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보이 숙차 이야기

88 중차 숙타차 시음기-니가 숙차맛을 알아?

무설자 2011. 7. 17.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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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숙차 이야기 10

니가 숙차맛을 알아?

-88년 중차 숙타차 시음기

 

 

보이차 맛을 표현한다는 것이 참 어렵다고들 합니다

입에 맞아서 마시기는 하지만 어떤 맛이 이렇게 저렇게 좋아서 마신다고 잘라서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보이차의 진정한 맛을 '至味無味'라고 하는데 맛이 없는데서 지극한 맛을 찾는다고 하니 과연 그 맛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보이차는 후발효라는 특성으로 시간과 공간을 담아 각각 다른 차로 변해 갑니다.

그래서 내 손에 들어 온 차는 세상에는 없는 단 하나의 차라는 것이 후발효차의 특징이면서 매력입니다.

상온에서 노출된 채로 보관되는 특성은 장소의 성격에 따라 다른 조건과 어우러져서 무궁무진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습도가 적고 온도가 낮은 곳에 보관된 차는 비교적 늦은 변화를 보이면서 깊이 있는 차가 됩니다.

반대로 고온다습한 곳에서 익는 차는 탕색은 빨리 짙어지지만 긍정적인 맛을 만들어낸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10년, 20년, 30년...세월을 가장해서 10년이 20년이 되고 20년이 30년으로 가장되는 차가 보이차의 어두운 부분입니다.

 

이제 이 정도에서 숙차 이야기를 슬쩍 끼워 넣겠습니다.

진년차라고 하는 생노차는 온전하게 제 나이를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고온다습한 지역인 대만, 홍콩, 광조우의 창고에서 세월을 만들어서 나온 차가 아니라고 하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생노차입니다.

 

반면에 숙차는 그런 면에서는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20년, 30년이 되었다는 생노차는 흔하지만 20년 이상된 숙차는 아주 귀합니다.

10~20년된 노숙차는 어른차이고 20년이 더 된 숙차는 거의 고문격이지요.

 

세월을 속이지 않은 20년이 넘은 숙차를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내비에 중차패 마크가 새겨진 숙타차를 소개합니다.

 

 

겉포장지가 따로 없는 이 차는 이렇게 예쁜 주머니에 담겼습니다.

20년이 넘은 숙차라면 아주 귀한 몸이기에 이렇게 신분에 걸맞는 옷을 입혔나봅니다.

보이차의 포장은 아직도 차의 가치를 드러내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비단 주머니를 벗기니 종이에 잘 싸진 차가 드러납니다.

20년이 넘은 세월을 어디에서 보냈을까요?

오래된 차를 대하면 마음 한 구석에서 인연이라는 의미를 되뇌이게 됩니다.

 

 

덩이차를 증명하는 표식인 내비는 그 차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장치입니다.

이 내비마저 없는 차도 많이 있어서 오래된 보이차의 내용을 파악하기는 거의 불가능입니다.

보이차는 마셔봐야 안다고 하지만 비싼 차 일수록 마셔보지도 못하고 구입해야하니 믿음이 배신으로 바뀌기 일쑤입니다.

 

 

맛있는 차 일수록 금방 없어집니다.

손에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헐어져 나가니 이 차는 아마 금방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이십년이 넘게 잘 있던 차, 제게 인연이 닿아 제 역할을 하는 것이겠지요?

 

 

 

마음에 드는 차를 만나면 혼자 마시기보다 자랑삼아 함께 마실 다우를 청합니다.

제게 있어 가장 어린 다우를 청해서 이 맛있는 차를 맛보이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두 친구는 차보다 더 향기롭고 멋진 다인입니다.

 

 

차가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 방법으로 두 가지 차를 같이 마셔보면 두 차가 비교되면서 장단점이 드러나지요.

중차숙타차와 같이 마시는 차는 05년 숙잔인데 이 차도 다들 좋아라하는 차입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방법으로 마시는 이 두 차에 대해 과연 다우들은 어떤 평을 할지 궁금합니다.

 

 

내비에 정체를 밝힌 스무 살이 넘은 차와 내비도 없이 평범한 포장지에 싸여진 차는 우선 신분부터 차이가 분명해 보입니다.

가격대는 스무배 가까이나지만 그 맛도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일까요?

두 다우가 모르도록 차호에 차를 넣고 차를 우려봅니다.

 

 

왼쪽이 타차이고 오른쪽이 전차입니다.

