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보이 숙차 이야기

중차패 2001년 숙병 시음기-숙차 그까이 꺼...뭐?

무설자 2013. 3.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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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숙차 시음기

숙차, 그까이 꺼...뭐?

-중차패 2001년 숙병-

 

 

 

 

 

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집 안팎에 꽃이 다투어 피니 눈길이 가는 그대로 봄봄입니다

휴일나들이 가까운 낙동강 하구로 나설까합니다

 

봄은 꽃이 피는 그 시간만큼 왔다가 가겠지요

시간은 즐기는 이에게는 한계를 주지만 시간 속에 살아가면 그 자체가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는 건 별로 없지만 보이차는 나이를 먹을수록 대접을 받지요

 

나이를 속여가면서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건 보이차가 사람과 다른가 봅니다

하긴 보이차가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고 사람의 욕심이 그렇게 만들지만요

보이차도 그냥 연식만으로 대접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고 그에 걸맞는 조건을 갖추어야 되는데...

 

 모 카페에서 차나눔 방식으로 분양했던 맹해 03 7572라는 숙차가 오래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지요

'7572'라면 맹해차창 숙차의 대표 브랜드이자 숙차의 표준으로 삼을 수 있는 기호이기도 합니다

거기에다 2003년산에 건창보관이라고 해서 10년의 세월동안 향미가 안정되어

숙차로 맛 볼 수 있는 최고의 향미를 기대했었습니다

 

차를 마셔보았더니 병면부터 탕색, 향미, 엽저 등 제가 숙차를 마시는 기준과는 차이가 많았습니다

제대로 보관된 진기 10년의 7572 숙병을 마실 수 있으리라는 저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지만

제가 마시는 숙차의 기준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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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할 차는 2001년산 중차패 숙병입니다

진기가 13년차로 들어가니 만약 보관만 잘 되었다면 숙차로서는 아주 귀한 몸이라 할 것입니다

사실 10년이 넘은 숙차는 생차보다 더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생차는 보관용이니 10년이라도 계속 보관용이지만

숙차는 10년이면 마실수 있는 차로 남아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차는 개인 소장품을 선물로 받은 것이니 그야말로 건창 보관이라고 하더라도 좋을 것입니다

 

 

한지로 잘 싸서 정성을 들여 보관하는 이 차는 제게 특별한 사연이 있는 차입니다

안타깝게 작고 하신 다음카페 '보이차 동경당'의 동경당님 막재에 참석하여 선물로 받아서 고이 모셔놓고 있습니다

포장지에 아예 중차패라고 인쇄가 되어 있는 솔직한 중차패 숙병입니다 

 

 

 이번 03 7572로 많은 토론이 이어졌는데 그 덕분에 포장의 뒷면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즘처럼 깔끔하게 포장이 된지는 얼마되지 않은가 봅니다

10년 내외의 차는 대충 손으로 구겨서 포장을 한 이 모양이라야 된다고 하더군요

  

 

이 차의 병면은 앞면은 잎 위주로 고른 모양이지만 뒷면은 껑도 많이 보입니다

내비는 녹인의 '茶'자가 보일뿐 어떤 표식도 없습니다

그냥 숙차....오로지 맛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야 하는 겸손한 차입니다

 

 

 거실 탁자의 한쪽에 마련된 제 찻자리입니다

차기정 장인의 옻칠 목다선으로 차판을 대신하는데 너무 편리하고 품위도 있습니다

자리를 적게 차지하고 어디서든 차를 마실 수 있어서 아파트 거실용 다구로 강추합니다 ㅎㅎㅎ

 

 

오늘 쓸 잔입니다

백자잔은 탕색을 보는데 쓰고 금잔은 탕색을 즐기기 위함입니다 

금잔으로 차를 마시면 한맛이 더해 집니다

 

 

이번에 갖추게 된 특별한 집게입니다

옻칠에 자개를 더해 격을 높였는데 집게를 쓸 때 손에 감기는 맛이 참 좋습니다

차기정 장인의 옻칠 목다구를 한 점 씩 갖추어 차를 마시는 재미가 아주 쏠쏠 합니다 

 

이제 그야말로 이름 없는 숙차로서 13년 째 들어가는 '겸손한 차맛'을 즐겨보도록 할까요?

대익도, 노동지도, 하관도 아닌 중차패라는 가장 흔한 옷을 입었지만 있을 자리에서 나이를 잘 먹었습니다

아마도 나이값은 제대로 할 것이니 이 차보다 못한 차는  그 자격을 의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숙차로 시음기를 써 보는 의미는 이름값으로 차의 가치를 부여하는 의미를 따져보기 위함입니다

중차패는 숙차가 가지는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를 했다고 봅니다

차를 만든 회사도, 제조일자도, 성분도 알 수 없었던 이 포장지는 보이차의 신비와 불신을 같이 안고 있었지요

 

 

왼쪽이 오늘 시음기의 대상이 되는 차인데  2001년 중차패 녹인 숙병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오른쪽의 차는 시비의 논란에 올랐던 맹해 2003년 7572 황인 숙병의 포장지의 모습입니다

겉 모습으로는 어떤 차인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특정차창의 표식은 내비에 기록을 했습니다

 

 

 

 

 

 

그런데 '맹해 03 7572 황인 숙병은 아무런 표식이 없었지요.

