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상 이야기

촌년 10만원

무설자 2010. 7. 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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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카페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홀로 농삿일을 하면서 자식을 판사로 만든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눈물 겨운 삶이었지만 그 할머니는 판사가 된 아들을 생각하면 지난 시간은 아름다운 추억이요 누구라도 겪어도 될 만한 것이었다고 자부하였지요. 그 해도 가을이 되어 홀로 지은 농작물을 거두며 서울에 사는 그 아들에게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판사가 된 아들이라 바쁘기도 할 테지만 자주 보질 못했나 봅니다.

 

할머니는 그 해 수확한 농작물 중에서 좋은 놈으로 골라서 짐을 꾸렸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 짐은 택배로 부치고 가벼운 몸만 가겠지만 할머니는 그걸 무거운 줄도 모르고 이고 지고 서울로 갔습니다. 아들을 보러가는 길이라 짐은 무겁지만 마음은 얼마나 가벼운지 모릅니다.  

 

가끔 가는 길이라 서울에서 집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요. 그래도 집은 늘 거기에 있으니 땀은 좀 흘렸지만 아들이 살고 며느리도 살고 손자도 있는 큰 집을 찾았습니다. 마침 며느리는 집을 비우고 손자만 있었네요. 자주 못보는 손자라 할머니는 반갑지만 손자 녀석은 옆집 할머니 보듯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쨋든 냉수 한 잔 들이키고 앉았는데 며느리가 쓰다 펼쳐놓은 가계부가 탁자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 가계부에 눈길이 갔을까요? '우리 며느리는 살림도 야무치게 사는구나'하고 가계부를 슬쩍 살펴 보는데 마침 또 그게 왜 눈에 띄었을까요? 각종 세금이며 콩나물 산 것 까지 꼼꼼히 적으놓은 걸 읽으며 감동을 하는데 이런 게 적혀 있습니다.

'촌년 10 만원'

할머니는 이 항목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다른 항목의 지출 제목은 다 이해가 되었지만 그 항목은 생소한 것이라 도대체 이게 무엇일까 생각을 해봅니다. 지출된 날짜가 며느리가 자신에게 용돈으로 매월 보내오는 날이었고 금액까지 맞았으니 바로 할머니의 용돈이라는 것을 아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답을 찾는 순간 할머니는 머릿 속이 하얗게 비어 버려 손자가 왜 가시느냐는 말도 듣지 못하고 왔던 길을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가슴이 미어 터지고 울분을 다잡을 수 없어 눈물을 그칠 수 없고 온갖 생각에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지 모르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어머니 올라오셨다더니 왜 주무시지도 않고 내려 가셨습니까?"

영문을 모르는채 바빠서 찾아 자주 뵙지 못하는 죄인 아닌 죄인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아들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왜 촌년이 그 집에서 잘 수 있겠느냐?"

소리를 지르듯 채 가시지 않은 울분이 섞인 목소리로 응대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아들은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할머니는 말을 이렇게 이었습니다.

"나한테 묻지 말고 네 집사람이 매일 쓰는 공책을 살펴 보려므나"

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가계부를 살펴본 아들은 아연실색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촌년 10만 원'

냉철한 생각의 소유자인 아들은 어떻게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할지 깊은 고뇌의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아내에게 큰소리를 낸다고 근본적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것이며 일어나는 마음 그대로 한다면 손찌검도 불사할 일이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며칠을 생각한 끝에 아들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자주 찾아 보지 못하지만 시골보다 훨씬 가까운 처가도 역시 자주 가질 못했던 처지였습니다. 아내에게 큰 마음을 낸 듯이 처가를 다녀 오자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지 않던 처가를 다녀오자는 남편의 이야기에 아내는 뛸듯이 기뻐하며 오랜만에 가는 친정 나들이에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걸 바라보는 남편은 어머니의 생각과 겹치는 마음 속의 복잡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처가의 집 앞입니다. 부잣집의 큰 대문이 열리고 판사 사위를 얼싸안을듯 하는 장인과 장모를 마주하고는 인사만 꾸벅 드리고 그 집을 돌아 나옵니다.

" 아니 이사람아 들어 오지도 않고 왜 가시는가?"

사위는 돌아보지도 않은채 이렇게 외마디를 지르듯이 이야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촌년 아들이 어떻게 이런 부잣집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사위의 그 말의 자초지종을 딸은 알고 있었겠지요. 그 날 밤 '촌년'의 집을 찾은 사돈 두 내외와 며느리는 죽을 죄를 용서해 달라고 엎드려 빌고 또 빌었습니다.

이 날 이후 며느리의 가계부에는 그 항목에 이렇게 매월 기입되었답니다.

 

'어머님 용돈 5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