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죽다가 살았는데

무설자 2012. 6. 2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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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다가 살았는데

 

수필전문지 '에세이스트' 신인상 등단작

                                                                                                          김 정 관

 

 죽다가 살았다. 죽어가다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그냥 죽을 수도 있었는데 아슬아슬하게 살아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 큰일을 남이야기 하듯이 하게 된다. 마치 후배가 운전 부주의로 자동차가 언덕 아래로 굴렀는데 요행히 멀쩡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다행이라는 말을 별 생각 없이 건넸던 것처럼.

 

 사건이 일어났었던 그 무렵은 신묘년 연말이었다. 다들 송년회 스케쥴 정리하느라 바쁜데 나는 하필 해 넘기기 전에 사무실을 이전해야 했기에 정신이 없었다. 건축사사무소의 짐은 여느 사무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양이 많아서 일단 짐만 풀어놓고 일의 선급을 가리지 못해 우왕좌왕하는데 아내는 해를 넘기지 말고 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을 꼭 받아야 한다고 며칠째 다구치고 있었다. 쉰이 넘으니까 건강검진을 받으러가는 것이 마치 시험대에 오르는 것 같았다.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연말이 돼버렸고 아내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동네 병원에 위와 대장내시경검사를 예약해서 사무실 이사와 연말 일정이 뒤섞인 일정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날에 검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위내시경검사는 가끔 받았지만 대장내시경검사는 처음이었다. 검사야 수면상태에서 받으면 되는 것이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는데, 먹기 거북한 용액을 마시고 속을 비우는 검사 전의 준비과정이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예약 날 오전, 병원에 도착하여 검사실에서 잠깐 자고 일어나니 담당 의사는 내시경검사와 함께 대장에 생긴 용종 몇 개도 제거했다며 용종을 제거한 부위의 내시경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라고 했다. 전날 저녁부터 비어있는 속을 흰죽으로 채우고 비록 시술이라고 하지만 좀 쉬어야겠기에 병실 침대에 잠시 누워 있다가, 일정에 잡혀있는 오후 미팅 시간에 맞춰 출근을 했다.

미팅을 마치고 손님을 배웅하기 위해 건물 입구에 내려갔다가 현기증으로 길에 주저앉아 버렸다. 분명 정신은 있는데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함께 동행 하던 손님이 비명을 질렀다.

 

 “소장님, 소장님...이것 봐요. 누가 좀 도와줘요!”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지를 적시고 경사진 길을 따라 도랑처럼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대장용종을 절제한 것에 문제가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죽음이라는 단어와 교차되면서 아득해졌다. 나는 아랫도리가 거의 피범벅이 된 채 119센터의가 구급차에 실렸고 구급요원은 정신을 놓지 말라고 그러는지 내게 뭔가를 계속 물어왔다. 몸은 가눌 수 없었지만 묻는 말에 대답은 할 수 있어 그간의 경과를 자초지종 이야기하는 사이 부산대학교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피투성이로 응급실에 도착한 내 모습은 아마도 엄청난 사고를 당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4리터 정도의 피를 쏟아냈기 때문에 혈압이 떨어져서 불안하다는 의료진들의 말이 들렸다. 견디기 어려운 오한에다 구역질은 쉼 없이 나오는데 수술실은 왜 그렇게 멀리 있는지. 이윽고 도착한 수술실, 마취 없이 진행하다보니 수술 과정을 오롯이 느껴야 했다. 항문에 공기를 불어넣는지 밑으로 뭔가를 집어넣어 속을 헤집으며 처치를 하는데 정말 두 번 겪을 일은 아니었다. 견디기 어려운 시술인지 수술인지를 한참을 했다. 여태껏 살면서 내가 느꼈던 가장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고통스런 시간이 지나가고 마무리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죽다가 산 것이었다. 죽어가다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그냥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어렵사리 살게 된 것이었다.

