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무설자 2013. 6. 1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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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에는 길이 없는데

 

                                                                                                                                                            김 정 관

 

 

 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하셨던 경봉스님께서 스님을 찾아온 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극락에 이르는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고?”

 그 이는 스님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극락암까지 길이 잘 닦여져 있어 편히 왔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극락과 그 이의 대답 속의 극락암과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길이 없는 극락과 잘 닦여진 길이 있는 극락암, 극락은 길이 없어 가기가 어렵고 극락암은 차로도 올 수 있게 큰 길이 잘 나 있으니 아무라도 올 수 있습니다. 극락암에 계시던 경봉스님을 친견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지만 극락에 이르는 길을 아는 이는 몇이나 있었을까요?

 

 깊은 산 중의 절은 인적이 닿기가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차가 없던 시절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큰 길에서 내려 한나절씩 걸어가는 게 예사였습니다. 작은 산을 넘어 내도 건너고 급한 경사 길을 숨이 턱에 닿으면 쉬어가면서 멀다하여 불평하는 이 없이 그렇게 찾아 갔습니다. 그렇게 먼 길을 수행삼아 걸어서 닿은 그곳이 바로 극락이었습니다. 찾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 극락이니 극락암이라 이름을 붙은 곳에 닿았다고 해서 극락일 수 없지요. 그러니 어쩌면 옛날에는 찾아가는 절마다 극락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흔했던 극락이 차가 올 수 있도록 편한 길을 내면서 극락이 아닌 곳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간절히 찾는 마음도 없이 차가 데려다 주는 그곳은 이름은 극락일지 몰라도 극락일 수 없으니 극락 같은 극락암도 이제는 이름만 극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극락처럼 꾸며놓은 절이 많지만 하루 길에 열 곳도 갈 수 있는 그런 극락은 없으니...

 

 깎아지른 벼랑에 붙어있듯이 세워진 절이 있습니다. 그 절에 닿기 위해서는 몇 백이나 되는 계단을 밟고 또 밟아서 올라야 합니다. 그 계단은 반듯하게 만들어져 있지도 않습니다. 주변에 있는 돌을 생긴대로 갖다 놓았기에 한 단 한 단 잘 밟지 않으면 딛고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한 발자국 발을 내려놓을 때 마다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마음을 딴 데 두고 잘못 디뎠다가는 큰 일이 납니다. 한 단 딛고 나무아미타불, 또 한 단 딛고 나무관세음보살, 또 한 단 딛고 나무석가모니불, 다음 단을 딛고는 나무지장보살입니다. 이렇게 몇 백 계단을 딛고 절에 이르면 이미 그 마음은 극락에 있는 듯 편안해져 있습니다.

 그렇게 계단으로 만들어진 험한 길은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오르는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한걸음 길 만들고 나무관세음보살, 또 한걸음 길 만들고 나무아미타불이니 걸음마다 부처님을 만나고 보살을 만나면서 오르는 셈입니다. 극락에 길이 없으니 만들어 가면서 올 수 밖에 없었던 셈입니다.

 내려가는 길에는 걸음마다 부처님도 내려놓고 보살님도 내려놓습니다. 오를 때는 길을 몰라 찾았던 부처님 보살님 이었지만 이제는 아는 길을 내려가니 부처님도 보살님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길을 알면 길잡이는 소용이 없으니까요. 올 때 찾았던 것은 부처님도 아니요 보살님도 아닌 극락이었습니다. 극락에 닿았으니 지난 것은 다 버려야지요.

 

 인생도 알고 보면 그렇게 험한 계단을 오르는 것 같습니다. 행복이라고도 부르고, 열반이라고도 말하며 깨달음이라고 일컫는 저마다의 목표를 향해 삶의 여정이라는 계단을 올라갑니다. 그 곳으로 가는 길은 결코 편한 길일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하게 만들어진 계단을 찾습니다. 어쩌면 계단이 없는 평지의 길을 찾아가려고 애를 쓰지요.

 하지만 가야하는 길이 향하는 곳이 벼랑 위에 있는 작은 절 같아서 그 곳으로 나있는 돌계단을 한발 한발 마음을 모아야만 닿을 수 있습니다. 목표를 향한 길을 외면하고 편한 길을 찾다보면 그 길은 내가 택한 길일 뿐 목표로 향한 길은 아니기 십상입니다.

 관광버스가 대웅전 앞까지 닿게 만들어 놓은 넓디넓은 주차장을 가진 절을 하루에 몇 곳을 돌아보는 것은 관광길일 것이고 한 절이라도 험한 돌계단을 마음을 가다듬어 올라 삼배를 올릴 때 비로소 부처님의 미소를 만나는 올바른 참배길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편하게 살 수 있는 왕궁을 버리고 비바람도 가릴 수 없는 거칠고 험한 출가사문의 길을 택하신 것은 오로지 찾아야 될 삶의 의미를 향한 길을 선택하신 것아닐까요? 가야할 길이 아닌 편한 길만 쫓아가는 것은 결국은 걸어 간만큼 되돌아 와야 합니다. 어쩌면 되돌아오지 못하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극락으로 가는 길은 오로지 한발 한발 내가 만들어가야 합니다.

 경봉스님이 던지신 말씀을 다시 새겨봅니다.

 “극락에 길이 없는데 어떻게 가려 하는고?”                                (201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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