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승리자

무설자 2011. 7.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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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여름, 인도에 한국사찰을 짓는 일을 의뢰받아 건축주인 스님을 따라 불자라면 누구나 꼭 가고픈 인도를 현장 답사차 가게 되었습니다. 성지순례가 아닌 업무상의 출장이라 일주일의 짧은 여정으로 일에 필요한 일정을 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처님의 흔적을 느껴야 하는 그곳을 일주일 만에 다녀올 수밖에 없어서 불자로서 괜한 송구함을 안고 나섰던 길이었습니다.

 

절을 지으려는 장소는 쉬라바스티,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머무르신 기원정사가 있는 그 곳입니다. 쉬라바스티(사위성)은 라즈기르(왕사성)과 함께 붓다 교화의 최대 중심지였죠. 이곳은 강가(갠지스) 서북쪽에 위치한 코살라(Kosala)국의 수도였습니다. 지금의 행정구역은 우타르 쁘라데시 주(州) 사헤트-마헤트에 해당됩니다.

 

지금은 한적한 시골마을이지만 끝도 없는 습지에는 연꽃이 피어 있어 경관은 극락이 연상 되었습니다. 울창하지는 않지만 숲에는 허물어진 벽돌로 된 옛 유적에 원숭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옛 영화는 간데없고 그 자리에 풀과 나무만 무성하여 그야말로 무상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수닷타 장자가 부처님을 위해 세웠다는 기원정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21번째 되는 해부터 입멸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해만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하안거를 보냈을 정도로 이곳을 좋아하셨다던 그곳도 터만 남아 순례객만 오갈 뿐 그 시대의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현장은 기원정사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곳이라 걸어서 5분이면 닿는 곳입니다. 기원정사를 중심으로 각 나라의 절들이 있지만 그 모습은 어설프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나마 한국 절은 아직 없어 스님께서 원을 세워 격을 갖춘 우리 절을 조성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어렵사리 대지를 확보하여 우선 간이법당을 세우고 대지 입구에 요사를 짓는 공사를 진행 중에 있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만난 한 사람과의 대화가 아직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나라의 굴지의 대기업에 근무하다 찌들린 일상을 벗어나고자 휴가를 얻어 인도를 오게 되었었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귀국하지 않고 티베트와 인도를 오가며 몇 년째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분께 저는 이런 질문을 했었습니다.

 

“몇 년을 사셨으면 굉장히 재미있는 체험이 많으실 것이니 그 내용을 책으로 엮어보시지요”

 

그 때는 인도순례를 내용으로 한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었고 그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렇지요. 사실 인도라는 환경은 잠시 다녀가는 분들에게는 참 신기하게 보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6개월 정도 머무르기에는 괜찮은 곳이지요. 하지만 더 오래 있기 위해서는 이 곳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곳 사람처럼 되어버린 제게는 특별할 게 없으니 할 말도 쓸 수 있는 글의 꺼리도 없지요.”

 

그러니 책을 쓴 사람들은 잠시 머무르다 가는 사람들이라 보이는 모두가 신기하고 이색적인 내용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 선생님도 아마 일주일간의 체험을 아마 몇 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쓰라고 하면 무슨 소재로 재미있게 쓸 수 있겠습니까?”

 

그 분은 이미 인도에서의 삶이 편안해 보였습니다. 제가 보낸 일주일은 불편하기 그지없었고 그렇게 살아가는 인도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인도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그 생활을 불평하거나 받아들이기 위해 억지로 애를 쓰지도 않으니 그 분도 그 삶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를 생각하며 저를 돌아봅니다. 매일 출근길에 앞서 전쟁터에서 전선에 나가는 병사들처럼 삶의 의지를 다집니다. 그렇게 다지고 다진 결의를 앞세우며 싸우듯이 살아도 승산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히 패자는 많이 보이는데도 승자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으니 승패는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모두가 패자로 살아가는 듯이 보이는 이 시대 삶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어떤 싸움이든 영원한 승자는 없다고 합니다. 일시적으로는 이기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패배의 쓴 잔을 마시고서야 싸우듯이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알게 된다고 하는 이야기를 받아들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승리도 패배도 없을 텐데 눈앞의 승패를 꼭 따져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유치원을 들어가면서 부터 경쟁이라는 싸우는 법을 익혀온 우리네 삶의 방식에서 다른 삶의 방법으로 대체하기란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 길을 대체해서 살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가 자신을 돌아보면서 살아가는 길이라 여깁니다. 전쟁터에서 싸워 이기는 것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이가 진정한 승리자라고 한 붓다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삶에서 다가오는 고통을 바르게 인식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일상을 돌아보며 나는 어떤 상태로 살아가는가를 살펴보라고 붓다는 가르칩니다. 변하지 않는 내가 있다고 고집하는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나를 매일 돌아보지 않으면 끊임없이 변하는 바깥의 상황에서 나라고 가정한 실체가 없는 나를 지키기 위해, 그 나를 내세우기 위해, 그 나에 묶여서 끊임없는 번민으로 고통에 휘둘리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만난 그 분을 떠올리며 싸우지 않고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를 떠나 그곳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그의 삶이 제가 받아들인 삶은 아닙니다.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자의 모습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봅니다.

 

이 자리를 떠나서 그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을 통해 받아들이는 삶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만 나와 가족과 이 사회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나의 부족함을 살피는데 게으르지 않아야겠습니다.

 

싸워 이기려는 삶의 태도를 늘 경계하면서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삶을 실천하다보면 이 자리도 살만한 세상임을 알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매일 마시는 차 한 잔을 나누며 주고받는 대화도 나누는 것이기에 싸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항상 내 곁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지금도 인도와 티벳을 오가며 정진하고 계실 그 분께 차 한 잔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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