 

 어쨌든 산목숨으로 다시 응급실로 내려왔는데 병실이 없어서 하룻밤을 그곳에서 지내야 했다. 위급했던 시간을 눈을 뜨고 겪었지만 그간의 경과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다시 들으니 살아있다는 것이 정말 꿈같은 사실이었다. 사무실 바로 옆에 마침 119센터가 있는 것도 천행이었지만 그것도 길에 쓰러진 덕에 바로 구급차에 실렸고 부산 최강의 응급의료센터가 200미터 거리밖에 안 되었으니 최단시간 안에 처치할 수 있었기에 위급한 상황을 넘겼다는 것, 조금만 더 지체했다면 혈압이 떨어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렸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랬다면 이미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세상이 돌봐준 덕에 나는 살았다.

 

 다음날 입원실이 나서 자리를 옮기니 코에는 산소흡입기를, 팔뚝에는 몇 개의 링거를 꼽고 금식 팻말까지 붙이고 있었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 휴대폰을 만지작대는 여유도 부리게 되었다. 전원참석을 목표로 하는 의형제 같이 지내는 모임에서 경주로 1박2일 일정의 송년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일단 불참 사유를 알려야 할 것 같았다. 모임의 맏형께 전화를 했다.

 

 “형님, 저, 병원에 입원 했습니다.”

 

 “입원을 했다고? 왜?”

 

 “건강검진을 하면서 대장내시경을 했는데 용종 2개를 절제 했습니다. 그랬는데....”

 

 딴에는 충격적이어서 죽다가 살아난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했는데 선배는 그다지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래... 몸조리 잘해라. 다녀올게.”

 

 그들은 금요일 저녁에 출발했다. 토요일에 돌아올 테니 그땐 날 찾아주려니 기대했다. 웬걸, 토요일 밤이 늦도록 병문안은커녕 안부를 묻는 전화도 한 통 없는 거였다. 일곱 명의 회원 중에 한 사람도 전화 한 통 안 한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고 화가 살짝 올라와 총무에게 전화를 넣었다.

 

 “모임은 잘 다녀왔는가?”

 

 “아, 예 형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렇게 물으면 또 구구하게 설명할 수도 없고 괜찮다고 할 수밖에.그는 대수롭지 않게 몸조리 잘 하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른 후배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비슷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죽다가 살아서 이렇게 병문안을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깜짝쇼라도 할 생각인가? 이미 밤은 늦어서 깜짝쇼처럼 병문안을 올 시간도 지나버렸다. 섭섭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 잠이야 낮에 실컷 자둔 것이고 자정을 넘겨가면서 노트북으로 우리 모임의 온라인카페에다 일필휘지로 그간의 경과를 글로 써서 올렸다. 이럴 수 있느냐, 이 모임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쓰다 보니 다소 협박성 어조가 되었다. 이튿날 눈을 뜨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맏형께서 먼저 그 글을 읽었던 모양이었다.

 

 “이런 일이었는지 몰랐네. 나는 그저 대장용종 절제는 간단한 시술이라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었는데...정말 그렇게 힘든 상황을 겪었는지 몰랐다네. 그래 이제는 괜찮은 건가?”

 

 그럼 그렇지. 우리 모임의 사람들이 그럴 리가 없지. 그날은 연말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전원이 병원으로 달려와서 섭섭했음을 풀라고 온갖 사과의 말을 건넸다. 분명히 나는 죽다가 산 이야기를 했었지만 전화기로는 그 상황이 다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소통의 한계일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지 못해 그런 거라면 그 죄를 전화에게나 물어야 할까?

 

 누군가 곁에서 죽을 만큼 아프다고 할 때 나도 그렇게 무심하고 둔감했던 것은 아닐까? 하기야 당사자인 나조차 그 위기의 순간을 이제는 나또한 이제는 남의 이야기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니 아직 이 사건을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죽다가 살아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무용담처럼 재미삼아 이야기하곤 한다. 그건 이미 지난 일일 뿐 살아있는 지금은 눈앞에 닥친 작은 일에 정신을 팔고 있으니, 늘 현재에 살고 있으니, 지금에 충실하라는 붓다의 말씀이 옳구나하고 떠오르는 게 작은 깨달음이라면 어떨까? 하지만 죽다가 살아났으니 분명히 좀 근사하게 달라진 것이 있어야 할 텐데 주변 사람들에게 봐달라고 해봤지만 이번 기회에 담배나 끊으라는 아내의 책망만 따라올 뿐이었다. 그것 참!                                                                                                                                   (20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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