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茶人 이야기
세석평전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 같았던 그
그날 밤 처음 그의 집에서 차를 마셨다. 세 평도 안 되는 서재에는 거의 역사에 관한 책이었다. 흰 와이셔츠에 짙은 감청색 겉옷을 주로 입고 다니는 그의 분위기 그대로였다. 벽의 두 면은 책이 빼곡하게 꽂힌 서가가 둘러져 있고 문이 달린 벽면에 책상 대신 차도구가 들어 있는 장식장이 놓여 있다.
앉으라는 말도 없이 찻상도 아닌 이인용 다반을 장식장에서 꺼내 찻자리를 폈다. 대나무로 만든 싼 이인용 다반이다. 혼자서 마실 때 쓰는 30cc짜리 자사호와 엄지손톱만한 백자잔이 다반에 놓여 있다. 마치 아이들 소꿉장난할 때 쓰는 그릇같이 앙증맞아 보이는데 귀한 차를 마실 때 쓰는 차호와 잔이다.
지난번 다회에서 처음 그를 만났고 고등학교 선배임을 알게 되었다. 그 때 나는 보이차를 막 알게 된 초보였고 그는 이 분야에서 알려진 고수였다. 그런 그가 차나 한잔 하자는 초대는 나에게 호기심 그 자체였다.
후일 그가 보이차 뿐 아니라 그림, 수석, 난에도 조예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서재에는 변변한 차탁도, 눈에 띄는 차도 없었다. 유리문이 달린 장식장 안에 있는 몇 점의 차호와 잔이 그의 담백한 성품을 알 게 하였다.
오래된 아파트의 거실에는 소파도 없이 장식장에 브라운관 티비가 있고 그처럼 말수가 적은 형수님이 저녁 준비를 하는지 국 끓이는 냄새가 서재로 밀려 들어왔다. 말없이 건네주시는 차를 몇 잔 마셨다.
저녁 먹으라는 형수의 부름으로 거실로 나가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형수님 밥은 없이 둘만의 밥이 차려져 있었다. 해물이 든 된장국, 나물류와 김치, 생선구이만 없었다면 절에서 먹는 저녁이라 할 상차림이었다.
기분 좋은 포만감이 밀려왔다. 식후 차 한 잔이 아니라 두세 시간동안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그만큼이면 딱 좋았다. 밥 먹은 뒤의 디저트로 마시는 차가 아니라 차를 마시기 위해 밥을 먹은 셈이다.
다시 차를 마시기 위해 서재에 앉았다. 그가 포장지를 뜯지 않은 병차(餠茶)를 두 편 꺼내왔다. 삼십년이 넘은 노차(老茶)라고 한다. 그 때는 그 차의 가치를 잘 몰랐었지만 돈이 있어도 구하기가 쉽지 않은 노차였다.
포장지를 보여주며 차를 열었다. 병면을 보여주고는 조심스레 반으로 잘랐다. 병차의 잘려진 면을 보여주면서 겉도 깨끗하지만 속도 백상(白霜)이 들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삼십 년이 넘은 세월동안 잘 보관된 차임을 알 수 있었다. 두 편을 다 그렇게 차의 온전함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차를 우렸다.
오래된 보이차의 맛, 진하지도 다른 잡내도 나지 않은 짙은 금황색이 탕색이라야 제대로 된 노차(老茶)의 속내라고 한다. 몇 잔을 마셨을까? 다른 설명 없이 맛이 어떠냐는 질문 아닌 질문만 연이어 던진다. 뭐라고 답을 했을까? 그때는 제대로 차맛을 알지 못했었기에 아마 고개만 끄덕였을 것이다. 아니면 담백한 맛이라고 했을까? 지금도 보이차의 맛은 필설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차는 아주 귀한 노차였지만 달리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제대로 음미할 줄 모르지만 보이차를 마신 뒤의 특별한 맛, 아니 느낌이라고 해야 할 회운(回韻)이 분명히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탕색이 연한 노랑으로 될 때까지 엄지손톱만한 잔으로 셀 수 없이 마셨다. 탕수가 거듭되면서 색이 변하는 그만큼 맛이 달라지면서 물색이 될 때까지 좋은 맛이 느껴졌다. 지미무미(至味無味)라고 얘기하는 최고의 보이차 맛이 그랬을 것이다.
일어날 시간이 되자 그는 숙제라고 하며 차를 두 편 다 팔분지일 가량 잘라 건넸다. 그 차를 마셔가면서 느껴지는 향미를 얘기해 보자고 했다. 그는 보이차를 알아가는 방법은 좋은 차를 마시는 것이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내가 보이차를 알아가는 수련 생활이 시작되었다. 뒤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보이차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무렵부터 접했기에 부산의 차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망이 있는 분이었다.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담백하게, 솔직하게 그의 별호처럼 세석평전에 홀로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처럼 고고하게 살다가 홀연히 떠나 버렸다. 그는 내게 차를 가르친 적이 없다고 했지만 내가 보이차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오직 그에게 배웠을 것이다. 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바빠서 그랬을까 환갑도 지내지 않은 채 소천해 버리다니.
있는 듯 없는 듯한 보이차의 향미처럼 우리와 함께 있을 때도 드러나지 않았는데 오히려 지금 은근한 회운 같은 그의 향기가 늘 내 곁에 머물러 불현듯 전화기에 손이 가게 한다. 구하기 쉽지 않은 노차, 두등급(頭等級)암차와 목책철관음은 그와 함께 있어야 제 맛을 음미할 수 있었기에 귀한 차를 접할 때 마다 그가 그립다.
이제 그가 내 곁에 없지만 늘 차향 속에 머무르며 묻는다.
“무설자, 차맛이 어떻소?”
(2015,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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