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차들이 익어갔을 때

무설자 2011. 10. 2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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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차들이 익어갔을 때

 

茶들이 익어갔을 때

                                           백이운

 

시간이 잊어버린 雲南의 차들이

잡미며 잡향 고스란히 버려가며

잊혀진 창고 한구석 요지부동 했을 때,

애써 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주어진 온습도에 자신을 맡겼을 뿐

진화의 어느 순간도 거스런 적은 없다

말없이 차가 익어 진향으로 거듭나기까지

차 아닌 차로 무미한 존재가 되기까지

아, 얼마나 많은 변화를 했던 걸까.

서른 해 진기를 맛보는 혀끝이여

갑절 다 되도록 떫은 기 지우지 못해

갈구의 의식 깊숙히 떫지 않은 게 없구나

 

 

 

보이차를 마시며 알게 되는 것은 세월이 주는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나이를 먹는만큼 좋아지는 것이 어떤 게 있을까?

위스키, 와인 같은 술처럼 보이차도 오래 될수록 대접을 받는다

 

마흔 중반에 보이차를 알게되니 이 나이에 그해 나온 차를 보관해서 수십년을 기다릴까?

20년, 30년이 지나야 맛있는 차가 된다고 하니 일흔이 되고 여든이 되어 마시려고 기다릴 수가 없다

20년, 30년 묵은 차를 소장하신 분을 찾아뵙고 얻어 마시며 잠깐 맛을 즐길 뿐이다

 

가끔 나이를 제대로 먹지 못은 보이차를 접하게 된다

냄새며 맛이며 목넘김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노차들은 나이값 못하는 세월을 보낸 탓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이를 속이는 과정을 거친 차일 것이다 

 

보이차도 사람도 그 나이를 먹은 만큼 그에 어울리는 맛과 향기를 지녀야 대접을 받는다

나이를 먹어서 아름다운 모습이란 부드럽고 은근한 맛과 향이 나야한다는 건 차나 사람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걸리지 않고 과하게 드러나지 않으며 스스로 내세우지 않아도 존재감이 느껴져야 하지 않을까?

 

'말없이 차가 익어 진향으로 거듭나기까지

차 아닌 차로 무미한 존재가 되기까지'

그야말로 흐르는 세월을 받아들이며 지나치게 싸우지 않고 비굴하게 숙이지 않고 살아온 그 은근함이 뭉쳐진 결정체라고 할까?

 

잘 익은 보이차를 마시노라면 지천명을 넘기고도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해 거친 모습을 감추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누구나 좋아하는 나이 먹은 차처럼 되기 위해 남은 세월이라도 세상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겠다

억지로 드러내지 않아도 알게되는 보이차의 진향처럼 말 없어도 알아주는 그만큼이 바로 나임을 알아야겠다

 

작은 조각으로 남은 나이 먹은 보이차를 마시며 나를 돌아본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위안을 삼는 것은 억지로 만든 내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만의 향과 맛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음에 위안을 삼으며 그 분들이 오해하지 않는 모습이기를...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