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상 이야기

度彼岸에서 이 세상으로

무설자 2015. 11. 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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度彼岸에서 이 세상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실이라는 곳에 자리를 틀었습니다. 이 자리는 누구든 준비 없이 들어오게 됩니다. 응급실로 실려 오기 전에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있었는데 교통사고라는 것이 우선순위를 바로 바꾸어 버립니다. 무서운 일이지요. 잘못하면 응급실에서 병실로 가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아주 순식간에 일상의 모든 일을 다 바꿔 버리더군요.


  차가 무릎을 들이받아 무릎 뼈에 금이 갔으니 그 순간부터는 내 의지와 상관없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길로 나서는 그 순간 운전초보자가 그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는 내가 필요한 스케쥴을 다 거둬 가버린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 달 이상 꼼짝없이 묶어놓습니다.


  그리고 이후 스케쥴은 병실입니다. 일주일을 뼈에 금이 간 줄도 모르고 목발을 짚고 강의도 가고 꼭 필요한 모임은 가고 사무실 실장 결혼식에도 갔습니다. 타박상이라는 진단에도 불구하고 통증이 계속되어 MRI라는 정밀 촬영을 해보니 골절이라는 진단이 새로 떨어져 재입원을 한 것이죠. 발을 땅에 딛지 못하게 하니 한 발목은 전체를 깁스를 해서 병실 신세를 져야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요즘 차 마시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 본격진인 인연을 맺은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거의 매일 차에 관한 단상을 짧은 글로 인터넷 카페에 올리고 있어  제 일상이 그쪽으로 먼저 노출이 됩니다. 오프라인이라고 하는 일상은 만남이 없으면 알지 못하는데  매일 인터넷으로 올리는 글이 그 속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먼저 제 소식을 알게 합니다. 넓은 세상에서 제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착각을 하게 하지요.


  다치고 난 뒤 며칠 글이 올리지 않으니 무슨 일이 있냐며 전화연락이 옵니다. 그리고는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대구의 다우는 그날로  바로 내려왔습니다. 병실에서의 만남마저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추월한 것이 되었지요. 사고가 난 지 3주가 되어가지만 제 주변에서는 아직 제가 다친 줄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따로 연락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지요. 그렇지만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그리고 염려하는 글을 댓글로 올리고 쪽지로 보내와 그 정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온라인의 위력을 이렇게 실감합니다. 정식으로 깁스를 하고 입원을 했다는  이 소식 또한 실시간으로 중국의 곤명, 이우, 성도, 북경 등에서부터 우리나라의 전국 각지로 전파됩니다. 그리고 안부를 염려하는 글들이 답지를 합니다. 그리고 또 위문단이 방문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남원과 대구에서 찾아 왔습니다. 여수에서 방문단이 찾아왔습니다. 대명을 쓰니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끼리의 정이 보통이 아닙니다.


  이런 호사를 누려본 분이 얼마나 있을 런지요.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그야말로 주고받는 글로서 정을 확인하는 사이의 사람들에게 느끼는 그 정겨움입니다. 이해관계도 없이, 주니까 받는다는 기약도 없이 그냥 받는다는 것을 느끼는 이 호사는 느껴본 분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일상에서 누구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건 누구나 매일 만들 수 있는 참 소중한 결실입니다. 그 관심이 온라인을 타니 거의 폭발적이며 실시간적입니다.


  한 3주 가까이 입원하는 동안 온라인의 인연은 더 깊어졌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이나 전화로 주고받는 내용은 아주 한정되지만 인터넷은 무한정입니다. 몸은 움직이지 못하니까 마음은 더 멀리, 더 깊숙하게 인터넷의 세계를 누비게 됩니다. 가볍다면 가벼울 수 있는 정이지만 가볍게 등을 툭 쳐주는 그 느낌의 정이 더 다가옵니다. 매일 만나고, 쪽지를 주고받고, 대화창을 열어 늦도록 대화하는 동안 깊어지는 그 정이 보통이 아닙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생활에 빠져듭니다.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세계로 빠져드는 생활방식이 두려워집니다. 그래서 퇴원을 서둘렀습니다. 의외의 세계를 보면서 한없이 빠져드는 저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책임이 없기에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기약을 하지 않아도 되기에 말로 짓는 빚이 너무 늘어납니다. 하나의 행위를 너무 넓은 세상으로 보낼 수 있는 장점이 나를 묶어두는 끈처럼 자꾸만 많은 분들과 인연이 깊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더 있어도 되지만 퇴원을 결심한 이유 중에 빨리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한다는 강박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한 달간의 시간이었지만 제게 생긴 이 작은 일에 온라인에서 만나는 인연들의 관심은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가까이 왔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중중무진의 더 큰 세상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잘 익혀야할 것 입니다.


  이번 교통사고를 통해 실감한 온라인이라는 세상과의 만남이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글을 써서 올리며 느끼는 반응도 실시간이지만 제게 벌어지는 일에 대한 관심도 실시간입니다. 인터넷만 열어서 되는 일은 아니지만 그 속에서 내가 하는 행위가 즉시 결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말로 던지면 말이 오고, 마음은 나누면 그 마음이 정이 섞여서 전해져 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금 세상은 보이는 쪽보다는 보이지 않는 쪽에서 더 많은 것이 주고받아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라인이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세상에서 저의 존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세상과 대비되는 실생활은 또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도 같이 생각해 봅니다.


  글 한줄,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전해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만남의 소중함을 다시 잘 갈무리해가야 하겠습니다.

  새로 만나는 기대보다는 지난 만남을 잘 이어가는 삶의 소중함을 지니겠습니다.

  참 아름다운 세상임을 두루 알게 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2008, 6, 19)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