왼쪽 내비 사진이 03 7572이고 오른쪽이 01 중차패 숙병입니다

만약 03 7572가 맹해차창의 숙차라면 내비에 맹해차창이라는 글자가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렇게 포장지나 내비가 중차패의 일반적인 상태라면 그 가치는 가장 흔한 차로 평가받아도 할 말이 없겠죠

그래서 2001 중차패 숙병도 그냥 '마셔보고 평가해주세요'하며 처분을 기다립니다

자, 이제 한번 마셔볼까요?

 

 

가감없이 차맛을 알아보려면 자기개완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

자사호는 향미의 변화가 있을 수 있으므로 유약으로 덮여있는 자기 개완이나 차호를 씁니다

세차를 조금 길게해서 잡미나 혹시 남아있을 숙미나 숙향을 날려 보냅니다

 

 

탕색이 맑고 밝은 붉은색이라 너무 먹음직스럽습니다

 저런 탕색이라면 아마 좋은 맛을 낼 것 같습니다

생차도 그렇지만 익은 차라는 이름처럼 숙차는 먹음직스런 색, 밝은 붉은색이나 갈색이라야 합니다

 

이 차는 제가 바라는 숙차의 조건을 다 가지고 있네요

-무설자식 숙차품차 기준-

 

1. 탕색이 맑으면서 밝은 붉은 색을 가져야 한다

-탕색은 노란색이 도는 붉은색이며 맑고 밝은 색입니다

 

2. 탕은 걸죽한 느낌이 날 정도로 입안에 담기는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

-걸죽한 느낌에 무게감이 있어서 입안에 담기는 느낌이 좋은데다 목넘김이 매끄럽습니다

 

3. 떫은맛은 적을수록 좋고 목넘김이 매끄러워야 하며 마신 뒤에 입네 단침이 돌아야 한다

-떫은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약간 쌉쓸한 뒤에 단맛이 돌아서 회감이 너무 좋군요

 

4, 잡미나 잡향은 없어야 하지만 문향을 했을 때 달콤한 향이 느껴지면 상급의 숙차라 할 것이다

-잡미나 잡향은 없으며 차를 따르고 난 뒤에 개완뚜껑에서 맡는 달콤한 향이 너무 좋습니다

 

5. 엽저는 무조건 갈색이어야 하며 자연 목질화가 아니라면 검은색 엽저는 탕색도 향미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엽저는 갈색이 균일하고 보들보들합니다.

 

 

    이제 끝으로 엽저를 비교해 봅니다

왼쪽이 03 7572라는 황인숙병이고 오른쪽이 2001년 중차패 숙병입니다

사진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 마셨을 때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황인 숙병의 엽저는 갈색이 균일하지 못한 데다 만져보면 보들보들 하지 않고 뻣뻣합니다

여기에서 엽저의 색깔이 다른 종류가 있다는 것은 여러 모료가 섞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뻣뻣한 엽저는 목질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인데 습창 보관 과정에서 곰팡이의 침해를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생차든 숙차든 엽저가 딱딱하게 되었거나 엽저의 색이 갈색으로 균일하지 않으면 좋은 차가 아니라고 봅니다

오래된 숙차라고 해서 값을 많이 치르고 구해보면 보관 환경이 좋지 않아서 시원찮은 차가 의외로 많습니다

숙차는 진년차를 구하려고 하기보다 잘 만든 차를 신차로 구입해서 나의 환경에 소장해서 마시면 좋겠습니다

 

이 2001 중차패 숙병은 나이 지긋한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해서 거북함이 없는 친근감 백점입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하기도 해야 하지만 이 차만의 매력이 있어야 좋은 숙차입니다

그 매력은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지는 성분의 변화와 관련되므로 묵은 차를 찾는 지도 모릅니다

 

이름이나 나이는 차가 맛있을 때 그 빛을 발합니다

차맛이 입에 맞지 않으면 맹해차창 대익패면 뭐하며 7572가 무슨 대수일까요?

당연히 진기가 10년이 아니라 30년이래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중차패라는 이름 없는 숙병, 13년 차의 나이가 명예로운 차

동경당님의 소탈했던 모습처럼 넉넉하고 편안한 차입니다

너무 욕심내지 않는다면 좋은 차는 늘 가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월만 빼면 제가 가진 숙차의 기준에 맞는 차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숙차, 그까이 꺼....뭐

편안하게 대할 수 있어서 기대보다 만족할 수 있는 차입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