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파랑새를 보셨습니까?

무설자 2011. 1. 2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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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늘 지닐 수 있다면 바로 그 마음이 추구하고자하는 자리라는 것이지요. 파랑새를 찾아 집을 떠나 멀리 헤매다 지쳐서 집에 돌아와보니 뜰 앞의 나무 위에 늘 지저귀던 그 새가 그렇게 찾아 헤매이던 그 파랑새라던 이야기를 떠올려봅니다.

 

이 시대는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일이라 여기는지 만나는 사람이면 대부분이 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남이 부러워 할 정도로 돈을 버는 사람은 적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못해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나 노심초사하며 살아가지요. 그런데 왜 돈을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 물을라치면 그건 그 뒤에 생각해도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단 돈만 쳐다보고 속도를 최대한 올려서 달려갑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어떤 직업군에서도 일의 가치나 직업에 대한 정체성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들이 어떻게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따져보고 공부를 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을라치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의 소질이나 재능을 고려해서 그에 맞춘 공부를 해야하는 데도 일단 유명 대학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학과를 선호합니다.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나 세상에 위해 사는 가치가 우선이 되는 전공은 뒷전이 되고 맙니다. 교육열이 높고 경제적인 상황이 좋은 집의 아이일수록 원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기란 더 어려워 보입니다. 

 

저는 집을 설계하는 일인 건축사가 직업입니다. 직업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타깝게 느껴지는 일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저녁이 되면 돌아가서 몸과 마음을 쉬는 둥지인 주택만 해도 그렇습니다. 주택이라는 용도의 절반이상이 이제는 아파트가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집에다가 내 삶을 맞춰야 하는 것이 아파트라는 집이지요.

 

아파트는 사람이 살기에 좋은 집이 아닌 부동산적인 가치를 우선으로 두고 만든 집입니다. 그러다보니 집값이 오르면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돈을 증식하면서 철새처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삽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우리 동네라는 개념이 희박합니다. 무슨 아파트 몇 동 몇 호는 기억을 할지 모르지만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추억은 예전같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 살던 잠을 자는 곳은 거의 다 아파트라고 보아야 될 것입니다. 아주 시골이 아닌 이상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집에 대한 생각이 그러할 정도라면 다른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물으면 돈이 있어야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약 원하는 돈을 모으고 나면 그 돈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일까요?  지금 돈이 없기 때문에 힘이 들기에 불행하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힘들다는 것과 불행하다는 것은 다르지요. 그러면 부유하다는 것과 행복하다는 것이 또 다릅니다. 행복과 불행을 돈이 많은 것과 모자라는 것으로 비교하는 분이 있다면 그가 내리는 행복의 정의는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쨋든 이 시대는 돈의 많고 적음을 바로 행복의 척도로 알고 사는 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아파트 평수나 승용차의 크기가 바로 그 기준으로 얘기되고 연봉으로 사람의 우열을 평가하는 생각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부자가 천국을 간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기보다 어렵다는 성경말씀이 가난한 자는 하늘나라로 가기 쉽다는 말로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재물에 눈이 팔려 사는 이는 선하게 살기 어렵다는 말로 얘기한다면 저만의 억지 생각일까요?

 

돈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을 삶의 의미로 살아가는 이는 있다면 그는 이 시대의 아웃사이더, 이방인일지도 모릅니다. 돈이란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수단이며 내가 설정한 삶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그 방편이 되기에 그에 필요한 정도를 버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동서고금에서 현자들은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행복의 정의와 삶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오로지 돈만 추구하는 이들은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이와 무엇이 다를까요? 파랑새를 미리 알았다면 집을 떠나 그렇게 힘들게 온 세상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파랑새를 먼저 알고 찾아나서는 이, 그가 바로 내가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집을 구하는 기준은 나와 우리 가족이 편안히 쉴 수 있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하는데 투자가치가 높아 집값이 빨리 오를 수 있는 데를 찾아 옮기고 또 옮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부모는 돈을 벌고자하는 목적을 성취하게 될지는 몰라도 집을 옮겨 다니며 사는 아이들은 훗날 되돌아볼 추억을 만들기는 어렵겠지요. 그래서 현대인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유목민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더군요.

 

일상에서 찾는 행복, 오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가 내일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어제는 이미 지나가버렸지만 지금 행복한 이는 어제도 그렇게 하루 일에 충실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가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상에서 얻는 작은 결과에도 만족함을 얻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평상심을 잘 지켜가는 것이 바로 얻고자 하는 행복이라며 선가에서 平常心是道라고 한 것이겠지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더 가지지 못해 불편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과 비록 가진 것은 적지만 웃으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느 쪽일까요? 만약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과 가진 것이 적어서 불행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니라 가진 것에 대한 만족함의 정도일 것입니다.

 

나도 행복이나 불행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기보다는 덜 가지고 더 가진 차이에 더 비중을 두고 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더 가져야 한다는 목표에 집착하여 지금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지금 가진 것을 바르게 살펴서 분수껏 살아갈 수 있다면 힘들게 돌아다닐 필요 없이 집 앞의 파랑새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깁니다.

 

차를 한잔 놓고도 내 주는 이의 마음을 담아 마신다면 어떤 차라도 만족스러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단지 내 취향의 차에 잣대를 놓고 그 가치를 따진다면 맛있는 차를 마시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먹어야 하는 밥상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가족들과 입맛에 맞는 찬이 없다고 투정을 하는 가족은 어떤 차이가 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만족함이 곧 행복이요 그렇지 않다면 결코 만족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이라는 옛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뜻하지 않는 엄동설한이라며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달리 추우니까 차맛이 더 있다는 말로 추위를 이기는 다우들이 주변에 많습니다. 꽃이 곧 지천으로 피어날 봄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는 추위가 싫어서 봄을 기다리지만 나무는 꽃을 피울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2011,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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