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차 한 잔의 짧은 생각

정때문에 산다는 나이에

무설자 2014. 4. 8.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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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때문에 산다는 나이에

 

 

 

 오늘은 조금 늦은 저녁을 혼자서 먹었다. 밥 때를 넘겨서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카레라이스를 저녁으로 지어놓고 일터로 다시 나갔다. 조금만 일찍 왔으면 같이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아내는 저녁만 지어놓고 그냥 나갔다. 혼자서 먹기는 했지만 맛있는 밥이다. 아내는 카레라이스를 즐기지 않기에 우리집 식단의 주 메뉴는 아닌데 오늘은 나를 위해서 요리를 한 것이다. 쉰 중반에 남편대접을 이렇게 후하게 받는 이가 많지 않다는 걸 알기에 밥이 맛있기도 하지만 부부의 정을 먹는 그 맛이 더하다.

 큰 접시에 담았던 카레라이스가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내 뱃속으로 사라졌다. 배가 부르니 생일밥을 챙겨 먹지 못했다고 찾아 왔던 친구A가 생각이 났다. 몇해 전의 일이지만 한날 A가 저녁을 먹자며 찾아 왔었다.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은 뒤 A는 그날이 자기의 생일이라고 했었다. 그 친구는 아내는 물론이고 과년한 딸이 둘씩이나 있는데 생일밥을 못 얻어 먹었다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 친구의 우울함을 달래준다고 못먹는 소주를 한병이나 마시면서 맞벌이 하는 형수씨를 이해하라며 A를 다독였다. 하지만 딸은 엄마를 닮는다고 하기에 여자 셋이 가장인 A에게 미역국 한그릇 준비하지 못하다니 안타까웠었다. 그가 술을 자주 마시는 이유가 이해 되었다. 우리집보다 경제적인 능력도 나은 집인데 그렇게 대접 받는 A를 보자니 내가 부끄러웠다.

 아내가 좋아하지 않는데도 맛있게 지어놓은 카레라이스가 내게는 이보다 더 맛있는 밥이 있을 수 없는 밥이다. 집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데 남편을 위해 지은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

 초코파이가 정이 아니라 식구가 마주해서 먹는 밥이 정이지 않겠는긴? '밥은 정이고 식구들이 함께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으면 그게 행복 아니겠는가?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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