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보이 숙차 이야기

숙차, 표리부동한 차

무설자 2011. 8. 14.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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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숙차 이야기 11

숙차, 표리부동한 차

 

 

 

 

 

정성 들여 만든 동그란 고수차 병차를 보면 찻잎이 하나씩 그대로 보입니다

오밀조밀 모여있는 찻잎을 보노라면 어린 찻잎으로 동그란 덩이로 만든게 너무 예쁩니다

봄찻잎으로 약간 느슨하게 긴압을 한 병면을 보면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충 만든듯한 숙병은 병면도 시원찮고 검은 색까지 돌면 영 인물이 시원찮지요.

긴압이 쎌수록 뜯어내기도 힘들어서 풀어놓으면 그 모습이 먹을 음식인가 싶습니다

숙차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숙차는 제조공정이 비위생적이어서 차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말까지 나왔었지요

 머리카락, 푸대조각....등 이물질이 들어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겼으니까요

거기에다 과발효되거나 보관환경이 좋지 않은 정말 마셔서는 안 되는 차가 있었습니다

 

우려 마셔보아야 차를 평할 수 있겠지만 병면이 맘에 들지 않으면 손이 가지 않습니다

병면이 잘 생기고 빤질뺀질 윤이 나며 색상에 검은 빛깔이 적어야 일단 통과입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차도 외모가 중요합니다 ㅎㅎㅎ 

 

 

 

차호에 숙차 조각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붓습니다

 숙차는 코를 갖다대도 그렇게 끌리는 향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숙차 특유의 향이라고 할 수 있는 숙미숙향은 숙차를 거부하게 하는 장애입니다

 

 

잘 만든 숙차의 탕색은 와인 색을 띄면서 색깔이 아주 밝습니다

어두운 색이 많이 도는 숙차는 과발효가 되었거나 보관상에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틀림없이 엽저가 검은색이며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게 많을 겁니다

 

저는 숙차는 무조건 단맛이 많이 도는 녀석을 선호합니다

밀향이라고 부르는 꿀맛? 우유향? 등 입에 침이 도는 달콤함이 담겨 있아야 하지요

그러면서 쓴맛도 살짝 받쳐주면서 깊은 맛도 따라오는 차라면 최고의 숙차가 됩니다

 

차호에 넣기 전의 서글픈(?) 모습이 뜨거운 물에 풀려 제몸 안의 것이 내 놓으면서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급속 발효 과정을 겪으며 흉하게 된 숙차의 겉모습이 차로서 냉대를 받는 이유가 아닐까요?

모습은 거칠지만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차가 또 숙차입니다

 

흉한 모습대로 시원찮은 맛을 내는 녀석은 위험한 차일 수 있습니다

숙차는 거친 겉 모습처럼 거친 맛을 내면 안 되는 표리부동한 차라야 합니다

잘 만들어진 숙차는 마시기에 편안한 차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까이 할 수 없는 차가 됩니다

 

숙차를 마시면서 제 겉과 속을 생각해 봅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