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명동성당의 반야심경

무설자 2014. 12. 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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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향기] 명동성당의 반야심경

 

 

  송재윤
  맥매스터 대학 교수

 

 

 

 

통도사 자장암 / 김정관 사진

 

  1990년대 후반,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함께 충무로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무작정 걷기시작했다. 국가가 파산 위기에 몰렸던 금융위기 직후, 거리엔 많은 사람이 배회하고 있었고, 도심 곳곳엔 깃발 든 시위대와 전경부대가 대치 상태였다. 인파에 떠밀려 얼떨결에 명동성당 안으로 들어설 때 어스름 속에서 석양을 되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색등처럼 반짝였다.

 건물 벽을 따라 돌다가 성당 정문의 문고리를 잡는데 어쩐지 불안했다. 과연 이 문을 당겨도 될까. 문고리를 잡고서 한동안 망설였다. 아내는 내 팔을 잡아끌면서 그냥 가자고 했고, 나는 반사적으로 문을 당겼다. 다음 순간, 빼꼼히 문이 열리면서 문틈으로 교인들의 모습이 힐끔 보였다.

저녁 미사가 진행 중인 듯했다. 잠시 주춤거리다 우리는 용기를 내서 회당 안으로 들어갔다.

 회당 안은 말 그대로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입구까지 빽빽이 들어서서 우리는 문에 등을 대고 서야 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음에도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높은 천장 아래 운집한 교인들은 진지한 얼굴로 누군가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마이크를 타고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용을 다 떠올릴 순 없지만 그때 나는 분명 그곳에서 ‘반야심경’이란 단어를 들었던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반야심경의 메시지입니다.”

 

  실로 진귀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성당에서 반야심경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람들 틈을 헤치고 나아가 목을 쭉 빼고 보았다. 설교자는 승복을 입고 안경을 쓴 한 스님이었다. 그는 회당을 꽉 메운 거룩한 청중 앞에서 청빈(淸貧)과 무소유(無所有)의 가르침을 일깨우고 있었다. 불교의 승려가 가톨릭의 교당에서 법문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립과 반목의 역사를 딛고 커다란 화합의 원리를 실현하는 현장이었다. 우리는 법문에 빨려들었다.

 스님은 카뮈의 소설 한 구절을 인용해 말했다. “인생의 황혼 무렵 우리는 과연 이웃을 얼마나 사랑했나에 관해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스님의 가르침이 낭랑한 음성에 실려 청중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영문 모르고 그 현장에 끼어들어간 우리는 마음을 열고 법문을 경청하는 교인들과 일체가 되었다.

 다음 날 조간신문을 보고 나서야 명동성당에서 법문을 설한 그분이 바로 고(故) 법정(法頂) 스님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명동성당 축성 100주년 되던 그해,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께서 함께 기획했던 행사였다. 이후 추기경께서도 조계사에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셨다 한다. 두 분의 큰 뜻이 그날의 역사를 만든 것이다.

 신념의 충돌로 야기된 인류사의 수많은 종교전쟁을 되돌아보면서 다시금 그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1893년 최초로 소집된 ‘세계종교의 회’는 꾸준히 ‘종교 간 대화(interfaith dialogue)’를 추진해 왔다. 그대화를 이끌어 온 한스 큉 박사는 “종교적 평화 없이 국가 간의 평화는 있을 수 없고, 종교 간 대화 없이 종교적 평화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아마도 그런 정신사적 배경위에서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이 종교 간 대화를 시도했던 것이리라.

 미국 한 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인류의 84%가 종교를 갖고 있는데, 세계 인구의 4분의 3에 달하는 51억 명은 여전히 종교적 자유를 못 누리고 있다. 또한 최근 5년간 지구촌의 종교 갈등은 계속 증가해 왔다. 정부의 간섭 및 사회적 적대감의 정도로 볼때 대한민국은 이미 종교적 자유가 보장된 나라임에 틀림없다. 최근 10만여 명이 한국정부의 종교탄압을 이유로 백악관 청원 홈페이지에 몰려가 서명을 했다지만, 대한민국의 종교적 관용과 개방성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따금 아내와 나는 그날 경험을 얘기하곤 한다. 무엇보다 가톨릭 회당에서 승복입은 비구의 법문을 귀담아듣던 성숙한 시민들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어수선한 시국, 열린 신념과 경청의 문화가 그리워진다.

  -중앙일보 2014.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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