부산에서 성공의 기회를 찾는 사람들, 혹은 이미 성공의 길에 접어든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는 곳은 해운대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 곳에서 높이를 자랑하고 화려함을 맘껏 뽐내고 있는 건 사람들 뿐 아니라 빌딩들을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길도 사통팔달 상하좌우로 쭉쭉 뻗어 있어 부산이라는 도시 밖에 해운대라는 별천지가 따로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해운대를 대표하는 센텀이라는 대명사도 그 범위가 어디까지 인지 알 수 없어 성공의 다른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화려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빌딩 숲에 파묻히고 넓은 강 저 너머에 버려진 아이처럼 외롭고 작아 보인다.

 

부산의 원도심은 어떤가? 부산이라는 지명에 익숙하게 그 연원과 지난 기억들이 골목 구석, 세월을 담은 건물, 산복도로 언저리마다 배어 있다. 시청이 연산동으로 이전한 이후 구도심이라는 버려진듯한 도시 분위기로 꽤 오랜 시간을 흘려보냈지만 언제부터인가 인문학 열풍과 흐름을 같이 하면서 원도심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곳에는 성공에 목을 매는 치열한 경쟁보다 지친 삶을 어루만지며 사람과 부대끼면서 풍겨나는 정이 진하게 다가오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인문학의 도시, 도시의 인문학이라는 말이 바로 원도심의 정체성이며 매력이다. 원도심 자체가 인문학으로 우리를 감싸고 위안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근저는 바로 사람이 걷고 싶은 길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동 책방골목에는 문학의 향기가 넘쳐나고 용두산 공원을 둘러싸고 미로처럼 이어지는 길을 따라 오래된 음식점, 선술집에서 흘러나오는 삶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중앙동 큰 길을 따라 아직도 지키고 있는 빌딩가가 북항 개발에 따른 도심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 원도심은 옛도심이 아니라 부산의 시작과 함께 면면히 같이 해 온 우리 도시의 뿌리이다.

 

인문학이 사람을 위한,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학문이라고 한다. 원도심에서 큰 길이든 골목길이든 길을 걸어보면 차보다는 사람이 길의 주인임을 알게 된다. 큰 길에도 차보다는 인도로 걷는 사람이 더 어울려 보인다. 큰 길의 뒤에는 작은 길과 골목길이 이어지고 그 길만큼 오래된 어수룩한 음식점에서 먹는 질박한 밥 한 그릇에 배만 부른 게 아니라 마음까지 충만해진다. 해가 지면 골목 안 선술집에서 부딪히는 술잔 소리는 웃음 소리보다 더 경쾌하다. 국제시장, 깡통시장 등 재래시장도 지금의 시장으로 제 기능을 충분히 다하고 있다. 이렇듯 원도심에서는 아버지가 살았던 그 모습대로 이어서 살아가는 이대로의 삶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니 이 도시에서 머무는 사람들은 생활 그 자체로 따로 인문학 강좌를 듣지 않아도 오늘 하루가 만족스러워진다.

 

원도심은 행복해질 수 없는 경쟁으로 몰아 부치는 과유불급의 도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만족해서 편안한 삶인 소욕지족의 도시로 지켜졌으면 좋겠다. 오래된 골목길의 정서에 어울리는 지난 시간의 향기가 묻어나는 오래된 건축물이 잘 보전되어 인문학이라는 글과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도시에 살고 싶다.

 

 

부산일보 기사링크 :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51214000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