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차 한 잔의 짧은 생각

뒷담화

무설자 2013. 4. 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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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



말은 역시 말을 만듭니다.
말을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듣는 사람이 마음대로 판단하니 말이 많으면 구설수에 오르게 되네요.
나이를 좀 먹고 자리가 그래서 그런지 듣는 자리에 앉기보다 말 하는 입장에 더 많이 서게 되니 늘 조심스럽습니다.

모교에서 특강을 좀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두어 시간 자식뻘 되는 후배 앞에 섰습니다.
어린 후배들 앞에서 주책을 떨었던 것이지만 잘 하는 말로 열변을 토하니 일단 박수를 받으며 시간을 마쳤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강의를 들었던 후배들이 강의 뒷 얘기를 듣고 싶다며 사무실로 찾아 오겠다고 했습니다.

다섯 명이 찾아온다며 토요일로 만나는 날을 잡았습니다.
쉰 명에서 선발된 다섯 명이니 더 신나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려워진 우리 일로 그들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어 보이는데 그들은 이 일을 그들의 앞날을 열고자 합니다.

제 말이 그냥 듣기 좋은 말일지도 모르는데 그들은 밝은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과연 그들에게 제 말이 필요한 이야기였을까요?
긴 말은 늘 하고나면 후회하는 마음이 뒤를 따릅니다.

하고나면 마음이 무겁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말,
열번을 생각하고 한번 이야기하라고 하지만 늘 한번 한 이야기에 몇배의 후회로 씁쓸함이 따릅니다.
며칠 전에는 찾아온 사람에게 그를 위해 한참을 이야기했지만 본전도 못 찾았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냥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잘 들어주는 것이 기본 점수를 받는 것인데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저는 아직 말이 너무 많습니다.
말 하고 난 뒤에 뒷담화로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숙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저를 다독여 봅니다.

(2013,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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