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보이 숙차 이야기

이래서 저는 숙차를 즐겨 마십니다

무설자 2013. 7. 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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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숙차 이야기 1307

이래서 저는 숙차를 즐겨 마십니다

 

 

 

 

 

숙차,보이차를 알게 되면서 먼저 마시게 되는 차지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차이면서 또 어려운 차일지도 모릅니다. 싼 차이기에 함부로 사게 되기에 마셔서는 안 되는 차를 원래 그런 차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요.

숙차를 마시면서 차가 제 생활의 기본축이 되었습니다. 제가 앉는 자리, 집에는 거실에, 사무실 제 방의 탁자에는 물론이고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에는 아예 차실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로 늘 차가 가까이 있습니다. 여행을 떠날 때는 표일배를 챙기는 것이 먼저인 일상다반사를 행하게 한 수훈갑이 바로 숙차입니다.

그러다보니 차 이야기만 나오면 숙차 숙차하게 되지요. 이런 숙차다보니 제게는 밥보다 더 가깝습니다. 밥은 때가 되어야 먹지만 차는 마시고 싶으면 그게 때니까요.

그럼 저는 어떤 숙차를 마시고 있을까요? 집 밖에서 마시는 여럿이 얘기하면서 마시는 음료로서 마시니 진기로는 10년 미만의 보편적인 차이고 집에서는 10년 이상되거나 흔치 않은 차로 주로 혼자서 마시거나 다우와 둘이 앉아서 차맛에 집중하며 마십니다. 하지만 차의 종류를 특별히 편애하지 않고 맑은 탕색, 달콤한 향미와 갈색의 보들보들 엽저의 조건에 부합하면 가리지 않는 편입니다.

그 중에서 특히 맛있게 마시는 3종이 있어서 이 차들로 저의 숙차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그 중에서 한편은 90년대 차지만 두편은 5년 내외이니 아껴서 마실 거 아니라 팍팍 마셔도 되지만 이 차들은 아주 부드러운 맛이라 주로 늦은 밤에 혼자서 마십니다.

 


'98 봉패 숙병, 적월만추, 동몽 숙병입니다. 봉패 숙병은 노차반열에 들 수 있는 차라서 아껴서 마십니다. 적월만추와 동몽은 고수차를 모료로 만든 좀 특별한 숙차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가지 차를 특별히 지목하는 건 아닙니다. 흔히 말하듯이 그 비싼 모료로 왜 숙차를 만들겠냐는 이야기에 동의합니다.그런데 이 두 차가 고수찻잎이기는 하지만 거의 황편 수준의 큰잎을 썼다는 점에서 고수차로 만들었다는 것을 신뢰할 만합니다.
 

 


이 차가 '98 봉패 숙병입니다. 제가 소장한 숙차의 90년대 차는 거의 전차이고 병차는 많지 않습니다. 숙차는 소장용이기 보다는 바로 마시는 차이기에 10년 이상 진기의 차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전차는 생숙을 막론하고 중차패 포장지일 경우가 많지요. 차창도 알 수 없고 생산년도도 표기되지 않은 정체불명이라 마셔보고 평가할 수밖에 없어서 그야말로 복불복차라 하겠습니다.
그런 숙전차지만 제가 소장한 차는 불복보다 복차가 많아서 다행입니다.

봉패숙병의 맛은 어떨까요? 동몽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 글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동몽숙병은 지인에게 들어온 선물을 제가 차지하면서 마실 기회를 가진 차입니다. 이 차는 일반 시판용이 아니라 차창의 멤버쉽 소장용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차창의 이름은 박예헌博藝軒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차를 받았을 때 놀랐던 건 숙차 한편을 위한 포장이었습니다. 보이차는 포장단위가 한편 짜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42편인 한건 단위인 것이 보통입니다.한 편 소비를 목적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보관 단위인 한박스라는 얘기지요. 그런데 이 차는 디자인이 세련된 건 물론이고 전용 쇼핑백까지 갖추었습니다. 그만큼 정성들여 만들어서 한 편으로 판매할 수 있는 가격을 받도록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포장박스 안에는 차창을 설명하는 팜프렛까지 들어 있더군요. 최근에는 차값도 오르고 포장도 신경을 많이 쓰는 걸 보니 보이차 수요층이 다변화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창고에 박스로 보관하는 게 보이차가 아니라 마시는 층이 늘었다고 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야금야금 마시다보니 이제 한 150g이나 남았는지 모른겠습니다. 긴압도가 적당해서 칼만 슬쩍 넣으면 차가 잘 떨어집니다. 마시기 위한 차라면 적당한 긴압도라야 온전한 잎을 떼어내어서 우릴 수 있겠기에 중간 정도로 긴압한 병면이 보기에도 예쁜데 이 차가 그렇습니다.


병면에서 떼어낸 찻잎은 이 옺칠대나무차시에 담습니다. 거추장스럽게 많은 다구를 쓸 필요는 없지만 자사호에 양을 눈대중으로 맞춰서 좁은 호주둥이로 넣는데는 이 차시가 딱입니다. 이 차시 역시 차기정 장인이 만든 것이죠.차도 그렇지만 다구도 열개 살 금액으로 잘 골라서 하나를 사면 오래 만족스럽게 쓰게 되지요.

 

 

이 분위기가 집 거실 한켠에 마련된 제 찻자리입니다. 아주 단촐하지만 차를 우려 마시기에는 이만하면 딱이지요. 차판을 대신한 옻칠목다선으로 바꾼 뒤에 차를 더 자주 마시게 됩니다. 차실을 별도로 마련하기보다는 간편한 찻차리 공간을 거실 한켠에 마련 하기를 바랍니다. 차 마시는 가족은 대화가 끊이지 않으므로 화목한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요?

 

이제 차를 우려 봅니다.
중발효로 만든 숙차, 제가 앞서 사진으로 소개한 3종 차가 다 큰잎을 써서 중발효에 더해서 과발효가 살짝 된 상태입니다. 경발효나 반생반숙의 숙차보다 좀 큰잎을 써서 중발효로 조수악퇴로 기본에 충실하게 만든 차가 입에 맞더군요.

 

조금 과발효된 차로 잎의 상태를 볼 수 있지만 탕색은 맑고 숙미숙향도 적당해서 단맛이 좋습니다. 마신 뒤 빈잔에 문향을 해보니 달콤한 향이 올라옵니다. 이만하면 더 바랄게 없는 숙차라 하겠습니다.
 

 

  

 

엽저를 살펴보니 상태가 차를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큰잎에 적당 분량의 줄기가 섞여서 농밀한 향미를 즐길 수 있게 합니다. 맛있고 건강한 숙차의 조건은 이런 엽저가 되어야 함도 숨어 있습니다.

 


어떤 숙차를 좋아 하시나요? 숙차는 저장하기 위해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맛있게 마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내 입에 맞는 차창의 신차를 구입하여 3~5년만 묵힌다면 더 좋은 차를 욕심낼 필요가 없을 것 입니다. 

 

 

10년 이상된 숙차라야 제맛을 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소개한 3종의 숙차가 제게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다 맛있습니다. 숙차스럽게 차생활을 하니 늘 제가 원하는 차를 마셔서 즐겁고 착한 가격의 차로 나눌 수 있어 행복하며 꼭 이 차라야 한다는 시비가 없어서 제 찻자리는 늘 다담이 온전하게 피어납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