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상 이야기

아파트에서 도를 말하다

무설자 2010. 4. 2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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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30년을 살았던 주택을 뒤로하고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집을 설계하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나와 가족은 아버님이 물려주신 다 허물어져간다고 해야할 묵은(?) 집에서 버티다시피 살아왔습니다. 이제 그 인연이 다해서 인지 가을이면 두 접씩 감을 땄던 감나무를 두 그루나 두고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 아파트도 지은 지 십 년이 넘은 집이니 근처에서는 나이가 제일 많아 보입니다. 직업이 집을 살피는 일인데도 내가 살 집을 구하는데는 도통 신경이 안 써져서 옮겨야될 시점을 일주일을 남기고서야 집을 찾아 나서는 통에 급하게 구하게 되었습니다. 바쁘게 구하면서도 일흔이 넘은 어머님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래 관음사 근처로 가자. 어머님도 절 옆이니 적적한 것도 덜 하실 터이고'하고 생각하며 그렇게 구한 집인데 어머님은 같이 살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이 모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집에 들어왔으니 내 집을 지을 때까지는 여기서 그냥 사는 게야'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절 옆이라 모르는 동네에 가서 정을 붙이는 것보다 한결 낫습니다.

 

먼저 살던 분이 짐을 옮기고 나니 이사를 해야 될 날짜가 일주일도 안 남았습니다. 늘 바쁜 척하고 살다보니 이사할 집을 고치는 것도 큰 고민인데 친구가 집을 수리하는 일을 도맡아 주어 거의 신경을 안 쓰고 이사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 이도 바쁠 텐데 사흘을 밤늦게 애써서 새 집같이 만들어 놓아주었습니다. 나보다 더 주인같이 집을 챙기는 그를 보며 그냥 고마울 뿐입니다. 큰 빚을 또 하나 진 셈이죠. 사실 주인보다 더 걱정해 주며 손을 봐주는 친구를 보며 이게 정이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스무 평도 안 되는 집에서 살다가 서른두 평에 짐을 풀어놓으니 아직 빈 공간이 많습니다. 딸아이는 콘도에 온 것 같다며 새 집 적응을 못하는 즐거움을 그렇게 너스레를 떱니다. 너른 집입니다. 소파도, 탁자도 없는 거실은 옛날 집 빈 대청마루 같습니다. 거실에 비닐타일을 깔면서 대청마루 문양으로 깔아 놓으니 더 운치가 있어 보입니다. 이제 집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들여놓지 않으리라 하고 맹서 같은 마음을 먹어 봅니다. 법정스님의 책제목처럼 텅 빈 충만 그것입니다.

 

고삼인 딸애도 11시가 넘어야 들어오니 아내와 함께 있어도 말 그대로 절간 같습니다. 텅 비어있다는 건 자유롭다는 의미로 생각해 봅니다. 채우는 순간 기대치가 사라지고 말지만 비어있다는 것은 무엇이라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이죠. 이 큰집에서 텅 빈 자유를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까요? 큰 대자로 팔을 벌려 누워 있으니 자유를 몸으로 실감하게 됩니다. 비워져 있는 만큼 얻어지는 자유 자유 자유...

 

그저 내 것으로 많이 만들어 가져야 안심을 하는 우리네 삶이 얼마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지 모르고 삽니다. 접시 몇 개가 움직이면 되는 양식이나 중국음식에 비해 한 상 가득 채워야 되는 우리 음식처럼 번거럽게 사는 삶이 우리 모습입니다. 나간만큼만 다시 들일 것입니다.

 

꽉 채워야 이제 다 됐다하고 마음이 편한 것은 잠깐이고 더 좋은 걸 보면 또 바꾸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이지요. 그래서 멀쩡한 가구가 쓰레기로 버려지고 새 것으로 바꿔보지만 더 좋은 것을 보면 또 들일 마음을 내지요. 굳이 없어도 되는 것이면 쓰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내구연한은 10년 넘어 20년도 더 되는 것이 더 좋은 것에 밀려 수명을 다하는 지금 세상입니다. 옛날에는 꼭 필요하기에 한푼 두푼 모아 평생에 한 번 구입하였던 가구나 얼마든지 더 쓸 수 있는 가전제품도 지금은 구식이라며 버립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도 그렇게 새 것으로 바꿔 버리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이혼 사유가 성격차이라는 심리가 바로 구식이라며 버리는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옷 한 벌이면 오 년을 입고 신발 한 켤레면 삼 년을 신는 저는 옷 한 벌 새로 사고 새 신으로 바꾸는 것이 스트레스입니다. 그런데 부부가 이혼을 하고 새 사람을 구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 일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차피 서로 20년 이상 다른 환경에서 살다 같이 마음 맞추어 살려면 한 20년은 걸려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파트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면 집도 우리 식구도 마음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이 걸린다 생각하고 살면 좀 불편한 것은 오히려 설렘을 더 오래 이어가는 즐거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별일이 적어서 건조한 삶에 이런 재미도 평생에 한번이니 가볍게 볼 일이 아닐 것입니다.

 

당리동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우리 아파트는 공기 맛부터 다릅니다. 높은데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맛도 그지 그만입니다. 열어 놓은 뒤쪽 창으로 들려오는 새소리는 산에 맞닿은 아파트에서 누릴 수 있는 큰 복입니다. 이 아파트에 온 것을 살아온 삶의 결실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내가 분명 도인은 아닐지라도 도인은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도이며 속인은 도인처럼 행동해도 그르친다고 하는 말을 나의 경우라고 여기며 혼자서만 인정하는 복을 누립니다. (2003, 7, 8)