차를 우려서 유리 숙우에 따라서 탕색을 보니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05년 차라면 차를 만든지 6년이 지났으니 안정된 탕색과 향미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탕색만으로는 두 차의 차이를 알 수 없어 보입니다.

다우들도 어느 차가 스무살이 넘은 타차인지 여섯살의 전차인지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마셔보아야 진가를 알 수 있겠지요?

 

 

잔을 맛있게 비웠습니다.

품차를 하기 위해 마실 때는 입에 차를 머금고 후루룩 쩝쩝거리며 좀 체신없이 소리를 냅니다.

그래야 입안의 향도 실감나게 느낄 수 있고 맛도 콧 속까지 향미가 전달되면서 풍부한 음미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차를 마신 다우는 의외의 선택을 합니다.

두 다우의 선택이 다르게 나오다니 이럴 수가 있을까요?

무조건 88년 숙타차가 선택될 것이라 여겼는데 차맛을 받아들이는 취향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 잔에서는 한쪽으로 맛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88년 숙타차의 묘한 향미에 대한 부담이 처음에는 편한 05년 차를 선택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 맛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역시  부드럽고 풍부한 맛에 쓴맛이 살짝 받쳐주는 숙타차를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탕색으로 보는 보는 차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향미 또한 세월이나 가격대만큼 다르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 보이차입니다.

비싼 차가 무조건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돈을 더 치른 만큼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보이차는 '無味'를 바탕으로 미세하게 다가오는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때 진정한 맛을 음미한다고 할 것입니다.

값을 치르는 것은 내가 즐길 수 있는 그만큼이라야 한다고 봅니다.

보이차의 진미는 많이 마셔보고 오래 마셔보고 좋은 차를 다양하게 접해 보면서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어린 다우들과 이렇게 차를 마시면서 내가 아는 보이차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들도 차에 대해서도 삶에 대한 얘기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세대를 넘나드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차는 이렇게 세대도 뛰어넘는 마음의 음료랍니다.

 

 

 

이제 집에 돌아와서 혼자 조용히 차맛을 음미해 보았습니다.

차호는 숙차를 전용으로 우리는 수평호를 썼습니다.

수평호는 두께가 얇아서 뚜껑이 차판에 떨어져도 깨뜨려지기 십상입니다.

 

 

아끼는 차호를 깨뜨리게 되면 그 황망함은 이를 데가 없지요.

그래서 행다는 시간을 바삐 쓰지 않아야 하므로 차를 마시는 그 자체가  수행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기다림의 지혜를 배우는 것도 보이차를 마시는 소득이라 하겠습니다.

 

 

수평호의 뚜껑을 깨뜨리고 나서는 이렇게 나무집게를 써서 잔과 뚜껑을 다룹니다.

중국차를 마시면서 나무집게를 쓰는 이유는 작은 다구를 다루기 쉽고 뜨거운 물을 쓰는데도 좋습니다.

차생활은 실사구시로 할 때 일상의 즐거움이 됩니다.

 

 

맑은 차가 유리숙우에 내려졌습니다.

탕색이 밝고 맑은 차는 그 맛을 떠나서 건강한 차로 여겨도 될 것입니다.

어둡고 탁한 탕색의 차는 아무리 맛이 있다고 히더라도 좋은 차의 조건에서는 뒤로 밀린다고 봅니다.

 

20년의 세월동안 잡내가 없고 통풍이 잘 되는 장소에 보관되었던 것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차에서 역한 냄새가 난다거나 거친 맛으로 목넘김이 부담스럽다면 온전한 나이를 먹었다고 볼 수 없지요.

사람도 보이차도 나이를 제대로 먹어야 대접을 받는 것은 같은 이치입니다.

 

 

잔에 옮겨진 차 한 잔입니다.

그냥 보기만해도 입에 침이 도는 탕색인데 마셔보니 보는 이상의 향미가 입안에서 코로 넘어옵니다.

단맛과 쓴맛이 조화로우면서 독특한 이 차만의 묘한 향이 기억에 남는 차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차를 구입할 때는 되도록 지금 마실 차와 보관해 둘 차로 양을 잡습니다.

보이차는 시간을 사는 차이기 때문입니다.

묵은 차는 다시 구하기 어렵고 신차는 지금부터 시간을 들일 차입니다.

 

다시 만나기 어려운 이 차는 오동나무로 만든 제 보이찻장에 잘 보관해두고 특별한 날에 마시게 될 것입니다.

온라인의 다연이 닿아 만나게 된  차를 마시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즐거움을 널리 전합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