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상 이야기

바람 불어 좋은 집

무설자 2010. 6. 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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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닿아 있는 아파트에 사는 덕택에 내 서재에는 자연 그대로의 바람이 기분 좋게 창을 넘어 들어온다. 서재 방문을 열어 놓으면 거실 발코니로 맞통풍이 되니 바깥에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도 선선한 자연풍이 들어와서 그야말로 바람 불어 좋은 방이다. 서재에서 보이는 뒷산의 숲과 앞으로 트인 거실의 전망을 생각하면서 이보다 더 좋은 곳에 살 필요가 있으랴하는 나만의 만족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물은 수돗물을 마시든 생수를 사서 마시든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지만 공기는 사는 곳에서 그냥 들이 마시는 방법 밖에 없을 것이다. 도심 한복판에 비싼 돈을 들여 아파트를 장만해서 사는 사람들이 마시는 공기를 생각하며 오래된 아파트지만 산자락에 사는 값 싼 쾌재를 부르기도 한다.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공기정화기니 공기청정기니 하는 것으로 공기를 걸러서 마시는 모양인데 숲의 청량한 공기를 그대로 마시는 우리 집 공기와 비교할 순 있겠냐고 하면서.

 

  우리 집에도 에어컨은 있지만 한 여름에도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택에 스위치를 넣을 일이 며칠 되지 않는다. 맞통풍이 안 되는 안방에서는 선풍기를 틀어야 하지만 안방에 앉아서 선풍기 바람을 구태여 맞을 일이 별로 없으니 늘 시원한 별장에 산다고 해도 될 것이다. 거실 천정에 달아놓은 팬을 돌려놓고 거실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시골 대청마루에 있는 느낌이나 진배없다.

 

  아무리 시원한 우리집이지만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에 육박한다는 엄포성 일기예보를 듣고 창고에 넣어둔 선풍기를 꺼내야 했다. 여름이 되면  소음인인 나는 더위를 많이 타지 않지만 소양인인 아내는 선풍기를 벗 삼아 지낸다. 특히 화장은 안방에서 하는지라 먼저 선풍기부터 틀고 앉는다. 한 대 뿐인 우리 집 선풍기는 거의 아내 전용품인 셈이다.

 

  구입한 지 십년이 넘은 우리집 선풍기는 좀 독특하게 생겼다. 일반적인 선풍기 모양이 아니라 긴 사각통 형태로 되어 있고 그 통 안에 원통형의 팬이 돌아가면서 바람이 나오게 되어있다. 공간을 적게 점유하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나온 것 같은데 아이가 있는 집에서 안심하고 쓸 수 있을 것이다.

 

  선풍기를 창고에서 끄집어내면서 구입한 이후로 한번도 청소를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일반 선풍기는 먼지가 앉아 있는 것이 그대로 보이지만 이 놈은 안을 볼 수 없는 형태이다보니 먼지가 끼었는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냥 써 왔던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청소를 하라는 아내의 특명이 떨어졌다. 

   

  일단 선품기 몸통의 나사 두 개를 풀어 바깥 커버를 열어보니 그 안의 상황은 생각보다 구조가 복잡했다. 완전분해를 하지 않으면 청소하기가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어 다시 나사 두 개를 더 풀어야 했다.  완전히 분해를 해놓고 나니 과연 다시 조립할 수 있을지 걱정이 슬슬 되기 시작하였지만 그건 청소를 한고 난 뒤에 생각하기로 하고 원래의 목적인 청소부터 서둘렀다.

 

  10 년 묵은 먼지를 닦아내는 청소가 그냥 보통 선풍기와 비교하면 거의 기계부품을 닦아내는 수준이라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한 것이 머리와 몸을 다  써야하는 일이 되었다. 사각통 안에 가득 찬  먼지를 이런 저런 도구를 사용해서 닦고 씻고 하다보니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청소가 마무리 되어가니 이제는 다시 조립하는 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분해는 나사 네개를 푸는 것으로 끝났지만 워낙 구조가 간단치 않은 상대인지라 기계치라고 해도 좋을만한 내 상대가 될지 걱정이었다. 조립이 제대로 안 되면 누구 손을 빌려야 한다면 남편 값어치가 떨어질 것인데...혹은 억지로 맞추려하다가 폐기물 처리를 할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손으로 집어넣는 건 우여곡절 끝에 해결을 했는데 나사 하나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질 않았다. 허둥지둥 일을 하는 내 모습이 한심스럽다. 아내는 머리를 쓰는 일은 잘 하는지 몰라도 몸으로 하는 일은 늘 젬병이라고 퇴박을 놓는데 그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내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혼자서 계속 중얼중얼 선풍기를 만든 사람만 탓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아주 기계치는 아니었는지 우여곡절 끝에 선풍기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내가 기계치임을 인정하지만 청소하기도 힘들고 다시 재조립을 하기도 어렵다면 아무리 아이디어 상품이라해도 입소문으로는 팔릴 것 같지않을 것이니 생명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일회용품이 아닌 이상 관리의 편의성에도 관심을 가져야만 아이디어 상품이라도 기꺼이 쓸 수 있지 않을까?

 

  우여곡절 끝에 다시 조립이 된 선풍기와 마주하니 마치 내가 고장난 것을 고친 것처럼 애를 쓴 그 마음만큼 흐뭇해졌다. 제대로 돌아갈지 살짝 걱정을 하면서 전원을 넣어보니 다행히 원래대로 시원한 바람이 얼굴로 살랑살랑 아양을 떨듯이 스쳐왔다. 맑은 바람이라 그런지 더 시원하다며 아내는 좋아라했다. 바람 좋은 우리 집에 부는 또 다른 이 바람은 내가 만들어 낸 것 같으니 행복은 역시 땀 흘려 만들어지는 것인가 보다.  (2010,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